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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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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고용보험, ‘자격’ 대신 ‘소득’을

국세청 홈택스 기반으로 실시간 소득 파악하는
‘K-정책플랫폼’ 만들어 사회보험 개편 밑돌 놓아야
등록 2020-05-23 06:09 수정 2020-05-23 23:19
5월1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고 섬세하게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5월1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고 섬세하게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5월20일 제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선 예술인 중심 고용보험 적용 확대 법안과 ‘한국형 실업부조(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실업자에게 취업지원 서비스와 현금 등을 지원하는 제도)’ 법안이 통과됐다. 고용보험법은 2020년 11월 시행되지만 실업부조 법안 시행일은 2021년 1월로 연기됐다. 국회의 갑작스러운 법안 처리에 대비하지 못한 정부 탓이었다. 지난 한 달간 긴급재난지원금 논란 등으로 주목받은 사회안전망 확대의 출발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제21대 국회에선 정치권이 ‘소득 중심 사회보험(고용보험·연금보험·국민연금·산재보험 등 국민이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도록 보험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보장제도)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은 130주년 노동절이던 5월1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 정책세미나에서 나왔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려면 고용안전망 사각지대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소득 중심 사회보험 개편안’ 논의를 촉발했다.

근로자 적용 제외 조항 폐지, 보험료는 원천징수

문재인 대통령은 5월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천명한 데 이어, 12일 국무회의에서 “실기하지 말고 과감해야 하며 치밀하고 섬세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용안전망의 단계적 추진과 이를 위한 소득 파악 시스템, 그리고 재원 대책이 언급됐다. 좋은 정책은 실시 시기가 중요하고 때로 혁신적일 만큼 국민이 충분히 체감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각지대나 형평성 논란이 최소화된 상태로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소득 중심 사회보험 개편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당부한 것처럼 “과거에 머물면 낙오자가 되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지만 창의적 사고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우리 사회의 ‘확실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홈택스 기반의 월 단위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 구축과 부처 간 협업 체계를 통한 국세청의 사회적 징수 기능 통합 추진’이라고 본다. 이는 영국이 2013년 복지제도 전반을 개편하면서 도입한 RTI(Real Time Information) 시스템과 유사하다.

노동시장 변화로 플랫폼노동자 등 비정형 노동이 늘고 여러 개의 단기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가 생겨나자, 영국 국세청은 기존 소득세·사회보험료 징수 체계를 개편했다. 과거에는 사업주가 1개월 또는 그 이상의 주기로 임금 지급을 신고하고 이를 토대로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부과했는데, 이를 주기와 상관없이 사업주가 모든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마다 임금과 다양한 필수 정보를 국세청에 제출하도록 바꿨다.

우리나라는 현재 사업주가 지급한 일용노동자의 근로소득 내역을 분기별로 국세청에 신고한다. 이를 국세청 홈택스를 활용해 월 단위로 주기를 단축하자는 것이 필자의 핵심 제안이다. 또한 사회보험 적용 기준 중 근로일수와 근로시간 기준도 개정해야 한다. 현재는 근로자로서 사업주가 국세청에 근로소득을 신고했더라도 1개월간 근로일수가 8일 미만이거나, 근로시간이 월 60시간 미만인 일용노동자는 국민연금법과 고용보험법의 ‘근로자 적용 제외 조항’ 때문에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있다. 근로자임에도 사각지대가 된다. 국세청에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을 구축해 소득이 생기면 사회보험료를 원천징수하고 저소득 근로자나 자영업자는 사회보험료를 환급해 지원하도록 사회보험 체계를 개편하고, 징수 주체를 사회보험공단(국민건강보험 등)에서 국세청으로 이관하면 이러한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 이렇게 노동자·자영업자의 소득·매출 분포를 국세청이 적어도 월 단위로 실시간 파악한다면 사회보험뿐만 아니라 정확한 소득 정보를 바탕으로 지급 기준을 정하는 모든 복지정책에서 공통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은 사회보험료 지원을 통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일조할 것이다. 현재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특고)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를 예로 들어보자. 이들 노동자가 받는 수수료 등 소득이나 매출 정보를, 사업장 제공자인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기업이 홈택스에 월별·개인별로 신고한다고 치자. 그러면 특고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는 근로자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와 동일한 수준(고용보험료 0.8%, 연금보험료 4.5%)으로 납부하고, 기업은 현재 산업재해보험과 유사한 방식(노동자 소득 총액의 일정 비율 부과)으로 사회보험료를 부담하거나 수익에 비례해서 부담하게 하는 방법도 검토해볼 수 있다. 그간 사업자로 여겨져 다른 임금노동자보다 과도한 보험료를 내왔고, 그 탓에 가입을 기피한 특고노동자 등을 사회보험 안에 끌어안을 수 있다. 사회보험료 통합 징수가 가능해지면 현행 ‘두루누리 사업’(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저소득 노동자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 역시 확대해 필요한 사람에게 보험료 부담이 최소화하도록 직접 정확하게 지원할 수 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5월1일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 지형의 변화’ 정책세미나 축사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5월1일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 지형의 변화’ 정책세미나 축사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자영업자도 노동자처럼

