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시험과 답] 영국의 ‘관계맺기’ 교육

인간관계 지뢰밭 건너는 데 필요한 보호장비 마련해주는 영국의 ‘관계맺기’ 교육
등록 2020-07-25 06:32 수정 2020-07-28 01:15
영국 학교에서는 9월부터 ‘관계맺기’ 교육과정이 필수교과로 도입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수업받는 영국 초등학교 교실. 로이터

영국 학교에서는 9월부터 ‘관계맺기’ 교육과정이 필수교과로 도입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수업받는 영국 초등학교 교실. 로이터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한 적이 있다. 거기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배운 적이 없었다. 그걸 배워야 아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타인에겐 명백히 보이는 징조를 알아채지 못하고, 멈춰야 할 때도 결단하지 못한다. 애초 밝은 눈을 가지고 볼 수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경솔하게 하고 그에 따른 고통을 온전히 겪는다.

조언과 도움을 어떻게 요청할까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는 게 건강한 관계인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근면성실함’을 칭찬했고, 어머니는 ‘착하면 된다’고 했다. 당신들이 산 세상이 그랬고, 그분들은 자신이 배운 것을 일러주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삶은 온통 지뢰밭이다. 공경, 성실, 친절, 배려 같은 것만으로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내 아이들은 좀더 안전하게 건넜으면 좋겠다.

영국 학교에 2020년 9월부터 필수교과로 도입되는 ‘관계맺기’(Relationships) 교육과정을 찾아본 것은, 이제라도, 그렇게라도 배우고 싶어서였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모두 정답은 아니지만, 그리고 문화적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문서가 지도나 나침반 역할은 해줄 것 같았다.

이 과목에서 다루는 내용은 몇 가지 영역으로 구분돼 있었다. 초등학교에선 가족 혹은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 친구 사이의 배려, 존중하는 관계, 온라인에서의 관계, 안전하기(Being Safe)를 다룬다. 중등학교에선 그것을 심화해서 여러 형태의 가족, 존중하는 관계, 온라인과 미디어, 안전하기, 친밀하고 성적인 관계와 성 건강을 가르친다.

나는 이 가운데 ‘안전하기’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가 궁금했다. 인간관계의 지뢰밭을 건너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장비가 무엇인지 일러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교육목표 가운데 이런 것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11살까지)은

또래 혹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종류의 경계들(Boundaries)이 적절한지를 안다.

자신의 몸은 자기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신체적 혹은 다른 접촉에서 적절한 것, 부적절한 것, 안전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안다.

어떤 성인에 대해서 느끼는 불쾌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보고하는지 안다.

조언과 도움을 누구에게 어떻게 요청하고, 그걸 들어줄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방법을 안다.

중등학생(16살까지)은

성적 동의, 성적 착취, 학대, 그루밍, 강압, 희롱, 강간, 가정 내 학대, 강제결혼, 여성 할례 등이 무엇인지 그 개념과 이와 관련한 법률, 그리고 이런 행위가 현재와 미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안다.

어떻게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성적 동의를 포함해서 다른 이의 동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언제 어떻게 그 동의를 철회할 수 있는지 안다.

경계, 안전한 관계맺기의 시작

의무교육기간에 필수과목으로 이런 것을 가르치면(즉 모든 사람을 교육하면), 적어도 “몰라서” 생기는 피해와 가해는 줄일 수 있겠다. 물론 가르친다고 해서 모든 이가 충분히 다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안전을 지키는 혹은 해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름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름을 아는 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함정은 그 존재를 모를 때 빠지기 쉽다.

초등학생에게 가르친다는 ‘경계’라는 말이 종일 맴돌았다. 질문했다. 나는 나의 경계(들)를 아는지, 그 경계는 (너무) 단단한지, (너무) 무른지, 유연한지, 그건 본래 내가 만든 것인지 남이 만들어준 것인지, 나는 그 안에서 안전한지, 외로운지, 고단한지, 편안한지. 다른 이가 경계 안으로 들어올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빗장을 거는지, 참고 견디는지, 괜찮다고 해놓고 후회하는지, 화내거나 미안해하지 않으며 ‘노’라고 말하는지, 나는 다른 이의 경계를 잘 인식하고 존중하는지…. 그 답은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나이 들면서 좀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도 많다. 그래서 지금은 덜 다치고 덜 고단하다. 다른 이의 경계에도 민감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침범하는 일도 줄었다(고 믿는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 경계를 알아가면서 자라고 있는 걸까? 안전함을 느끼는 물리적 경계(Physical Boundary)를 잘 알아서 불편한 신체 접촉이나 안전한 공간을 침범당하는 것에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지적 경계(Mental Boundary)를 소중히 여겨 남의 의견을 따라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의 기대나 요구와 독립적으로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아는 정서적 경계(Emotional Boundary)를 만들어나가고 있을까. 이래야 타인의 감정까지 자기 탓이라 여기는 자학이나, 자신의 감정을 타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원망을 갖지 않는다. 나보다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이들은 적어도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언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조차 몰랐던 나는 자꾸 아이에게 질문했다. 애린이 말했다. “자신의 경계는 도전받고 침범되는 경험을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되는 것 같아. 경계는 개별적이고 고유한 것이라서 사람마다 다 달라. 마음이 언제부터 불편해지는지, 어디까지 그 불편함을 허용할지는 구체적인 대상·상황·맥락·신념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니까, 일반적인 기준을 들이대면서 ‘너무 까칠하다’느니 ‘너무 민감하다’느니 하면서 다른 사람의 경계를 비판하면 안 돼. 굳이 원칙을 들자면, 각자의 경계가 어디에 있든 상대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거기서 멈추고 상대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타인의 고유한 경계를 자기 기준에서 정해버리거나, 타인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침범하는 것은 둘 중 하나지. 무지하거나, 우월한 권력을 행사하는 거나. 아니면 둘 다이든가. 그럼 최악인 거지.”

자기 함정 파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건강한 ‘관계맺기’를 굳이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가르쳐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가르친다고 다 배우는 것도 아닐 거다. 그래도 자기를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는 언어와 문법을 알면 어리석음이 자기 함정을 파는 건 줄일 수 있을 듯하다. 학교에서 못하겠으면 집에서라도 해야 하는데, 그걸 잘 가르쳐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지.

이스트본(영국)=이향규 <후아유>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