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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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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영수증] 오일장 대신 온라인 장

도시에서보다 ‘건강 밥상’ 차리기 힘든 아이러니
등록 2020-06-13 07:00 수정 2020-06-15 01:24
읍내 마트에서 장 보는 대신 신청한 ‘꾸러미 배송’. 비닐 포장은 아쉽지만, 무항생제 돼지고기부터 친환경 채소와 과일까지 구성이 알차다.

읍내 마트에서 장 보는 대신 신청한 ‘꾸러미 배송’. 비닐 포장은 아쉽지만, 무항생제 돼지고기부터 친환경 채소와 과일까지 구성이 알차다.

얼마 전, 남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다. 각자 생활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다보니, “값싸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렵다” “옛날처럼 육지랑 떨어진 섬도 아닌데, 왜 물가가 여전히 비싼지 이해가 안 된다” “관광지라고 음식값도 비싸고 맛집이 없다” 등 여러 의견이 쏟아졌다. 나 역시 남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은 먹거리에 대한 것이었다. 물가도 비싸고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사시사철 바다와 논밭에 둘러싸인 시골 생활을 하면서 도시에 살 때보다 먹거리 고민이 더 깊어졌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처음에는 시골 오일장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고령화로, 시장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대신 남해 곳곳에 있는 중소형 마트를 이용했는데 단골을 네 번이나 바꿔보았지만 어디서든 장 보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떤 마트는 공산품은 아주 저렴하지만 채소나 과일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것도 죄다 비쌌다. 어떤 곳은 채소 가격은 싸지만 신선도가 떨어지고 금방 물렀다. 읍에 있는 마트에서 한 달간 아르바이트하며 지켜보니,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인근 다른 지역에서 대량생산된 것을 다시 소분해 파는 방식이었다. 마을에서 나는 작물은 대부분 농협에서 일괄 수매해, 도시로 흘러간다. 차라리 진주, 사천 등 인근 지역 대형마트를 이용한다는 남해 사람도 많이 만났다.

물론 시골에 살면서 직접 먹을 것을 생산하고, 잘 몰랐던 제철 재료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집 앞 텃밭을 가꾸고, 어르신이 산이나 밭에서 난 것을 수확해 나눠주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의 거대한 시스템과 규모 있는 시장을 벗어나니,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도 홀쭉해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유 대신 두유를 사고 싶다든지, 공장식 계사에서 생산된 달걀이 아닌 자연방사로 키운 달걀을 사고 싶다면, 여러 마트를 돌고 돌아야 겨우 찾을 수 있다. 환경에 관심 갖는 소비자층을 겨냥한 친환경 상품은 더더욱 남해에서 보기 어렵다. 이미 고령화된 시골 마을에서 더 생태적이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할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시골에 살면 더 푸짐하고 신선한 식사를 쉽게 그리고 자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그건 도시인으로서 시골에 대해 품었던 환상 중 하나였다.

결국 최근 장 보는 방식을 아예 온라인으로 바꾸었다. 꽤 만족스럽게 이용한 적 있는, 한 단체의 꾸러미 정기 배송을 다시 신청했다. 각 지역 농부들이 키운 무농약·친환경 제철 식재료를 한 바구니에 담아, 한 달에 한두 번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장 보러 마트를 오가는 데만 왕복 1시간이 걸리고, 그렇게 마트에 가봤자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살 수 없으니, 차라리 내가 원하는 것을 인터넷으로 사서 집 앞 배송을 받는 게 낫겠다 싶었다.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원하는 삶을 찾아 내려온 시골에서도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될 뿐이다.

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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