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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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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우왕좌왕 직접고용, 사회갈등만 키웠다

상시지속직 정규직화 추진 3년간 노사 반쪽짜리 합의만 세 차례
등록 2020-07-04 04:58 수정 2020-07-06 15:28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6월22일 제1여객터미널에서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고용하겠다는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던 중 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6월22일 제1여객터미널에서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고용하겠다는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던 중 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인천공항공사가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자사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발표하자, 이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고 7월2일 현재 동의자가 27만 명을 넘어섰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최근 뜨거운 논란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지만, 갈등의 씨앗은 이미 3년 전부터 움트고 있었다. 지난 3년간 인천공항공사 사용자와 노동자가 ‘온전한 합의’를 단 한 차례도 이뤄내지 못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2017년 첫 합의부터 정규직 노조 불참

인천공항공사에서는 지난 3년간 세 차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합의 때마다 주요 주체들(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이 빠진 반쪽짜리 합의문이 나왔다. 우선 1기 노·사·전문가협의회(이하 노·사·전협의회) 합의(2017년 12월26일·보안검색요원 공사 직고용)에는 한국노총 소속 정규직 노조가 협의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다. 노·사·전협의회는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 공공기관에 구성된 노동자·사용자·전문가 협의체다. 이 협의체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 방식과 시기, 임금체계, 채용 방식 등을 협의한다. 2기 합의(2018년 12월26일)에는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조가 등을 돌렸다. 3기 합의(2020년 2월28일)에서는 정규직 전환 당사자인 보안검색노조가 서명하지 않았다. 이처럼 주요 주체가 빠진 ‘구멍 뚫린 합의’는 합의문이 나온 뒤에도 반발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을 최근부터 역순으로 되짚어보자. 6월22일 구본환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보안검색요원 1902명에 대해 청원경찰로 전환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넉 달 전 3기 합의에서 보안검색요원에 대해 ‘법적 문제 해소 때까지 자회사 소속’ 방식에 합의했던 사용자 쪽이 서명 넉 달 만에 합의를 뒤집고 직접고용 방침을 느닷없이 밝힌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정규직 노조 조합원 200여 명은 구 사장의 이동을 막으며 거세게 반발했다. 사용자 쪽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3기 합의 때 쟁점이 됐던 보안검색요원에 대한 ‘법적 문제’란 ‘특수경비원’ 신분 유지를 말한다. 인천공항공사가 특수경비업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보안검색요원을 직접고용하면 경비업법상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특수경비원 신분을 보안검색요원이 잃게 된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공항 방호에 구멍이 뚫려 항공보안법, 경비업법, 통합방위법 등 관련 법률을 국회에서 먼저 개정해야 했다. 3기 합의는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할 때까지 보안검색요원을 자회사에서 고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노총 소속 비정규직노조(보안검색노조)는 자회사 고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합의문 서명을 거부했다.

1기·2기 합의도 3기 합의와 다를 바 없었다. 2기 합의는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가 불거진 뒤 마련됐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에서는 무기계약직 1285명이 직접고용됐는데, 그 가운데 재직자의 친인척 등이 15%(192명) 가까이 돼 ‘고용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인천공항공사는 대안을 모색했다.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이후,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천공항에 입사한 비정규직에 대해선 경쟁채용을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노총 소속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는 동의했지만 이번에는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조가 반대했다. 이들은 ‘경쟁채용은 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고용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공사가 직고용 원치 않아 합의 삐거덕”

