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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재판 방청기] 피고인은 왜 현장가자 하나

구조 실패 원인 잊은 듯 핑곗거리만 찾아
등록 2020-07-25 12:11 수정 2021-04-16 04:46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해경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해경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7월6일 오전 10시, 세 번째로 진행된 김석균(전 해양경찰청장) 등 11명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의 재판 진행 시간은, 내 기대와는 달리 짧아도 너무 짧았다.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특정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결과물을 제시할까’라는 기대를 가득 품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법정에 왔지만 재판 시간은 고작 30여 분에 그쳤다. 이날도 재판정에 출석한 피고인은 임근조(전 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가 유일했다.(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 출석이 의무가 아니다.)

구조·보고 의무 불이행 잊었나

검찰과 변호인들은 특별한 공격과 방어 없이, 이전 기일에서 논의했던 증거와 증인에 대한 약간의 의견만 냈다. 다만 임근조와 조형곤(전 목포해양경찰서 상황담당관)의 변호인은 ‘세월호 선체 및 목포해경 상황실 현장검증’을 거듭 요청했다. 검찰과 재판부의 반응은 일단 시큰둥했다.

임근조 변호인은 “세월호 선체를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2017년 수감 중이던 세월호 조타수 오용석이 “세월호 2층 화물칸 벽 일부를 철제구조물이 아닌 천막으로 막아놔 급격한 해수 유입을 막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을 편지로 밝힌 사실이 있다. 임근조 변호인은 이것을 근거로 ‘만약 세월호 벽 일부가 천막으로 되어 있어 선체가 쉽게 가라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임근조가 이를 예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따라서 ‘세월호 선체 벽 일부가 천막으로 되어 있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중앙구조본부 운영계획’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했다. ‘제5항에서 구조본부 임무와 상황실 임무를 짜깁기해서 상황담당관(임근조)이 구조본부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공소사실을 제출했는데 허위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변호인 주장에 검찰이 어떻게 맞서고 재판부가 판단할지 흥미롭게 지켜볼 참이다. 국민의 법 감정을 품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주장을 하니 말이다.

피고인들의 구조에 대한 작위의무(적극적 행위 의무)는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를 전후해 세월호 침몰 사건을 인지하면서부터 작동된다. 이 시점부터 그들은 ‘정확한 세월호 선내 상황을 파악해 보고해야 할 의무’와 이를 ‘수평 및 수직으로 전파해야 할 의무’ ‘구조계획을 수립하고 구조현장을 지휘해야 할 의무’ 등을 부담한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이 의무를 완수하지 못해 참사가 발생했던 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경과 탑승객 통화했는데도 변명만

해경의 ‘해상수색구조 매뉴얼’을 보면, “침수에 의하여 (선박이) 경사하게 되면 침수는 더욱 증가하며 선박의 경사 정도에 따라 안정성이 저해되고 전복 위험이 있음”(6. 침수사고)이라고 규정됐다. 침수에 따른 전복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또 “선박이 경사되고 공기가 누설되는 상태에서 선체의 부력은 약 30분 정도인 것으로 측정”(4. 전복사고)된다고도 했다. 전복 30분 안에 탑승객을 구조해야 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해경 수뇌부가 세월호 침몰 당시 정상적인 임무를 수행한 것이 틀림없다면, 침수 상황을 인지한 뒤 바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일사불란한 구조를 지휘했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참사는 그 결과로 발생했다. 그런데도 임근조 변호인은 상관도 없는 ‘예견 가능성’이라는 억지 논리를 내세워 검찰을 흔들고 시간을 끌고 책임을 면하겠다는 속셈인가보다.

조형곤 변호인 역시 “목포해경 상황실을 직접 가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형곤이 제대로 지휘하려면 사고 상황 파악이 필요한데 목포해경 상황실에는 영상 화면을 볼 수 있는 기기가 없었다고 했다. 변호인은 “이런 상황을 재판부가 직접 본다면 조형곤에게 과실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목포해경 상황실이 오전 9시5분 이전에 세월호 침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과, 목포해경 상황실에는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설정할 수 있는 VHF와 SSB 통신시스템이 구비돼 있었다는 점에서 조형곤 변호인의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구조와 관련한 해경 매뉴얼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상황실 요원은 통상 상황을 접수할 때 주변에 있는 다른 상황실 근무자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도록 신고 내용을 큰 목소리로 복창한다고 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도 최초 신고자인 단원고 2학년 고 최덕하군과 전화 통화를 했던 고아무개가 관례대로 상황을 접수했다고 주장했다.(광주지검 2014년 6월9일 고아무개 진술서)

또 목포해경 상황실 근무자 문아무개와 박아무개는 9시4분과 9시6분 세월호 여객부 승무원 강혜성은 물론 탑승객들과도 전화 통화를 했다. 이때 ‘세월호가 많이 기울어져 있다’ ‘선내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승객 한 사람이 바다로 추락했다’ ‘배가 멈추어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하고 있다’ 등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세월호와 교신 시도하지 않은 해경

혐의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지만, 이들이 관례대로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았거나 신고전화를 구두 보고라도 했다면, 당시 목포해경 내에 근무하지 않았던 김문홍(목포해경서장)과 김도수(경비구난과장)를 대리해 목포해경 상황실에서 상황을 지휘했던 조형곤이 세월호의 긴급한 선내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그리고 목포해경 상황실의 통신시스템도 앞서 밝혔듯이 세월호 침몰 당시 세월호와 교신을 설정할 수 있었다. 세월호와의 직접 교신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이었다.

3009함에서 구조를 지휘했다던 김문홍은 세월호 침몰 당시 “통달 거리를 핑계로 교신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9시22분께 해경 함정으로 추정되는 “여기는 해양경찰입니다. 열넷 여기 서른셋 14호. 여기 33호, 14호, 33호. 여기 열넷”이란 교신 음성이 담긴 진도VTS 교신 녹음파일이 존재한다.

내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33호’를 추적해보니 33호 함정이 정박했던 곳은 진도VTS와 아주 멀리 떨어진 울산 장생포 해경 전용부두로 확인됐다. 따라서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이 교신으로 정확한 세월호 선내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시스템 문제’와 ‘통달 거리 문제’가 아니다. 김문홍, 조형곤 등 해경 수뇌부가 교신 자체를 시도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모두 파악하고 있을 조형곤이, 새삼스럽게 현장검증을 요구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객관적 변론이라 평가할 수 없다. 앞으로 재판의 관전 포인트는 이들의 터무니없는 공격에 ‘검찰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가’, 그리고 ‘재판부가 객관적으로 교통정리를 잘하는가’라고 본다.

아직은 그 무엇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본격적인 법률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짧기만 했던 3차 공판준비기일은 재판장 선언으로 마무리됐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8월17일 오전 10시입니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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