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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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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손님’ 아니라 세상 보여준 ‘어른’이었다

배우 박시은·진태현 딸 석세연씨…
“18살 넘어도 ‘어른의 도움’ 필요해요.”
등록 2020-02-22 14:29 수정 2020-05-02 19:29
배우 박시은·진태현 부부의 딸 석세연씨. 아름다운재단 제공

배우 박시은·진태현 부부의 딸 석세연씨. 아름다운재단 제공

안녕하세요, 제1286호(2019년 11월11일) 표지 ‘열여덟 살 어른’을 썼던 신선(27)입니다.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당사자 캠페이너로, 아동양육시설 보호종료아동들을 만나 인터뷰했죠. 석 달 전 아홉 명의 이야기를 전했던 제가 이제 마지막 인터뷰이를 소개하려 합니다. 배우 박시은·진태현씨의 딸 석세연(23)씨입니다.
37년간 입양 업무를 한 담당자도 생소하다는 성인입양, 그것도 연예인 부부의 입양으로 대중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입양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했습니다. 입양아를 ‘천사같이 착한 아이’로만 여기기도 하고, 입양을 “계 탔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입양됐으니 가족이지만 ‘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간의 시선과 달리, 세연씨는 입양 전후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쌓아온 관계가 호칭만 법적으로 변경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에도 가족이었고 지금도 가족입니다. 가족끼리 선을 지키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불편함이 느껴질 땐 여느 가정처럼 부모에게 그대로 털어놓고 상의합니다. 세연씨에게 가족은 선을 지켜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서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삶을 같이하는 동반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생소한 성인입양에 대해 잠시 ‘판단’을 멈추고, 열여덟에 어른이 되어야 하는 보호종료아동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건 어떨까요. 보호종료아동에게 세상살이 경험을 나눠주고 정서적으로 어깨를 빌려줄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편견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세연씨 인터뷰에서 느끼게 되시길 바랍니다.

성인이 되고 나면 모든 걸 혼자 해결할 수 있을까? 성인도 처음 겪는 일을 홀로 해결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다 큰 어른’이지만 부모에게 의지하곤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20대, 30대를 넘어 죽을 때까지 인생을 함께 걸어갈 부모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동양육시설을 떠나 홀로 사회에 나온 만 18살 이상 보호종료아동들은 주변에 조언을 구할 어른이 없다. 진학·취업·결혼·육아 등 대소사를 마주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스스로 ‘한계’ 선 긋던 나에게

세연씨가 살던 보육원 원장님은 아이들에게 최대한 가정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분이었다. 단체생활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도 가족 단위 식사를 추구했다. 학교 급식처럼 일렬로 세워놓고 배식해주는 풍경은 없었다. 보통의 부모처럼 ‘아이들이 악기 하나쯤은 다뤄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셨다. 배우고 싶다는 악기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세연씨 아버지 역시 형편상 같이 살지는 못했지만 딸 사랑이 애틋했다. 매일 저녁 세연씨와 통화하며 하루를 마무리했고, 쉬는 날이나 명절엔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세연씨는 ‘큰 부족함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가족과 떨어져 단체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사춘기 시절 방황이 꽤 길었다. 중학생 땐 학교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등교를 거부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알코올중독임에도 일하기 위해 출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했다. 학생이라는 제 본분도 다하지 않으면서 상황만 탓할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성실히 등교해 수업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특히 미술 시간에는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디자인에 본격적으로 관심 갖게 됐다. 세연씨의 방황을 지켜보며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원장님도 ‘세연이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평범한 가정에서도 예체능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원장님은 비용 걱정에 앞서 응원을 보냈다. 미술학원도 곧바로 알아봐주셨다.

세연씨가 꿈을 가지고 노력하자, 그동안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환경이 ‘최고의 환경’으로 바뀌었다. “제가 꿈을 위해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자 모두가 저를 응원했어요. 오히려 보육원에서 지냈기 때문에 많은 분에게 넘치는 사랑과 응원을 받았고 꿈을 이루도록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좋은 보육원에서 좋은 원장님과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저에게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더 큰 세상 보여준 부모님

세연씨는 원장님 품을 떠나 홀로 서게 될 ‘보육원 이후의 삶’을 걱정했다. 현실에 맞춰 자신의 꿈을 ‘제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3 때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마저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설상가상으로 남은 빚까지 해결해야 했다. 세연씨는 더욱 위축됐다.

