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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노 땡큐] 라이더스의 세계, 누구나 배달?

제1322호
등록 : 2020-07-19 22:23 수정 : 2020-07-2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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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요일 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여러 명이 개인톡을 보냈는데 카톡방에는 ‘ㅋㅋㅋ’로 가득 찼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 기자 두 명이 일주일 동안 직접 쿠팡이츠와 배민커넥터를 하면서 플랫폼노동의 현실을 보여줬다. 기자들이 너무 어설퍼서, 다들 웃으며 자신의 초보 시절을 떠올렸다.

제발 그 콜을 잡지 마오

쿠팡이츠를 하던 기자가 음식점 픽업 거리만 수㎞ 떨어진 곳으로 배차를 받자 ‘역시 퀵팡은 워프해야 제맛’이라는 공감의 카톡이 올라왔다. 장거리 배달을 주로 하는 퀵서비스 배달만큼 멀리 보내 쿠팡이츠 앞에는 ‘퀵팡’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강서구에서 시작해 강동구까지 갔다는 설도 있다. ‘워프’ 또는 ‘순간이동’이라고 할 만하다. 기자가 배달 두 개 하고 힘들어서 앱을 끄자 안타까운 탄식이 울려댔다. 앱을 껐다가 켜면 배차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달을 줄 때 몰아쳐야 하는 게 ‘국룰’(국민 룰,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다.

배민커넥터 기자는 상점을 찾지 못해 헤맸다. 같은 주소에 수십 개의 상점이 흩어져 있는 대형 주상복합건물에 도착했을 때의 절망감은 배달해본 사람만이 안다. 미로 같은 상가 건물을 돌고 돌아 늦게 도착했고, 음식점 사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꽂혔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알려줬을 때, 기껏 도착했더니 손님이 없을 때, 조합원들은 모두 ‘ㅜㅜ’를 쳤고, 한 대학교 기숙사 콜을 잡았을 때는 카톡방이 난리가 났다. 라이더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난 똥콜이었기 때문이다. 오토바이 라이더도 안 잡는 가파른 산 위의 배달이었는데, 자전거 배달원이 잡아버렸으니 자전거 끌고 등산하는 모습이 나올 터였다. 배달 거리는 직선거리만 뜨기 때문에 700m의 가까운 거리라고 라이더를 유혹하지만, 높은 산이라는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압권은 전동킥보드를 타고 급하게 인도 주행을 하다가 행인들과 부딪힐 뻔한 기자의 고백이었다. ‘최대한 교통법규를 지키려고 했으나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쉽지 않았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말이 방송사 기자의 입에서 나왔다. 세상에 자기 목소리를 맘껏 전파하는 오피니언리더들과 자기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분리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나온 소중한 증언이었다.

그렇게 좋아 보이면 당신이 해보든가

사람들은 배달일이 진입장벽은 낮은데 수익은 높다고 말한다. 라이더들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아무나 하는 일이라고 하는 건 이해되지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연구자나 정부 관계자가 진입장벽이 낮은데 수익이 높다고 말할 때는 화가 난다. 유치하게도 그렇게 좋아 보이면 당신이 해보든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말에는 서글픈 현실이 있다. 배달일이나 일용직 노동은 특정 계층에만 진입장벽이 낮다. 먹고살려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배달일의 고단함과 위험은 어느 때고 넘을 수 있는 허들이다. 반면 특정 계층에는 배달일이야말로 감히 할 수 없는 위험하고 힘든 장벽이다. 부잣집 자제나 교수가 배달일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뜯어말릴 것이다.

혹자는 잠깐 체험으로 일해본 기자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나쁜 점만 강조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자들의 모습은 숙련노동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보편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숙련자라 하더라도 사고 위험이 있고 실수를 한다. 그 위험과 실수를 보완해주는 게 사회와 기업이 해야 할 책임이다. 진입장벽이 너무 낮아서, 누구나 하는 일이라면 허들을 넘은 뒤 밟는 땅 위가 너무 미끄럽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혹여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매트를 까는 일이야말로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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