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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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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평범한데 왜 엄마가 극성이냐고요?”

학령인구 12~14%, ‘느린학습자’ 엄마들의 방담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서 엄마와 아이들만 속앓이
등록 2020-01-16 04:01 수정 2020-05-07 02:01
1월8일 느린학습자의 엄마들이 한데 모였다. 오른쪽부터 김보라(가명)·박해인(가명)·오미정씨. 맨 왼쪽은 대안학교인 인디학교 송민기 교장. 류우종 기자

1월8일 느린학습자의 엄마들이 한데 모였다. 오른쪽부터 김보라(가명)·박해인(가명)·오미정씨. 맨 왼쪽은 대안학교인 인디학교 송민기 교장. 류우종 기자

새해가 되면 엄마의 마음은 졸아든다. 불안한 속을 달래려 주문을 외듯 소원을 빈다. “올해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3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과 6살 딸을 둔 김보라(가명)씨는 간절했다. “우리 아이를 조금 더 봐줄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둔 박해인(가명)씨는 아예 두 손을 모았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아들을 둔 오미정씨의 바람도 10년째 똑같다. “지금이 다들 마음을 졸일 때예요. 새 학년에 올라가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하고요.” 잠시, 세 엄마는 조용히 웃으며 서로의 바람을 위해 기도했다.

ADHD, 발달장애와는 달라

이들은 ‘느린학습자’의 엄마다. 느린학습자는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지능보다 낮은 ‘경계선지능’(지능지수 70~85)을 가진 이들을 뜻한다. 주의력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낮으며, 감정·의사 표현에 서툴러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만 정신지체나 ADHD(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와는 다른 인지, 정서, 행동, 사회성 발달을 보인다. 또 발달이 다소 느리지만 지적장애·자폐스펙트럼장애 등 발달장애 범주에 들지는 않는다. 학령인구(만 6~17살)의 12~14%가 느린학습자인 것으로 추정한다. 한 반에 3명꼴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자녀를 둔 엄마들을 1월8일 서울 성북구 ‘느린학습자 마을배움터’에서 만났다. 아이들처럼 장애인 부모 사이에도, 비장애인 부모 사이에도 끼지 못한 채 아이를 지키려 애쓰는 엄마들의 소박하지만 절박한 새해 소망을 들었다. 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 ‘느린학습자 워킹그룹’ 프로젝트 매니저 오미정씨는 자신의 경험에 더해 다른 느린학습자 엄마들의 바람도 전했다.

보라 둘째 딸이 5살이던 2019년, 병원에서 경계선지능 진단을 받았어요. 딸은 언어 표현이 또래보다 1년 정도 뒤처져요. 신체적 발달이 느리고, 아직도 3살처럼 자기중심으로 사고해요. 그러면서 ‘무경계’ 특성이 있어요. 태권도학원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오빠들이 딸한테 뽀뽀를 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딸은 좋다고 오빠들한테 매달려요. 아무리 안 된다고 설명해도 그때뿐이죠. 사람을 좋아하는데 (상황에 대한) 판단과 구분이 없어요. 그런데도 (시간에 따라)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어 발달장애 등급은 나오지 않더라고요.

해인 아들이 5살 때(2014년) 지적장애 진단이 나왔어요. 지능지수가 68로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그 전까지는 언어발달만 느린 줄 알았거든요. 초등학교 입학할 때 다시 평가를 받으니 지능지수가 75로 나왔어요. 80이 나온 적도 있고요. 경계선지능인 거죠. 이제 5학년이 되는데 학습은 따라가요. 그런데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소통이 안 돼요. 조 활동을 거의 못해요.

병원 진단이 나온 순간, 엄마들의 각개전투가 시작됐다(제1289호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그날 이후 엄마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참조). 발달장애 엄마들이 거치는 고단한 경로를 그대로 따른다. 느린학습자는 발달장애는 아니지만, 신체·인지·행동·언어적 발달에 어려움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스스로 ‘치료 코디네이터’가 되어 아이에게 맞는 치료·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라이더’가 되어 아이를 치료기관으로 실어나른다. 아이의 고유한 특성인 경계선지능은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와 특수교육의 목적은 아이의 발달과 학습을 돕는다는 사실을 엄마들도 알지만 ‘완치’나 ‘극적인 변화’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특히 나이가 어린 영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노력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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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치료로 가계 파탄

보라 지금 딸은 장애아통합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개인 언어치료 주 2회, 그룹 언어치료 주 1회, 개인 감각통합치료 주 1회, 그룹 감각통합치료 주 1회, 사회성 그룹 치료 주 1회, 심리치료 주 1회를 받고 있어요. 태권도학원이랑 주말 프로그램이 따로 있고요. 정말 연예인 스케줄처럼 다니고 있어요. 금전적 부담을 줄이려고 최대한 사설 치료기관을 덜 가고, 서울 전역의 무료 프로그램을 찾아다녀요. 저는 열심히 알아봐서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세팅(맞춤)한 건데, 어떤 사람은 그러더라고요. ‘치료 쇼핑’ 다니냐고.