천만다행으로 세연씨에게 큰 힘이 되어준 어른들이 있었다. 대학입시와 아버지 장례 등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세연씨 곁을 지킨 배우 박시은·진태현 부부다. 두 사람은 세연이 고2 때 제주도 보육원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처음에는 ‘잠깐 와서 사진만 찍고 떠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세연씨는 그런 편견 탓에 ‘손님’들을 형식적으로 응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보육원을 떠났다가 “아이들의 얼굴이 밟힌다”며 다시 돌아와 시간을 보내고 갔다. 세연씨의 편견도 서서히 사라졌다. 부부는 서울로 돌아가서도 유독 세연씨를 자주 떠올렸다고 했다. 보육원에서 어른스럽게 어린아이들을 챙기던 세연씨가 기특했던 것 같다. 부부는 세연씨를 서울 집으로 초대해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고, 자연스럽게 세연씨와 이모·삼촌의 연을 맺었다.

고교 졸업을 앞둔 세연씨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제주도라는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넓은 세상을 본 이모·삼촌의 생각은 달랐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세연씨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이모와 삼촌은 서울에 있는 미대 정보를 부지런히 찾아 알려줬다. 특히 자신들의 집 근처에 있는 대학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제안해주었다. “세연아, 우리 집 가까운 건국대에도 미대가 있네. 여긴 어때?”

세연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닐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이모와 삼촌은 세연씨가 스스로 세운 그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게 도왔다. ‘그래 까짓것 해보자, 대학 가서 장학금 받으면 되지’라는 용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서울에 있는 대학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했다.

세연씨가 뜻을 품기 시작하자 이모와 삼촌은 더욱 적극적으로 도왔다. 디자인 관련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고, 촬영 사이사이 쉬는 시간엔 여느 부모들처럼 대학 입시 요강을 공부했다. 제주도에 사는 세연씨가 서울에서 입시를 치를 때면 기꺼이 자신들의 집을 내줬다. 다른 수험생 부모처럼 이른 아침 시험장에 태워다주기도 했다. 세연씨는 말했다. “어려서부터 홀로 해결하기에 익숙한 저였지만, 새로운 환경에 뛰어든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그럴 때 부모님이 믿고 의논할 수 있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주셨어요. 경제적 지원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셔서 저 스스로 그어놓았던 한계를 허물 수 있었어요.”

부모님이 준 사랑, 나도 퍼뜨리길

4년간 가족 같은 인연을 이어온 세연씨와 박시은·진태현 부부는 “이모”와 “삼촌”이라는 호칭을 “엄마” “아빠”라고 바꾸며 법적으로도 가족이 되었다. 부모는 세연씨를 입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게 분명한데, 우리의 딸인 너를 법적으로도 완전하게 보호해주고 싶다. 또한 네 모습을 보면서 입양에 대해 기대할 수 있게 됐고 그 첫 문을 열어준 게 너다. 그게 우리가 널 첫째 딸로 선택한 이유다. 그러니까 의심을 갖지 말고 너를 시작으로 우리의 선행이 시작됐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세연씨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미대를 졸업한 뒤 자신만의 디자인팀을 꾸렸다. 졸업 전시에서 대상을 받고, 대통령상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직업적인 자부심도 대단하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수단일 뿐 꿈은 아니라고 말한다.

세연씨는 부모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그동안 주어진 환경에 체념하듯 만족하면서 매사에 ‘한계’라는 선을 그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애초에 내 환경을 너무 잘 알아서 거기에 맞는 꿈만 꿔왔기 때문에 ‘부족함 없는 환경’이라고 여겼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보호종료를 앞둔 세연씨에겐 디자이너라는 꿈을 위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크게 보였다. 주거비용, 등록금, 재료비, 생활비 등 당장 닥칠 현실에 갇혀 본인이 거주하던 제주도라는 공간 너머의 꿈을 꿀 수 없었다.

“부모님을 통해 보고 배운 것처럼, 한 명의 아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설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어요. 그것이 제 진짜 꿈이에요. 현실적인 조건들 때문에 선택지를 좁혀야 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충분히 꿈을 꿀 자격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부모님에게 받은 선한 영향력을 이어나가며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해주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부모님은 저 한 사람에게 사랑을 쏟은 거지만, 저를 통해 퍼지고 또 퍼져 결국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관심과 경험 공유만으로도 큰 변화

그런 의미에서, 세연씨는 자신의 인터뷰가 ‘성인입양’에만 국한돼 조명되길 바라지 않는다. 세연씨에게 부모는 입양이라는 법적 절차 이전부터 큰 의미였다. 박시은·진태현 부부는 4년 전 처음 세연씨를 만난 뒤로 꾸준히 관심과 응원을 보내줬다. 그때부터, 세연씨는 누군가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동행해주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했다. 그 생각이 세연씨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는 “누군가를 돕는 방법이 꼭 어렵고, 대단한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입양이나 금전적 지원이 아니어도, 진실한 관심과 행동들, 지식과 경험들이 보호종료아동의 인생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신선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캠페이너 tistis10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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