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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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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우리는 희망을 찍을 수 있을까요

끝이 안 보이는 ‘희망사진관’ 휴업
등록 2020-07-25 12:33 수정 2020-07-31 02:25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남쪽 지하철역 입구에서 사진사들을 기다리는 희망사진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남쪽 지하철역 입구에서 사진사들을 기다리는 희망사진관.

후텁지근하고 축축한 장마철 한복판에서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휴업한 ‘희망사진관’이 이대로 문을 열지 못한 채 2020년을 넘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는 밤이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어느새 열두 명의 식구와 함께하는 ‘홈리스공동생활전선’의 가장 노릇도 날이 갈수록 감당하기 버겁습니다. 어려운 사정을 아는 지인들이 보내준 쌀과 감자, 라면과 김치가 있어 당분간 끼니 걱정은 안 하게 됐지만 집세와 공과금을 내야 할 때가 돌아오면 그야말로 피가 마를 지경이 됩니다. 8월부터 다시 새벽 우유 배달을 하고, 주말에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도 하게 됐으니 조만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7월 초에는 희망사진사들의 스승인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님의 강원도 원주 전시회 준비를 도왔습니다. 작품을 포장해 운반하고 전시장 사정에 맞게 배치하고, 평형을 잡아 벽에 걸고,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 모두 값진 배움이 되었습니다.

전시회가 끝나갈 무렵, 엄청난 비보를 전해들었습니다. 희망사진관 산파역을 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그에게 편지를 보냈던 터라 마음이 더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이제 희망사진관이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각오도 다졌습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앞날을 모색해보자는 조세현 선생님의 조언에, 2019년 희망사진관 오픈 행사에서 낭독한 자작시를 되새기며 문 닫힌 채 비 맞는 광화문광장의 사진관을 청소하러 갑니다.

‘희망사진사 찬가’

난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지

난 여기서 사진을 찍네

풍경과 사람들을 어우러지게 하지

난 포토그래퍼 난 사진을 찍는다네

난 온 세상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찍는다네

난 사람 그리고 특별한 것들을 더한다네

난 지친 마음들을 웃음짓게 하는 사진을 찍는다네

나의 집은 광장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네

그대의 영혼이 잠시 머물 곳이네

오늘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당신은 다시 젊어지네

이렇게 젊어진 당신을 담았네

내 사진은 당신을 춤추게 하고

당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소중한 순간들을 움켜쥐게 하네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서사를 만들고

당신의 마음을 채우는 서정을 불러오네

여기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네

그대를 위해 내가 주는 것이네

나를 위해 그대가 주는 곳이네

난 포토그래퍼

난 사진을 찍는다네

나는 희망을 찍는다네

글·사진 이상훈 광화문 희망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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