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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FC 10PM

등록 2020-06-27 07:59 수정 2020-07-03 00:20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4년 전, ‘FC 알바’라는 이름으로 맥도날드 알바들을 중심으로 풋살 축구팀을 만들었다. 맥도날드 알바들은 스케줄이 들쭉날쭉하다. 동시에 출근하는 것도 다 같이 퇴근하는 날도 없어, 아예 하루 일을 비우고 오후 시간에 단체로 축구를 했다. 축구 하는 날은 작은 파업의 효과를 내서 맥도날드 매니저들이 싫어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계약이 종료되거나 다른 곳에 취직하거나 매장을 옮기면서 맥도날드 알바들은 흩어지고, 동네 청년이 하나둘 팀에 들어왔다. 팀을 소개하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의 메인 화면에는 ‘배달, 알바, 비정규직, 감정노동자 환영’이라고 적었다.

저녁 8시 운동이 어려운 직장인들

4년 만에 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들어오는 동네 청년들의 직업이 아주 다양해졌다. 백수와 학생부터 프로그래머, 보험설계사, 축구심판, 배달라이더, 주차장 안내 알바, 컨설턴트, 자영업자, 요리사, 배우 등 다종다양하다.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모임이 있는 날이면 꼭 한두 명은 당일에 취소한다는 것이다. 단체운동인 풋살에서 한 명이 나오기로 했다가 안 나오면 인원수가 맞지 않아 경기가 무산되기도 한다.

처음엔 모임 참석을 취소한 그 사람에게 화났다가, 단체대화방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고는 그 회사에 화가 났다. “오늘 일이 안 끝나고 있어요.ㅜㅜ 지각할 것 같아요. 흑흑흑”은 “한 시간만 더 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카톡 올리겠습니다. 죄송해요. ㅜㅜ”로, 한 시간 뒤에 결국 “저는 아무래도 오늘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로 바뀌었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저녁 8시 퇴근이 기본값이었다. 6시에 퇴근하고, 밥을 먹고 8시에 운동할 수 있는 직장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와 달리 택배 배송을 하는 쿠팡플렉스 청년은, 밤 10시에 축구하러 왔다가 1시간30분 정도 공을 차고 사라진다. 밤 12시부터 야간 택배 일을 시작해서다. 저녁에 운동하러 오는 것이 어려운 정규직 노동자와 자정부터 야간 노동을 하는 플랫폼노동자를 위해, 우리는 밤 10시라는 심야 운동 시간을 잡았다. 밤 10시는 라이더유니온이 저녁 피크 시간 일을 마친 조합원들과 만나기 위해 행사를 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 팀 이름은 그렇게 FC 알바에서 ‘FC 10PM’으로 바뀌었다.

4년 전, 그래도 하루쯤은 다들 시간을 빼서 오후에 할 수 있었던 축구가 4년 뒤 밤 10시가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 됐다. 알바노동자는 플랫폼노동자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바뀌어 있었다. 이들은 최근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다. 운동 수업이 사라진 축구지도사는 최근 에어컨 설치 알바를 뛰고 있다. 쿠팡플렉스 노동자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확진으로 한동안 일이 배정되지 않았고, 퀵서비스 일을 하던 친구는 음식 배달 알바를 시작했다. 코로나19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에 있던 직장에서는 임금 체불, 새롭게 구한 직장에서는 사장의 욕설과 괴롭힘에 이직을 고민하는 청년과 직장 하나로는 힘들어서 ‘투잡’ ‘스리잡’을 뛰는 청년이 서로 패스를 주고받는다. 동네 청년들이 모이는 축구 모임은 대한민국 노동환경의 축소판이다.

FC 8PM, FC 6PM을 위하여

각자도생의 숨 막히는 삶의 한순간. 우리는 잠깐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오늘도 축구를 한다. 일하는 체력과 축구 하는 체력이 따로 있는 것처럼, 아무리 피곤해도 공을 쫓아 달리는 것은 즐겁기만 하다. 생존을 위해 뛰어다니는 운동장이 공을 차는 운동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자유롭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우리 팀 이름이 FC 10PM에서 FC 8PM으로, 그리고 언젠가 FC 6PM으로 바뀔 수 있기를 빌어본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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