1년 앞서 서명된 1기 합의에서는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 취지를 살려, 상시·지속 업무인 “소방대, 야생동물 통제, 보안검색, 보안경비 등 2940명은 (인천공항)공사로” 직접고용한다고 했다. 이 합의에 동의하지 않은 주체는 한국노총 소속 정규직 노조였다. 이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논의하는 노·사·전협의회에도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다. 1기 노·사·전협의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정규직 노조가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에는) 양보밖에 할 것이 없다고 보고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3기 합의는 모두 미완성이었고, 다툼의 불씨가 숨쉬고 있었다. 3기 노·사·전협의회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한 한 인사는 “세 차례 합의문 모두 정당성과 완결성 면에서 부족하다. 3기 합의 이후에는 (인천공항공사 쪽이 발표한) 청원경찰 방식의 직접고용을 논의하는 자리도 없었다. 정규직화와 관련한 ‘과정 관리’(조율·합의)를 잘못한 책임이 공사에 있다”고 비판했다. 공사 관계자는 “수십 차례 논의와 조율을 거쳤다. 하지만 각자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문에 모든 주체가 서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서는 공사가 애초에 보안검색요원을 청원경찰 방식으로 직접고용하길 원하지 않았기에 합의가 계속 삐거덕댔다고 지적한다. 7월2일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이 인천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아 언론에 공개한 ‘보안검색용역 직고용 전환계획에 따른 청원경찰법 검토 보고’ 등을 보면, 그 내막을 엿볼 수 있다. 2017년 11월22일, 1기 노·사·전협의회가 열렸을 때 인천공항공사 쪽은 “보안검색요원을 청원경찰 형태로 직고용 전환을 하게 되면 인천공항의 최대 장점인 공항서비스 품질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2019년 12월26일 열린 3기 노·사·전협의회에서도 “전국적으로 청원경찰 규모가 약 1만3천 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인천공항에서만 3천 명가량 청원경찰이 증가하는 것은 국가 정책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안검색요원을 청원경찰으로 전환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을 1~3기에 유지한 것이다. 결국 ‘법적 문제 해소 때까지 자회사 소속’이라는 3기 합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5월 청와대가 주관한 관계부처 회의 이후 기류가 급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야 합의가 필요한 법 개정은 시기를 기약할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관계부처 회의에서 우려가 쏟아지자 인천공항공사가 기존 입장을 바꿨고, 결국 보안검색요원을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읽힌다. 인천공항공사는 왜 입장을 바꾸었을까. 무엇보다 숫자가 문제였다. 1기 합의 때는 직고용 대상자가 2900여 명(보안검색요원 1902명 포함)이었는데, 3기 합의에선 소방대원과 야생동물 퇴치요원 등 241명으로 급감했다. 1기 합의에 견줘 8% 수준에 그친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과정을 잘 아는 한 노동전문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막바지인데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방문한 인천공항공사의 직고용 규모가 너무 작으니까 (직고용 규모를 늘리는 데 대한) 압박감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규직 13%, 비정규직 87%

인천공항공사의 보안검색요원 직접고용 발표를 두고 희비가 엇갈린다. 보안검색노조는 “3년 전 1기 합의가 이제야 지켜지게 됐다”고 반겼다. 반면 정규직 노조는 “공사의 일방적이고 기습적인 직고용 발표”라고 반발하며 이 결정이 평등권을 침해했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다. 인천공항공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정책 목적은 수면 아래로 내려앉고 사회 갈등만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던 이유는 이곳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직원 중 비정규직 규모(2017년 기준 9700여 명, 87%)는 정규직(1400여 명, 13%)을 압도한다. ‘국가중요시설인 인천공항에서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정규직을 한 명도 못 만날 수 있다’는 조롱 섞인 말이 인천공항공사의 비정상적 인력 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1999년 설립된 인천공항공사는 국제공항 사업을 독점한 공기업으로서 2001년 인천공항을 개항한 뒤 매해 흑자경영을 했다. 2019년 영업이익은 1조2900억원에 달했다. 고수익은 경영진과 직원들의 기여뿐 아니라 독점에서 오는 ‘렌트’(지대)도 포함된다. 이 렌트가 10% 남짓의 ‘시험을 통과한 울타리’ 안에 있는 정규직에게만 돌아가는 게 현실이다. 인천공항공사의 2019년 정규직 평균연봉은 9130만원이나 된다. 인천공항공사 취업을 두고 ‘로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인천공항공사가 소수 정규직에게 로또가 된 만큼, 비정규직에게는 가혹한 노동현장이 됐다.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린다”는 목소리를 낸 것은 2008년부터였다. 2013년에는 당시 야당인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우원식)가 인천공항을 찾아 “인천공항이 올해로 세계공항서비스 평가에서 8년 연속 1위를 했지만 공항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임금·노동 조건도 신입사원 수준으로 되돌아간다”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해를 거듭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 제로’ 선언으로 실마리를 찾았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렌트를 시험에 통과한 정규직만 독점한다는 건 지나친 배타성이다. 렌트는 사회적으로 공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 취지 살리려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넘게 늘어나기만 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려는 정책은 한 방에 해낼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비정규직 보호 대책을 정비하고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폭넓은 논의와 조율, 합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공항공사 1·2기 노·사·전협의회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했던 임주환 변호사는 “정부가 정규직화 이슈에 대해 국민과 좀더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이유와 목표를 납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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