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비서로 일하면서 위력(힘)에 따른 성희롱·성추행으로 고통받았다고 호소하는 피해자에게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업무를 강요받고, 성희롱에 시달리지만 ‘말할 수 없는 구조’는 2020년에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반면 ‘4년이나 참았다가 왜 이제 말하냐’ ‘결정적 한 방을 내놓으라’며 피해자에게 비난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피해자에게 향하는 의혹과 비난은 한층 거세졌다. 성희롱·성추행 사건에서 흔히 발견되는 2차 가해와 닮았다.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성차별, 성적 괴롭힘을 인지하는 민감성(성인지 감수성)이 성별·세대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설문조사업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7월22일 전국 20~59살 남녀 500명에게 한 ‘직장 내 성평등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외모에 대한 칭찬도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질문에 20대 여성 37.1%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20대 남성(9.5%), 50대 여성(6.3%), 50대 남성(3.2%)에서는 그 비율이 확연히 떨어졌다. “업무 외 사적인 메시지 전송은 성적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항목에서도 20대 여성 38.7%가 ‘매우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의견을 지닌 50대 남성은 14.5%에 그쳤다. “목격자나 물증 등이 없이 직장 내 성적 괴롭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20대 여성 10명 중 8명은 ‘전혀 그렇지 않다’(33.9%)나 ‘그렇지 않다’(45.2%)고 반대했다. 하지만 20대 남성과 50대 남성은 52.4%(매우 그렇다 11.1%, 그렇다 41.3%), 61.3%(매우 그렇다 12.9%, 그렇다 48.4%)로 차이를 보였다.
성인지 감수성의 격차가 큰데도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심판관을 자처해 ‘나는 옳은 판단이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이런 착각은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성찰의 시간이 왔다. 피해자에게 묻기를 중단하고 일상을 지탱하는 일터와 정치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다. ‘우리끼리 괜찮은 것’이 정말 괜찮았던 건지, 나는 말하지 못한 게 없는지, 내 말이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건 아닌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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