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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알까, 18살 정유엽이 왜 죽었는지

발열·호흡곤란 치료 못 받고 병원-집-병원-집-병원 반복
코로나19 검사 결과 모른 채 사망… 유족 “대책 마련해야”

제1314호
등록 : 2020-05-22 13:59 수정 : 2020-05-2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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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엽군 부모가 경북 경산의 자택에서 5월20일 한겨레21 취재진과 이야기하고 있다.

정유엽은 끝내 학교에 가지 못했다. 5월20일, 코로나19 확산 공포 탓에 집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받던 전국 고교 3학년 44만여 명이 1학기 들어 처음 등교한 날이다. 18살 아들은 재잘대며 같은 반 친구들이 기다리는 경북 경산시 사동고 3학년 교실 문을 열어젖히는 대신, 이날 집 거실 사진 액자 속에 오도카니 멈춰 있었다. 또래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앞머리로 이마를 통째로 가린 생전 머리 모양 그대로였다.

“삼 형제 중 막내라 싹싹하고 착한 아이였어요. 빨래가 마르면 알아서 개고, 쓰레기 분리배출도 군말 없이 하는….”

아들은 3월18일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대구 영남대병원 음압격리병실에서 호흡부전으로 숨졌다. 코로나19 환자로 의심받은 탓에 가족 누구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괴로운 순간을 떠올리는 아버지 정성재(53)씨 표정이 일그러졌다. 학교 운동회 때면 이어달리기 반대표로 뛸 만큼 건강했던 아들이 숨을 거두기까지 석연치 않은 과정은 남은 가족을 더욱 힘들게 한다.

코로나19 확진 안 받아 치료 어렵다던 병원

아들은 이슬비가 내리던 3월10일 동네 약국에서 줄을 서 공적 마스크를 샀다. 그날 저녁부터 몸에 열이 오르내리더니 12일 오후엔 42도까지 치솟았다. 아버지는 저녁 7시30분께 선별진료소가 있는 집 근처 경산중앙병원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하지만 선별진료소는 오후 6시에 문을 닫은 상태였다. 병원 쪽은 당국 지침에 따라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아들을 응급실로 들여보낼 수 없다며 응급실 밖에서 체온만 잰 뒤 해열제와 항생제를 한 알씩 처방해주고 돌려보냈다. 2월 신천지교회를 중심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대규모로 확진자가 늘고, 경산에서만 누적 확진자 수가 500명 넘던 때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인근에 있는 경산세명병원은 밤 10시까지 선별진료소를 운영했는데, 당시 경산중앙병원 의료진은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경산중앙병원은 호흡기 환자와 비호흡기 환자를 나눠 진료하는 시스템을 갖춰 국가가 인정한 국민안심병원이다.

다음날 아침 찾은 경산중앙병원은 코로나19와 독감 검사를 한 데 이어 폐 엑스선도 찍었다. 병원 쪽은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치료를 진행하기 어렵다며 아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구토와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오후에 다시 방문한 경산중앙병원 쪽은 느닷없이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다”며 3차 진료기관인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보냈다.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병원 구급차를 내줄 수 없다는 병원 쪽 얘기에 직장암 3기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직접 차를 몰고 영남대병원을 찾았다.

아들을 살핀 영남대병원 역시 상황이 위급하다며 일단 음압격리병실에 입원시켰다. 그새 경산중앙병원 쪽 코로나19 검사에선 음성 결과가 나왔다. 영남대병원 쪽은 폐조직과 소변, 가래 등을 이용해 열세 번에 걸친 코로나19 검사를 추가로 했다. 이 역시 계속 음성반응만 나오다 마지막 검사 결과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검사에 오류가 있다며 이를 뒤집었다. 결국 하루하루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던 아들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확한 병명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입원 닷새 만에 숨을 거뒀다.

경산 시의원 “탄원서에 병원 쪽 이야기 빼라”

고열과 두통에도 코로나19 확진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기에 제대로 치료를 못 받은 정유엽의 죽음은 코로나19에만 모든 역량을 투입하느라 다른 질환자를 돌보지 못한 의료 공백의 문제를 보여준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연구공동체인 ‘건강과 대안’의 이상윤 책임연구위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정유엽군 사건은 방역 대응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의료 공백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일어난 의료 대응 실패”라며 “지금이라도 중앙정부가 나서 국민안심병원을 포함한 지역사회 의료기관에 코로나19로 의심되는 호흡기 증상, 발열 환자 단기 치료를 위한 공간과 시설을 확보하고 지역사회 진료 의뢰 체계를 명확하게 정비해야 한다”고 짚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같은 피해 사례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손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정유엽법’ 제정을 촉구했다. 또 유족에게 국가가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탄원서에 서명을 받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경산시의회 의원 15명 중 미래통합당 소속 9명 가운데 1명을 뺀 8명이 서명을 거부한 것에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는 “우리한테 경산중앙병원 쪽 얘기를 뺄 것을 요구하는 등 병원 쪽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우리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탄원서 서명이 일정 인원 이상 모이면 정세균 국무총리한테 제출할 계획이다. 또 5월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연 토론회에 참석해 관련 내용을 증언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유족은 병원을 상대로 소송도 검토 중이다. 경주에서 활동 중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두 병원을 대상으로 투약기록지, 간호기록지, 의사처리지시서, 중환자실 기록 등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대구지법에 내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병원 의료행위의 적법성, 코로나19 대응 과정상의 적정성, 대응 과정에서 의료 공백 여부에 대해 민간인이 참여하는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이 우선 필요한 사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에는 유엽이 냄새가 남아 있는데…

어머니 이지연(51)씨는 아들이 공부하던 방을 아직 치우지 못했다. 아들의 냄새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는 아들이 성당에 나갈 때 쓰던 묵주와 1월 베트남 다낭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산 손목시계, 팔굽혀펴기용 손잡이기구, 필통, 문화상품권 등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등교가 시작되면 교실에 가서 쓰려고 준비해둔 투명 텀블러가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뒹굴었다. “이런 것 떠줘도 다른 아이들처럼 잔소리하지 않고 잘 썼는데….” 이씨는 지난겨울 아들에게 직접 털실로 떠준 목도리를 들고선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른바 K-방역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한국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영국, 이탈리아 등과 비교했을 때 감염 관리에서 역량을 발휘한 덕이다. 이는 상대평가 점수다. 이제 절대평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자신은 왜 숨졌느냐고, 막을 수 있는 죽음이 아니었느냐고, 정유엽은 묻는다.

경산=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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