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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추첨’ 뒤...위경련이 왔다

대한민국 각자도생 지옥도 ‘경쟁률 3:1’ 초등학교 돌봄교실 추첨,
나만 살기 위해 다른 모든 이를 저주하다
등록 2020-02-15 06:14 수정 2020-05-02 19:29
1월29일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초등 돌봄교실’ 추첨식 현장. 정원은 적은데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3 대 1을 넘어섰다. 한겨레 임지선 기자 제공

1월29일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초등 돌봄교실’ 추첨식 현장. 정원은 적은데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3 대 1을 넘어섰다. 한겨레 임지선 기자 제공

“당첨되지 마라… 떨어져라….”

하마터면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1월29일 오전 10시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강당. ‘초등학교 돌봄교실’ 추첨식에 참여한 80년생 임지선씨, 그러니까 나는 세상 가장 악독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추첨 순서가 된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아이의 방과후를 1년 동안 책임져줄 돌봄교실의 정원은 22명, 내 추첨 순서는 48번째였다. 기적이 필요했다.

지푸라기에 그치는 ‘온종일 돌봄체계’

“초등 돌봄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2월12일 비영리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초등 돌봄교실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공개한 웹자보의 첫머리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학기를 앞두고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지역별, 학교별로 살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은 남의 나라 이야기, 대한민국 현실에선 나만 살기 위해 한 동네 애들을 모두 저주하며 ‘각자도생’해야 한다. 초등 돌봄교실 추첨식은 그 지옥도의 한가운데 있다.

내가 추첨식에 참여한 이 학교는 경기도에서 돌봄교실을 운영하는 1291개 초등학교 중 한 곳으로 여러 면에서 ‘경기도 표준’이라 할 수 있다(경기도교육청 집계, 2019년 4월 기준). 돌봄교실을 1·2학년에만 뒀고, 한 학년당 한 학급(22명 정원)씩만, 아침·저녁 돌봄은 없이 오후돌봄(오후 1~5시)만 제공한다. 방학 중에는 시간제 돌봄전담사에게 하루 6시간의 급여만 주기 위해 오전 9시~오후 2시30분만 운영한다. 맞벌이 부부의 출퇴근 시간 따위는 안중에 없다. 당첨돼도 학원이나 등하교 도우미를 알아봐야 한다.

초등 돌봄교실은 문재인 정부가 취임 뒤 국정과제로 확정한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의 핵심 정책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에게는 그저 ‘지푸라기’와 같다. 잡는다고 숨통이 트이진 않지만 그마저도 안 잡기엔 너무 절박하다. 교육부는 초등 돌봄교실을 ‘방과후에 돌봄을 원하는 맞벌이 가정 자녀 등에게 돌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 정의한다. 오후 1~2시면 끝나버리는 초등학교, 하교 뒤에 별도 교실에서 시간제 계약직인 돌봄전담사가 아이들을 모아 돌보는 것이 일반적 형태다.

‘온종일 돌봄체계’라는 이름과 달리 초등 돌봄교실이 현실에서 ‘지푸라기’에 그치는 이유는 운영 방식 때문이다. 수요에 맞추지 않는 공급 정원, 저소득층·한부모·맞벌이 등 엄격히 제한된 지원 자격, 부모의 출퇴근 시간조차 고려하지 않은 운영 시간, 모든 업무를 시간제 계약직 교사에게 떠넘기는 구조, 방학 중에는 급식을 끊거나 일찍 문 닫는 행태 등이 그렇다.

참여연대는 2018년 5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이행 1년 평가를 하며 “전체 초등학생의 12.5%만이 공적 돌봄을 이용하고 있어 이 시기의 돌봄 공백은 여성 양육자의 경력 단절, 아동에 대한 방임, 과도한 사교육 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아동 관련 공공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의 절반 수준으로 낮다고 지적했다.

