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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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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를 이기려면

등록 2020-02-29 13:56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부산의 라이더로부터 분노에 찬 카톡을 받았다. 배달의민족(배민)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부산센터 관리자들의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라이더들의 안전을 위해 지급하던 마스크와 손세정제 지급을 중단한다는 공지가 떴다는 것이다. ‘와, 역시 배민 멋지다’라는 흥분과 ‘아, 배민은 라이더들을 버리는 건가’라는 씁쓸함이 함께 일었다. 라이더유니온의 항의 공문과 입장문을 통해 마스크와 손세정제 지급은 계속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감염병과 일터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몸의 고열을 넘는 열정적인 직원

현재, 코로나19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고 한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 공급, 산소호흡기 등으로 몸이 바이러스와 싸워서 이기도록 지원할 뿐이다. 이를 대증치료라고 한다. 그런데 약이 없는 감염병이 또 있다. 바로 감기다. 우리가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으면, 의사들이 하는 말은 똑같다. 푹 쉬고, 따뜻한 물 자주 마시고, 약 잘 먹으라는 게 전부다. 약은 감기약이 아니라, 열을 내리는 해열제나 고통을 줄여주는 소염진통제다. 부족하면 주사를 맞기도 한다. 주사에 엄청난 공포가 있는 나는 바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항생제가 싫어서 필요 없다고 점잖게 거부한다. 이런 나도 일이 바쁘거나 다음날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주사나 링거주사를 맞는다. 세상에는 주삿바늘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노동자는 상사의 눈치를 보든,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든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한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감기 바이러스를 퍼뜨리는가 하면,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도 감염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행위다. 하지만 몸의 고열을 뛰어넘는 열정적인 직원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한다. 만약 미열이 나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타인의 건강을 위해 출근하지 않겠다고 하면, 체온보다는 직장 내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감기 걸리면 ‘소주에 고춧가루 풀어서 먹으면 된다’라는 민간요법은, 그렇게라도 감기 증상을 잊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비법이리라. 이 민간요법은 과로사나 감염성 질병에 취약한 부작용을 낳는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노동자가 병을 이길 수는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아프면 쉬는 게,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타인의 감염을 막기 위한 이타적 행동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쉼은 코로나19보다 두려운 일이다. 일하지 못한 만큼 시급이 깎이는 아르바이트노동자들은 휴업에 따른 손해를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의 배달라이더나 자영업자들은 더 심각하다. 하루 일을 쉬면 수익 감소는 물론 영업 유무와 상관없이 빠져나가는 임대료와 렌트비 때문에 갚아야 할 돈이 쌓인다. 코로나19로 배달을 중단한 배달대행업체 소속 라이더는 하루아침에 생계가 끊겼다.

‘유급질병휴가’를 제도화한다면

배민이 직원들을 위해 도입한 재택근무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감염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해볼 만한 일이다. 의료비 등 추가 감염으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상사의 눈치가 보여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노동자에겐 ‘유급질병휴가’ 같은 제도화된 권리를 부여하는 게 어떨까. 유급병가제도를 둔 회사가 있긴 하나 소수에 그친다. 산업재해처럼 자영업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보험 신설도 생각해볼 수 있다. 환자의 면역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의학적 치료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면역력을 확충하기 위한 제도적 해법도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들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사회적 영양제와 산소호흡기가 필수적이다. 유급질병휴가제도를 긴급하게 도입해보고, 사회적 임상시험이 끝나면 상시적 제도로 만드는 백신 개발을 제안한다. 복잡하다면 재난 지역에 한시적 기본소득 지급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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