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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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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시장님, 희망사진관 문 열게 해주세요!

코로나19로 일하지 못하는 홈리스 사진가들의 바람
등록 2020-06-23 11:45 수정 2020-06-25 01:53
이상훈씨와 함께 광화문에서 희망사진사로 활동하는 조철호씨(왼쪽)와 박원순 서울시장.

이상훈씨와 함께 광화문에서 희망사진사로 활동하는 조철호씨(왼쪽)와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님, 안녕하십니까? 서울시 희망사진관 1호점 광화문 희망사진관에서 ‘일하던’ 이상훈입니다. 코로나19 감염이 퍼지며 희망사진관 1·2호점에서 일하는 사진사 4명은 6월17일 현재까지 사진관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길어야 한 달이겠거니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로 일단 퇴직 처리된 저희는 공식적으로 실업 상태였으므로 구직급여를 받으며 지난 겨울과 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4월에는 열겠지, 5월 중순(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시점)에는 열겠지, 그리고 6월17일 수요일 오늘까지는 무슨 소식이라도 있겠지 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와중에 희망사진사 4명의 생계는 임계점에 다다랐습니다. 2호점인 능동 어린이대공원 희망사진관에 근무하는 박태억씨는 이미 4월에 구직급여 수령이 끝났고, 광화문 희망사진관에서 저와 함께 일하는 조철호씨도 지난주 목요일 마지막 구직급여를 받았습니다. 저 역시 6월19일에 받는 168만여원을 끝으로 진짜 실업자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또 한 분의 2호점 희망사진사 정순만씨는 애초 구직급여 수령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간헐적인 야간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에선 희망사진관 재개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5월 중순 생활방역으로 전환할 때쯤 면담했지만, 홈리스 자활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님! 저는 시장님이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님과 의기투합해 열어주신 희망프레임 홈리스 사진교육 프로그램을 2012년 3월 제1기부터 수강했습니다. 2013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희망사진관 1호점 개관을 그야말로 가슴 벅찬 심정으로 현장에서 지켜봤고, 2014년에는 그곳에서 희망사진사로 일하는 행운을 맛보았습니다. 2015년에는 새로운 희망사진사 선발 시험과 면접에서 간발의 차이로 떨어져 희망사진관을 떠나는 아쉬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홈리스 특별자활근로와 서울시 공공근로를 하며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저는 2018년 홈리스 사진문화예술대학 희망아카데미 제3기를 거쳐 11월에 다시 광화문 희망사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시장님과 조세현 선생님의 꾸준한 관심, 전폭적인 지지 속에 2호점 능동 어린이대공원 희망사진관을 열었습니다.

저희는 공식적인 사진관 근무 외에 틈틈이 시골 장터를 돌며 어르신들의 장수(영정)사진을 찍어 인화해 드렸고, 희망아카데미 후배들의 교육과 실습을 돕는 포토스카웃 활동을 해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성동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정례모임에 나가 홈리스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강연을 했고, 거기서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조철호·박태억·정순만 세 사람이 문화행사에서 포토존 운영과 행사 스케치 촬영으로 뿌듯한 연말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희망사진관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으로 키우는 작업을 차근차근 전개해나갔을 겁니다.

박원순 시장님! 단순하고 명료한 부탁 하나 드립니다. 7월1일 두 곳의 희망사진관을 모두 개관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저희에게 휴업명령을 내리고 유급휴가를 주십시오. 코로나19 감염이 종료될 때까지 희망사진사들은 (관광객 사진 대신) 서울시의 여러 방역 현장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기고 감염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찾아 어느 때보다도 소중한 그분들의 생을 인화지에 또렷이 남기겠습니다. 저희 희망사진사들에게 작년 11월 말 폐점 이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담당 부서와 실무자를 대신하여 시장님께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점 이해 바랍니다.

글·사진 이상훈 광화문 희망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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