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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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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재판 방청기] 해경 차장은 할 일이 없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만들 필요 없는데 만든 조직을 두고,
해양경찰청 차장 변호인은 ‘업무’가 없다고 주장해
등록 2020-06-16 14:37 수정 2021-04-16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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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5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523호 법정에서 형사22부(재판장 양철한)의 심리로 김석균(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수뇌부 11명에 대한 두 번째 공판 준비기일이 진행됐다.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기에 이날도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해양경찰청 상황담당관이던 임근조(총경)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주의 의무가 있었는지 특정해달라”

첫 공판 준비기일(4월20일)에서도 그랬듯이 법정 분위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방청객 20여 명이 입장하는 작은 법정에 마스크를 쓰고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 고역임은 틀림없지만, 정작 갑갑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법정의 음향시설 문제인지, 아니면 판검사와 변호인들이 태생적으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목소리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지난 재판 때도 그랬기에 이날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법원 관계자에게 시정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지만, 역시 배려는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기자들조차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끔벅거리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이날 재판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목록과 증인신문에 대한 변호인 쪽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방청객은 재판자료를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어떤 증거를 인정하고 무엇을 부정하면서 양쪽이 다투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검찰 쪽이 많은 증거를 제출했다는 것과 30명 넘는 증인을 신청했다는 것 정도만 인지했다. 몇몇 변호인은 검찰을 향한 공격을 퍼부었는데 최상환(전 해양경찰청 차장)의 변호인이 그 포문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에서 (해양경찰청) 차장으로서 해야 하는 업무가 무엇인가, 어떤 주의 의무가 있었는지 특정해줘야 한다. 최상환은 중앙구조본부 라인에 있지 않았는데 어떤 주의 의무 위반이 있었는지, 그것을 특정해줘야 우리도 (변론을) 준비할 수 있다.”

수난구호법 제5조를 보면, 해경은 “수난구호활동의 역할 조정과 지휘·통제 및 수난구호 활동의 국제적인 협력”을 위해 해양경찰청에 중앙구조본부를, 그리고 지방해양경찰청과 지역해양경찰서에 광역구조본부와 지역구조본부를 설치하게 돼 있다. 또 해양경찰청장은 5년 단위로 ‘수난대비기본계획’을 세우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 ‘수난대비 집행계획’을 매년 수립·시행해야 한다(제4조).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각 구조본부와 운영계획이 있었다는 얘기다. 2014년 3월 작성한 해경의 ‘2014년 수난대비 집행계획’을 보면, 최상환은 해양경찰청장(김석균)을 보좌하는 ‘부본부장’ 구실을 수행하게 돼 있었다(그림1). 따라서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앙구조본부가 ‘비상 가동체제’로 전환되고 그는 부본부장 역할을 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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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승객 구조하는 임무는 아예 누락돼

하지만 해경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검찰에서 수사받을 때,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5분 세월호 침몰 보고를 받은 김석균이 9시10분 상황실에 들어가 “‘목포, 여객선 ‘세월호’ 침수 관련-중앙구조본부 운영계획’을 작성하고, 그것에 따라 구조본부를 설치 가동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구조를 위해 마치 새로운 조직(중앙구조본부)을 출범시킨 것처럼 주장했는데, 이 구조본부 라인에는 변호인의 주장처럼 최상환이 빠져 있다(그림2).

이 조직은 만들어질 필요가 없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은 수난구호법상 이미 설치된 구조본부를 비상체제로 전환해 구조작업을 진행하면 됐다. 긴박한 순간에 실효성 없는 ‘중앙구조본부 운영계획’을 새롭게 작성할 이유도, 이것에 따라 구조작업을 진행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당시 해경이 작성했다는 이 문건(‘목포, 여객선 ‘세월호’ 침수 관련-중앙구조본부 운영계획’)은 ‘2014년도 수난 대비 집행계획’이나 ‘주변 해역 대형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과도 전혀 맞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탈출하는 생존 승객을 구조하는 임무가 아예 누락돼 있었다. 실제로 세월호 침몰 현장에 적용했다면 ‘초대형 참사’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세월호 침몰 이후 사망한 승객을 구조할 목적으로 해경이 뒤늦게 이 문건을 작성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이제는 최상환이 ‘해야 할 업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빌미가 됐다. 만약 검찰이 이 문건에 근거해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의 구조본부가 정상적으로 가동됐다고 판단한다면 ‘부실 수사’ 또는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날 검찰을 공격한 또 다른 피고인은 여인태(전 해경 경비과장)였다. 그의 변호인은 “수색구조 과장과 해상안전과장 등 경비과장과 동급이었던 이들은 기소가 안 됐다”며 기소 이유를 밝혀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지난 첫 공판 준비기일 때도 그는 “(사고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김경일)하고 통화만 했다는 이유로 피고인 여인태가 기소됐다. 문제의 통화를 했다는 것은 오히려 사고 수습을 위해 적극 노력을 했다는 건데 그것으로 기소했다는 것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걸려온 전화를 단순히 받았다?

그러나 여인태는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37분, 김경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단순히 받았던 것이 아니었다. 침몰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기 위해 김경일에게 전화를 걸었고, 실제로 2분22초간 통화해 배가 이미 45도 내지 50도 정도 기울어졌는데 갑판이나 바다에 승객이 하나도 나와 있지 않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승객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라거나 123정의 대공 마이크로 퇴선 방송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할 때까지 해경의 퇴선 방송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해양경찰이 합당한 조치를 하지 않아 ‘선내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마지막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변호인들의 이날 공격 포인트는 앞으로 펼쳐질 공판에서 검찰과 치열하게 다툴 쟁점이다. 검찰과 전직 해경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고, 현재 상황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 다만 가까운 시일 내에 검찰이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특정하겠다’는 입장 표명을 했으므로 기다리는 수밖에. 피해자 가족은 검찰이 어마어마한 무기를 준비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날릴 것이라 믿고 싶다. 어정쩡했다가는 공격자가 아니라 방어자 신분으로 전락할 수 있으리라. 다음 공판 준비기일은 7월6일 오전 10시.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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