초등 돌봄교실은 2004년 정부가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내놓은 ‘방과후 교실 사업’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맞벌이 부부의 양육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학기 중에는 저녁 7시까지, 방학 중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현재처럼 학기 중에 오후 5시, 방학 중에 오후 1~3시만 운영하는 돌봄교실이 많은 것이 얼마나 정책 취지에서 벗어난 것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정식 추첨식 전에 추첨 순서까지 뽑아야 했다. 뒷순서인 ‘48번’ 공을 뽑고 망연자실했다. 한겨레 임지선 기자

정식 추첨식 전에 추첨 순서까지 뽑아야 했다. 뒷순서인 ‘48번’ 공을 뽑고 망연자실했다. 한겨레 임지선 기자

남을 응원할 때가 아니다

아이가 1학년이던 지난해 여름, 초등 돌봄교실의 방학 중 단축 운영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교장실을 찾았다가 들은 말을 잊을 수 없다. “학기 중에 돌봄교실이 5시에 끝나는 것도 황당한데 방학 중에는 오후 2시30분에 끝나다니, 그 시간에 맞벌이 부부가 어떻게 퇴근하나요?”라고 묻는 내게 교장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때쯤이면 학원 갈 시간 아닌가요?”

정부는 돌봄교실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지난해와 올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정원은 그대로인데 수요가 늘어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올해도 1학년과 2학년 각각 돌봄교실은 한 학급, 22명 정원이다. 저소득층·한부모·조손가정·맞벌이 다자녀 가구 아이가 1~4순위로 먼저 배정받고 ‘(자녀가 3명 미만인) 일반 맞벌이 부부’는 마지막 5순위다. 추첨에 앞서 한 교사가 “1~4순위를 우선 배정한 결과 이제 1학년은 15자리, 2학년은 17자리 남았다”고 공지했다. 5순위 신청자는 1학년이 54명, 2학년이 61명. 경쟁률은 3 대 1을 훌쩍 넘겼다.

평일 오전에 열린 돌봄교실 추첨식에는 100여 명의 학생 보호자가 몰려들었다. 맞벌이 부부의 사정과는 관계없이 잡힌 일정에 휴가를 내지 못한 부모들은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도우미를 추첨식 현장에 보냈다. “내가 잘못 뽑으면 내 아이·손주·조카는 어쩌나” 여기저기서 속삭였다. 정식 추첨 전, 추첨 순서까지 추첨했다. 내가 뽑은 탁구공에 쓰인 ‘48’이란 숫자가 원망스러웠다. 나처럼 뒷순서를 뽑은 이들은 절망감에 지지 않으려 애쓰며 추첨을 지켜봤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들 부부를 대신해 추첨에 왔다며 “청심환을 먹을걸 그랬다”고 후회하던 할머니가 당첨표를 뽑았다. 기쁨의 비명에 잠시 웃던 사람들은 다음 순서로 ‘대기 30번’ 표를 뽑고 망연자실한 또 다른 할머니 얼굴을 보며 웃음을 멈췄다. 포기자가 거의 생기지 않는 돌봄교실에서 ‘대기 30번’은 ‘꽝’의 다른 이름이다. 다음으로 쌍둥이 엄마가 ‘당첨’을 뽑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한꺼번에 두 자리가 날아갔다. 남을 응원할 때가 아니다.

피가 말랐다. 드디어 40번대의 추첨 순서가 찾아왔다. 남은 ‘당첨’ 자리는 5개, 앞에서 ‘꽝’을 많이 뽑은 덕분이다. 줄 서 있는데 45번 순번인 한 아빠가 당첨을 뽑았다. 이제 네 자리… 이기심은 절정에 이르렀다. ‘다 꽝 뽑아라, 제발!’ 내 바로 앞사람도 당첨이다. “안 돼!” 이제 세 자리… 내 차례가 와 추첨함에 손을 넣는데 심장 소리가 몸 밖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손을 휘저어보니 구석에 잡히는 표, 이걸 꺼낼까 말까.

