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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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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니 다행이다

다행히 무료급식은 재개됐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로 더 힘들어진 홈리스들
등록 2020-03-29 13:28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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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확산되며 4주 동안 문을 닫았던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이 3월23일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같이 사는 홈리스 셋과 함께 정오에 서울 영등포역으로 합류했습니다. ‘토마스의 집’은 일주일에 5~6일 정도 점심을 나눕니다. 평소보다 훨씬 긴 줄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청년들, 등산가방을 멘 아저씨, 심지어 양복 입은 중년 신사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하나가 눈에 띕니다. 당뇨가 심해 폐지를 주우면서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입니다. 인사를 건네자 담배부터 찾습니다. 대열에서 잠시 빠져나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그의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밥 먹을 곳도 마땅찮고 인력사무소 나가도 그냥 돌아오기 일쑤라, 하루 두 끼만 어떻게든 얻어먹고 쥐 죽은 듯이 지냈어. 도서관도 죄다 문 닫아서 시간 보낼 곳도 없고. 그나마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지. 공원이나 한강에 나가 세월아 가라 하면서 살고 있지, 뭐.”

코로나19 영향 때문인지 급식은 예전처럼 30~40명이 교대로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비닐봉지에 담긴 간편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날 나온 건 주먹밥과 가래떡, 삶은 달걀 두 개와 주스. ‘토마스의 집’ 뒤쪽 광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양이 꽤 많습니다. 먹고 나니 든든합니다.

영등포역 주변에는 홈리스들이 잠을 청하는 쉼터가 몇 군데 있습니다. 옹달샘, 광야교회, 보현의집, 햇살보금자리. 대부분 큰 방 하나에 이불을 깔고 몇십 명이 함께 자는 형편이라, 그중 한 명이 감기라도 걸리면 여럿에게 옮는 일은 흔한데 코로나19 집단감염은 다행히도 아직 없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전 사회적 대의를 거스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금 의문이 생깁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란 물리적 거리 두기를 사회적으로 실천한다는 것 아닙니까?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더라도 이들을 도울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경원시하고, 거리낌 없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던 홈리스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생존의 위협을 받지만 이들을 위한 대책을 내는 지방자치단체나 정당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 장소, 환대. 지난해 제가 책이나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보았던 단어입니다. 영등포, 서울역, 청량리 같은 곳을 장소 삼아 이들에게 ‘절대적 환대’를 제공하는 일은 평범한 시민들이 비교적 쉽게 결단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입니다.

홈리스인 제가 일하는 희망사진관이 문을 닫은 터라 며칠 전에 실업급여를 탔습니다. 168만원. 이 돈으로 지난해부터 한남동 작은 주택 1층을 빌려 함께 사는 홈리스 식구 여섯 명과 함께 또 4주를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겨울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그들은 아직 몸과 마음이 크게 지쳐 있어서 돈벌이를 하진 못합니다. 결국 168만원으로 월세를 내고 일곱 식구가 4주를 살아야 합니다. 집주인 할머니는 지난 몇 달간 미국에 있는 딸네 집에 가셨더랬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며칠 전 급히 귀국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문자 한 통을 보내셨습니다. 좀 보자고, 꼭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우리 공동체 생활을 감지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나가달라고 할까봐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하지만 멀리 경남 창원에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보내준 쌀과 미숫가루도 있고, 지난 초겨울 경기도 안산에 가서 지인에게 받아온 김장김치도 아직 꽤 남아 있습니다. 무료급식소에서 졸라서 얻은, 집에 있는 홈리스를 위한 도시락도 있습니다. 때때로 거리에 나와 수제비나 떡국을 끓여 나눠 먹기도 할 겁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 봄을 함께 만끽할 생각에 들떠 있습니다.


글·사진 이상훈 광화문 희망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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