자영업자(1인 사업자 포함)도 6개월마다 하는 부가세 신고·납부와 별도로 매출 정보를 매월 등록한다면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사회보험료율을 반영하는 게 가능해진다. 지금은 자영업자의 매출이나 소득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과세 목적의 사업소득금액이 지닌 한계 탓에 사회보험료율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2000년 이후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 제도로 거래가 투명해졌지만 필요 경비를 제외한 금액이 0인 자영업자가 상당수 존재한다. 이처럼 실질적인 소득 파악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에선 직역(자격)을 분리해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재산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부과해왔다. 이는 ‘유리 지갑’이라고 하는 직장근로자와 지역가입자 사이에서 불신과 형평성 논란의 원인이 됐다.

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대안으로 업종별 ‘조정소득’(자영업자 매출에 업종별 조정률을 적용해 산출)이 꼽힌다. 조정소득은 자영업자의 매출을 노동자의 근로소득처럼 환산하는 방식이다. 이는 근로장려금(저소득 근로자 소득 지원) 대상을 자영업자로 확대 적용하면서 새롭게 규정한 것으로, 기존 복지정책 전반에 쓰이는 사업소득금액을 조정소득으로 대체한다면 자영업자도 노동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보험과 복지사업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자영업자가 매월 신고한 매출과 이를 통해 산출한 조정소득을 기반으로, 임대료 책정도 가능하다. 미국 등에서는 매출 변동에 따라 임대료가 연동되는 방식이 적용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자영업자들이 건물주의 ‘착한 결정’에 의존해 임대료 부담이 줄어든 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임대료와 매출에 비례한 임대료 조정을 통해 경기가 나빠질 경우 부담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이 밖에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은 여러 정부 업무를 수월하게 한다. 현재 국세청이 교육부에서 위탁받아 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업무와 마찬가지로, 제20대 국회에서 개정된 양육비 이행법을 다시 개정해 관리 체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양육비 미이행 채무자의 소득과 매출을 파악하고 적절한 양육비를 원천징수해 한부모 가구에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각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기 힘겨워하던 각종 국고보조금 사업의 부정수급 환수 등을 ‘사회적 징수와 환급’이라는 새로운 역할과 기능으로 국세청에 부여하고 통합 운영한다면 사회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기본소득만이 아니라 사회서비스도 필요

지금까지 제안한 소득 중심 사회보험 개편안과 함께 사회서비스 확대와 공공성 강화 역시 우리 정부가 추진해야 하는 중요 정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지능정보 기술에 따라 일자리 감소와 대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대안적 소득보장 방식으로 유일하게 내세울 일은 아니다. 사회보험 개편을 통해 기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더불어 생애주기나 정책 대상별로 공공 영역에서 제공되는 돌봄·건강·문화·교육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확대하며 일자리를 확충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개편하기 위한 국세청 홈택스 기반의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과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된 ‘K-정책플랫폼’으로 디지털 혁신과 포용을 촉진하는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득 중심 사회보험 개편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경제-일자리-사회수석), 정부 및 산하기관(기획재정부·국세청-고용노동부·근로복지공단-보건복지부·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 그리고 국회에서 여야의 협치는 물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심으로 노·사·정 대타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한 소득 중심 사회보험 개편 범위는 고용보험을 넘어 노후 소득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시간제·특고·플랫폼 노동자와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보험료 징수와 지원체계 확대 개편, 소득 중심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전면 개편까지 실기하지 않고 적절하게 추진해야 한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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