“초등학교 돌봄교실만 이용” 93%

언제까지 이런 추첨을 계속해야 할까. ‘정치하는 엄마들’ 돌봄팀이 1월 말부터 2월12일까지 2주 동안 진행한 설문을 보면 곳곳에 분노가 서려 있다. 응답자 121명 중 절반 넘는 52%(63명)가 “우리 아이 초등학교에서 돌봄 추첨식을 했다”고 밝혔다. 응답자는 서울, 경기, 인천, 강원, 충청, 전라, 제주, 울산, 부산 등 전국에 걸쳐 있었다.

추첨식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한 응답자는 “아이들을 맡길 곳을 찾아야 하는 조급함과 내가 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불안해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응답자는 “이래서 다들 애가 초등학교 가면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는구나 실감했다”며 “차라리 초등 취학 전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적었다.

정부는 학교 밖 돌봄 시스템과 연계해 ‘온종일 돌봄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정치하는 엄마들’ 돌봄팀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93.2%가 초등학교에 설치된 돌봄교실 외에 지방자치단체 등 다른 곳이 운영하는 돌봄교실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런 곳이 없거나 몰라서”(43.1%), “거리가 멀어서”(33%) 같은 이유가 주를 이뤘다.

초등 저학년의 돌봄을 학교 밖 기관에 맡기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미 2018년 10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내놓은 ‘초등학생 돌봄 실태 파악 및 수요 분석 연구’ 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용역). 초등학교 자녀가 있는 전국 5천 가구, 5062명에게 한 조사에서 방과후 돌봄 서비스 이용시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단연 “접근성’’(59.9%)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더라도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멀리 혼자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초등학교 공간 안에서 돌봄 서비스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보고서는 “미취학 시기에 제공되던 전일제 보육 등 종일 돌봄 서비스 지원이 초등학교 입학 시기 이후 단절됨에 따라 일하는 부모들은 초등학생 자녀 돌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며 “방과후 돌봄 시설은 아동의 거주 지역이나 학교 인근에 설치되어야 하고 돌봄 공백이 없도록 이용 시간을 설계해야 한다”고 밝혀 적었다.

이 연구에서 설문조사에 기초해 초등 돌봄 수요를 추정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전체 195만7843가구(2016년 인구총조사 기준) 중 필수 수요만 57만2869가구, 최대 수요는 146만 가구가 넘었다. 이용 자격 제한만 완화하면 유료라 해도 이용 의향이 있는 수요가 119만 가구였다. 하지만 초등 돌봄교실 이용자는 2017년 24만5303명, 2018년 26만1287명, 2019년 29만358명에 그친다. 교육부가 2018년부터 올해까지 줄곧 목표치로 제시하는 ‘2022년까지 초등 돌봄교실 31만 명을 포함해 학교 및 마을 돌봄 53만 명’이란 목표치를 보면 올해 같은 추첨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초등 돌봄교실 정책에서 서울과 서울 외 지역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사진은 서울 지역 한 돌봄교실 모습. 정용일 기자

초등 돌봄교실 정책에서 서울과 서울 외 지역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사진은 서울 지역 한 돌봄교실 모습. 정용일 기자

추첨하고 나오니 위경련이…

초등 돌봄교실 정책에서 서울과 서울 외 지역의 격차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을 3학년까지 운영하도록, 계약직인 돌봄전담사의 근무시간도 방학 중 8시간으로 하도록 권고한다. 또 서울 지역 공립 초등학교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 찾기 힘든 오후 5시 이후 ‘저녁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정보를 알 턱 없이 용감하게도 ‘맞벌이 학부모’의 길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 나는 그리하여 추첨식 날 어찌 됐을까? 제일 구석에서 잡힌 표, 망설이다 확 잡아올렸다. ‘선정’ 두 글자가 박혀 있었다. 당첨이었다. 축하한다고, 나보다 앞서 ‘꽝’을 뽑은 윗집 엄마가 영혼 없이 말을 건넸다. “같이 돌봄교실 다니게 되면 나중에 급할 때 5시 이후 애를 봐주겠다”던 옆 반 할머니는 ‘꽝’을 뽑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추첨식 두 시간 동안 긴장한 때문인지 위경련이 시작됐다. 슬며시 학교를 빠져나왔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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