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누군가를 잃고서야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곤 한다. 14년 동안 한 방송사에서 일하고도 스태프의 회당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했다가 단번에 부당해고를 당한 피디가 있었다. 정규직 피디가 도맡아야 하는 일을 모두 하는 프리랜서 비정규직이었다. 출퇴근 시간도 고정적이었고, 타사 업무가 불가능해 사실상 해당 방송사에 종속돼 있었지만 그는 방송사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이야기다. 부당해고에 항의하던 그는 1심에서 패소하고 닷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떠난 뒤 꾸려진 진상조사위에서, 청주방송의 노동 실태가 밝혀졌다. 비정규직은 총 42명으로 정규직(78명) 절반을 넘었고, 이들의 처우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7월22일, 그가 떠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유가족과 방송사, 전국언론노조와 대책위 4자 대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재학 피디의 명예 회복과 청주방송의 공식사과, 그리고 방송사의 노동조건 개선 등이 포함된 내용이었다.
가끔은 꼭 겪을 필요 없는 일을 거치고서야 교훈을 얻기도 한다. 투표를 조작해 감옥에 간 피디들 얘기다.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유가족과 방송사의 합의가 이루어진 같은 날, 엠넷 <프로듀스 101> 전 시리즈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 결과가 가장 높은 수위인 ‘과징금 처분’으로 나왔다. 시즌1 안준영 피디 단독으로 이루어졌던 투표 조작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김용범 피디 등 공범을 늘리며 계속됐다. 안준영, 김용범 피디는 1심에서 각각 징역 2년, 징역 1년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방심위 회의에서는, 이 사건을 단순한 피디 개인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엠넷의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벌어져 최근 제작진의 불구속 기소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조직 내부에서 이런 일탈이 방조되고 묵인, 조장되는 문화가 있었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처벌받거나 사람을 잃기 전에 조직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순 없었을까.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 분야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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