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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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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진단 체크리스트’ -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등록 2020-07-25 06:25 수정 2020-07-28 01:35
*2018년 한국여성민우회가 1~15년차 여성 직장인 20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꼽은 바뀌어야 할 조직문화 중 일부다. 해당 문항이 많을수록 조직 구성원 누군가는 불편을 겪을 확률이 크다.

*2018년 한국여성민우회가 1~15년차 여성 직장인 20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꼽은 바뀌어야 할 조직문화 중 일부다. 해당 문항이 많을수록 조직 구성원 누군가는 불편을 겪을 확률이 크다.

서울시장 비서로 일하면서 위력(힘)에 따른 성희롱·성추행으로 고통받았다고 호소하는 피해자에게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4년이나 참았다가 왜 이제 말하냐’ ‘결정적 한 방을 내놓으라’며 피해자에게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성차별, 성적 괴롭힘을 인지하는 민감성(성인지 감수성)이 성별·세대별로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겨레21>이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7월22일 전국 20~59살 남녀 500명에게 한 ‘직장 내 성평등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외모에 대한 칭찬도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질문에 20대 여성 37.1%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50대 남성은 3.2%에 그쳤다. “업무 외 사적인 메시지 전송은 성적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항목에서도 20대 여성 38.7%가 ‘매우 그렇다’고 했지만, 50대 남성은 14.5%에 그쳤다.

성인지 감수성의 격차가 큰데도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심판자를 자처해 ‘나는 옳은 판단이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이런 착각은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 _편집자주

“성희롱은 상하 권력관계에 의한 범죄이자 노동권 침해 행위임을 세상에 알린 박원순 전 시장이 자신의 위력과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속옷 심부름 등을 여성 비서에게 시키는 구조를 성찰하지 못했다. 여성운동가들과 막역했던 박 전 시장마저 그랬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익명을 요청한 ‘586세대’ 공공기관장은 박 전 시장 사건이 일상화된 남성중심적 사회구조를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을 해온 그룹 역시 성별 권력관계에 기반을 둔 차별과 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국내외 연구를 종합하면, 조직 구성원 간 권력 차이가 크고 단합이 강조되며 성차별이 심한 조직에서 성폭력 발생 가능성이 크다. 2018년 ‘미투’ 운동은 각 분야 조직·공동체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여성은 미투 운동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나, 일상의 변화는 더디다. 조직문화와 구조가 바뀌지 않은 탓에 ‘불명예 퇴진’도 되풀이된다.

30년 가까이 여성운동을 해온 활동가 ㄱ씨는 그동안 ‘우리끼리 괜찮은 것’이 정말 괜찮았던 건지, 나는 말하지 못한 게 없는지,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건 아닌지 성찰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조직의 장이 된 뒤 점심을 직접 차렸는데 알고 보니 직원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더라. 그런데도 당시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기관장은 첫 출근날 직원이 건물 밖까지 나와 가방을 받으려 하기에 ‘내 가방은 내가 들 거다. 왜 밖에서 기다리느냐’며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위력을 가진 사람이 ‘관례’라고 포장된 편안함을 그렇게 끊어야 한다.”(ㄱ씨)

일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에게 위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수 사회에서 시간강사는 약자이지만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의 관계에선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강의실에 앉은 대학생은 교수에 견줘 약자이지만 과외 교사 위치에선 강자가 될 수 있다. 결국 누구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어와 태도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점검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조직은 어떠한가. 한국여성민우회의 도움을 얻어 조직문화를 되돌아보기 위해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게재하는 까닭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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