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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의 뉴노멀] 가까운 얘기부터

등록 2020-04-25 05:21 수정 2020-05-02 19:29
연합뉴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연합뉴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미래통합당이 딱 그렇다.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자고 하더니 선거가 끝나자 입을 싹 씻었다. 오랜만에 정책위의장이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재원 의원(사진 왼쪽)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다. 정부와 여당이 입장 정리를 못하는데 야당이 어떻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하겠느냐는 거다.

논쟁 지형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뒤바꿔 정당성을 확보하는 건 김재원 의원의 특기인 듯하다. 미래통합당의 공약 뒤집기는 순식간에 ‘정부도 설득 못하면서 야당 탓을 하는 여당’이란 프레임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시점에서 논의의 본질은 국회 내 합의다. 헌법에 예산 증액은 정부 동의를 받게 돼 있다지만, 이는 국채 발행 한도를 국회가 정하도록 해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한 대립에 관한 조항일 뿐이다.

결국 정세균 국무총리가 중재에 나서 정부와 여당은 ‘사회지도층과 고소득자의 자발적 기부를 통한 재정 부담 경감’이란 절충안에 합의했다. 현명한 국민이 과거 금 모으기 운동 같은 자발적 움직임을 통해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이 ‘안’ 자체가 완결성을 갖췄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궁여지책이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가 여야 합의로 이례적인 결단을 시급히 요구하고 정부가 이에 화답하는 모양새였으면 훨씬 깔끔했을 거다.

의문인 것은 이 시점까지도 미래통합당의 당론이 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지도부가 붕괴한 미래통합당으로서는 당론을 정하고 말고 할 수단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재원 의원의 ‘플레이’는 말 그대로 화려한 개인기에 비유할 만하다.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제1야당의 리더십 복구가 절실하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엔 ‘김종인(사진 오른쪽) 비대위’ 등장이 유력하다.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직을 맡는 조건으로 ‘기한 없는 전권’을 언급했다. 비대위는 조직이 정상화될 때까지 전권을 행사하는 초법적 기구다. 그런데 기한을 두지 말라니 이건 가히 독재나 다름없다. ‘여의도 차르(제정러시아 황제)’라더니 그 말대로다.

‘차르’의 논리는 대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대권 주자도 아니고 공천권도 없는 비대위원장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두 가지 수가 읽힌다. 첫째는 전당대회 일정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함으로써 당권을 둘러싼 전초전을 진압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당권 주자들에 대한 진압 수단으로 잠재적 대권 주자들의 기대 혹은 지지를 얻어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보수정치의 혁신은 ‘젊은 중도’를 목표로 해야겠지만 사전투표 음모론을 보수 유튜브 방송 제작자들과 진지하게 논하는 모습을 보면 혁신은 끝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830세대’(1980년대생·30대·2000년대 학번)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구에서 뭔가를 해보려던 청년들을 다른 지역에 꽂고 그마저도 뒤집어 기회를 뺏는 공천을 했던 걸 돌이켜보면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먼 얘기가 아니라 가까운 얘기부터 해야 한다. 최소한 재난 대책과 관련해선 정부·여당에 최대한 협조하며 중도적 통합 리더십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이 글이 나갈 시점엔 다 옛날얘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그런 때이니 독자 제현(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바란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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