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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그 놀라운 입구... 포스트 팬데믹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코로나 뉴노멀]
정재승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에필로그 - 재난, 그 놀라운 입구
등록 2020-05-30 07:40 수정 2020-06-03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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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인 분자생물학자 조슈아 레더버그가 말한 것처럼, 전 지구적으로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단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전염병이다. 핵전쟁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지만 워낙 정치적인 사안이다보니 개인이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고 세계전쟁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국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염병은 의식주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전염병 안에는 실제 병원체에 의한 감염도 있지만, 온라인상에 컴퓨터바이러스가 퍼져 모든 컴퓨터가 고장나고 인터넷이 붕괴되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 경우 인류는 디지털에 의존해온 그간의 사회체계가 붕괴돼 아날로그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만, 코로나19처럼 사람들 간 접촉에 의한 전염병의 대유행은 우리를 온전히 디지털에만 의존하는 삶으로 변모시킨다.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콜레라의 대유행이나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으로 시작된 일련의 인플루엔자 팬데믹은 인류가 최근에 경험한 가장 끔찍한 전염병 대유행이었고, 이후 인류는 상하수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동물을 사육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항생제를 널리 쓰는 등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이했다.

덜 일하고 덜 만나도 사회가 돌아가다니

그렇다면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 사회적 접촉을 극도로 줄이고 디지털에 의존해온 지난 수개월의 경험은 우리에게 집단 중심의 지나친 사회활동(회의가 줄어도 별일 없잖아!), 재난에 대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적 대응책 이원화(한 시스템이 치명적인 붕괴를 하더라도 다른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응책),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세계가 서로 연결돼 있고 우리 생필품 생산이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위협이 될 줄이야!) 등 다양한 논의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19는 이 지점에서 2019년까지 우리 사회를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류는 ‘지금보다 덜 일하고 덜 만나도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일하지 않고 느리게 움직여도 작동하는 세계는 지구를 평평하게 만든 세계화의 논리와 경제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반성케 한다. 내 삶을 돌아보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간을 보내면서, 신자유주의의 지나친 경쟁을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하게 됐다. 화초를 키우고 운동하고 요리하며 공원을 산책하고 밀린 영화들을 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노동에 대한 개념도 재고해야 한다. 재택근무 경험은 우리에게 이제 노동이 시간과 장소에 묶인 개념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에 좀더 밀접한 개념임을 깨닫게 했다. 인공지능 시대에서도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아야 할 인간에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노동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거부감이 심했던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얼마나 절실한지 온 국민이 깨달았을 뿐 아니라, 긴급재난지원금의 (기부만이 아닌) ‘사용’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임을 인식하게 됐다는 데 각별한 의미가 있다. ‘데이터세’ 등을 통한 재원 마련 같은, 향후 지속해서 기본소득에 대한 현실적 논의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디지털 세계에 시큰둥했던 이들에게 코로나19 정국은 모바일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처음으로 배달앱을 내려받고, 온라인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깔아 사용해본 사람이 늘었다. ‘실제로 써보니 쓸 만하다’는 경험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서 그들을 디지털 세계에 머물게 할 것이다. 화상회의에 거부감을 갖고, 원격진료에 저항하고, 온라인수업에 익숙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재난대응책

재난이 일어나면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피해가 가는 법. 여전히 신기술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의 기술적 고립은 앞으로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감염사회에서 ‘디지털 리터러시’(정보 사용 능력)를 높이는 디지털 교육은 생존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재난대응책이 됐다.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4차 산업혁명, 미국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 독일의 인더스트리4.0, 중국의 O2O, 일본의 소사이어티5.0.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지만 결국 이들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 오프라인 세계와 온라인 세계의 일치다. 지난 몇 달간, 어떤 정책이나 규제 혁신보다 훨씬 강력하게 전세계에 이런 노력을 이끌어낸 건 단연 ‘코로나19’다. 이제 명분까지 얻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향후 우리 사회를 진정한 산업혁명으로 이끌 것이다. 이 변화는 각별히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 등 정보기술 기업에 다양한 기회를 줄 것이다.

그로 인해 도시인들의 삶도 바뀔 것이 자명하다. 도시 활동을 ‘디지털 트윈’이라고 부를 만큼 통째로 온라인으로 옮겨와, 모든 도시 서비스가 인터넷에서 가능한 ‘스마트도시’ 시대로 점차 옮겨갈 것이다. 오프라인은 이제 사람들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공간, 사람들을 지나치게 많이 만나지 않으면서 사회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채워줘야 한다.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들이 몰리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나 전동킥보드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도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했으니 말이다. 도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을 통해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듬는 ‘삶의 그릇’이어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준 가장 의미 있는 점은, 우리가 선례를 만들고 세계가 그것을 따른 경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외국 성공 사례만 좇던 사대주의 문화 속에 이 경험은 향후 우리가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데 자신감을 줄 것이다.

덧붙여, 방역 과정에서 동선·신상정보 공개로 인한 사생활 침해가 인권과 충돌하게 되는 지점은 세심히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것이 가능한 데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단감염이 신천지 같은 이단종교나 게이클럽 같은 성소수자에게서 시작됐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가 암묵적으로 용인됐기 때문이다. 만약 서울의 유명 호텔에서 고위층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처음 벌어졌다면, 그들의 반응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일상

‘감염지도’를 만들고 공유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정부의 노력은 향후 정부의 영향력을 더욱 크게 할 것으로 예측된다. 개인주의 국가나 공공의료 체계가 부족했던 나라들이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정국에서 속수무책이었던 현실은 정부에 막강한 권력을 쥐게 해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개인 인권을 존중하는 대비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 산업 지형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다. 결핍이 욕망을 낳는다고 해도, 아마 한동안 해외여행은 엄두가 안 날 것이다. 국내여행으로 ‘로컬’을 발견한다지만, 사람 많은 관광지로 몰리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온라인 중심 랜선 산업 외에 제조업에도 기회가 올 것이다. 외국에 의지하지 않고 자국이 자족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금, 세계는 다시 리쇼어링(Reshoring·국외로 나간 자국 기업을 세제 혜택 등을 줘서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을 할 것이다.

치료제 개발이 급선무지만, 결국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려면 백신 개발이 가장 중요하다.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을 낫게 하는 것보다 걸리지 않도록 백신을 맞게 하는 것이 그들이 사회로 나와 경제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RNA 바이러스는 변이가 심해 백신 개발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전세계 과학자들의 노력이 인류를 내년쯤에는 안심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백신이 개발되고 다시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일상은 2019년의 일상은 아닐 것이다. 인류가 수개월 동안 함께했던 집단적 가택감금 경험은 새로운 세계에 눈뜨고 내 삶을 내밀히 들여다보는 놀라운 성찰을 제공할 것이기에 말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내는 우리에게 포스트 팬데믹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정재승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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