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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총장은 찬성했지만 윤 총장은 반대하는 것

추미애 법무부 장관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미묘한 파장
등록 2020-02-15 04:54 수정 2020-05-02 19:29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월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취임 뒤 처음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소장 공개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월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취임 뒤 처음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소장 공개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의 하나로 추진하는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방침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수사와 기소 분리’는 검찰개혁의 중요한 원칙이지만, 추 장관이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를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은 탓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수사 효율성을 이유로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사건은 기소는 물론 재판까지 참여해왔다.

문 전 총장, 검찰 내부 견제 장치도 마련

추 장관은 2월11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사가 특정 사건의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수행할 때 중립성·객관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 장관은 다음날 대검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쏟아져나오자,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윤 총장에게 취지를 잘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조 검찰국장의 대검찰청 방문을 거절했다. “법무부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오면 그때 설명을 듣겠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추 장관은 윤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기소 분리’의 취지 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윤 총장은 ‘수사·기소 분리’가 실무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한다. 윤 총장은 또 “권력형 부패 범죄에 대응하는 데 심각한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도 추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의 이런 태도는 전임자인 문무일 전 총장과 대비된다. 문 전 총장은 2019년 5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논란이 됐을 때 “수사 착수한 사람들이 기소권까지 가진 건 용납하기 어렵다. 현대 민주국가의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추구하는 민주적 원리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경찰에 1차 수사권과 함께 종결권까지 주는 안에 반대하는 근거로 한 말이었지만, 수사와 기소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문 전 총장은 검찰 수사를 견제하는 내부 장치도 마련했다. 2018년 7월 도입한 ‘인권수사자문관’ 제도가 대표적이다. 법리적 쟁점이 있는 사건 등에 인권수사자문관을 투입해 수사기록 전체를 검토하게 한 뒤 적극적으로 수사팀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레드팀’ 역할을 수행하는 제도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인권수사자문관 제도는 검찰의 직접 수사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특수부 검사들의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문 전 총장은 ‘검란(檢亂)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며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직접 수사 축소하면서 특수부 규모는 늘려

하지만 문 전 총장의 이런 조처는 청와대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를 두고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적폐 수사’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청와대는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 규모는 윤 지검장의 요구대로 늘려줬다. 윤 지검장은 당시 문 총장이 추진하는 수사 견제 제도에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은 검찰개혁보다는 수사 효율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문 전 총장과는 캐릭터가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말처럼 검찰 안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관계자는 “검사는 기본적으로 기소를 전제로 수사한다. 기소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기소가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수사 효율성도 떨어지고 사기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직접 수사 경험이 많은 베테랑 검사들의 수사 논리를 다른 검사들이 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특수부 등 인지수사 부서에서 일하는 검사들은 능력도 뛰어나고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런 검사들에 맞서 형사부나 공판부 검사들이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수사와 기소의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인지적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사 검사는 확증편향에 빠져 유죄의 증거에 집착하고 그 반대의 증거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헌법상 무죄 추정은 수사 현실에서는 유죄 추정으로 작동한다. 형사법학자들이 수사-기소-재판을 각각 분리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추 장관의 ‘수사·기소 분리’ 제안은 야당과 보수언론에서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관련자 13명의 공소장을 비공개한 결정에 이은 ‘정권 방어용 조처’라는 것이다. 또한 4·15 총선이 끝난 뒤 진행될 선거법 위반 수사에서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는다.

무죄 추정이 수사 현실에서는 유죄 추정으로

법무부는 이런 비난을 의식한 듯 2월13일 추가 자료를 내놨다. 법무부는 “전임 검찰총장도 ‘수사에 착수하는 사람은 결론을 못 내리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라고 말했고, 상당수 검사들도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며 “대검과 긴밀히 협의해서 일선 검사와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시범적·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청와대 하명 의혹’ 등 검찰에서 직접 수사 중인 사건에는 이 제도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총선 관련 수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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