해인 우리 아들도 특수체육, 심리체육, 놀이치료, 언어치료 등을 받았어요. 지금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까) 저도 지치고, 아이도 지쳐서 인지치료랑 사회성 치료만 하고 있지만요.

미정 아이가 고등학교에 갈 거라 치료는 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매일 치료실을 다녔어요. 허리띠 졸라매고 빚을 져서 한 달 150만원씩 냈어요.

보라 처음엔 한 달 200만원씩 들었어요. 첫째 아들도 느린학습자라 2살 때부터 3년간 엄청 썼어요. 유명 정신의학과 의사와의 1시간 상담에 60만원을 내기도 했죠. (6년째인) 지금은 많이 줄였지만 (느린학습자) 아이가 둘이라 부담이 커요. 다 빚으로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남편한테 약속했어요. “아이들 저학년 때까지만 치료하겠다”고. 이미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는 파탄 수준이에요.

치료비는 무거운 짐이다. 서울시 동북권 NPO지원센터의 ‘느린학습자 지원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실린 느린학습자 부모 대상 설문조사(2019년 6~7월 167명 대상) 결과를 보면, 발달 치료를 하며 겪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치료비로 “한 달 50만~100만원을 쓴다”는 응답자가 전체(150명)의 34%, “100만원 이상을 쓴다”는 응답자가 25%였다. 거의 전적으로 부모 몫이다. 발달장애 아동의 치료도 전혀 보장해주지 않는 건강보험이 비장애인 느린학습자 아동 치료를 지원할 리 없다.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는 일부 엄마는 정부로부터 아이가 발달장애 등급을 받거나, 특수교육대상자(주로 장애인이지만 장애가 없어도 특수교육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사람)로 선정되도록 노력한다. 아이가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되면 만 17살이 될 때까지 월 14만~22만원의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지원받을 수 있다. 물론 만 5살까지는 병원 진단 없이 발달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만 있어도 바우처를 받을 수 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가 되면 지급이 중단된다. 또 특수교육대상자가 되면 지역에 따라 월 12만~15만원의 치료 지원이 나온다.

일부러 아이의 장애등급 받기도

보라 첫째인 아들이 6살에 지적장애 등급을 받도록 만들었어요. 아이가 병원에서 (타고난 지능지수보다) 더 저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발달재활서비스 지원) 월 16만원, (특수교육대상자 치료 지원) 월 12만원도 절실해요. 그런데 막상 장애등급을 받고 나니까 정신적 충격이 크더라고요.

해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4년간 매년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했어요. 결국엔 다 안 됐어요. 기준보다 지능지수가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요. 올해 다시 신청하려고요. (장애등급이 없어서) 발달재활서비스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지원됐거든요. 요즘엔 한 달 몇십만원짜리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미정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들이 장애 진단을 많이 받아요. ‘어느 병원에 가면 장애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뭘 먹이고 검사를 받으면 아이의 조절 안 되는 부분을 부각할 수 있다’ 이런 정보가 부모들 사이에서 공유되거든요. 경제적 지원이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어요. 나중에 아이가 군대에 가서 문제를 겪지는 않을까. 사기 같은 경제적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많죠.

다른 부모들이 피하려는 ‘장애인’ ‘특수교육대상자’라는 지위가 느린학습자에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기도 한다. 특수학교나 일반학교 특수학급(도움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교실에서 느린학습자들은 또래에게서 자주 집단 따돌림, 소외, 폭력적인 괴롭힘을 당하지만 선생님도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한다.

보라 아들이 특수교육대상자지만 일반 교실에서 지내고 있어요. 특수교육대상자라고 다 도움반에서 모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어느 날은 아들이 치료기관을 다녀온 뒤 밥을 허겁지겁 먹는 거예요. “학교에서 급식 못 먹었어?” 물으니 “내가 바보 같아서 급식 못 먹었어. 교실에 혼자 있었어” 하는 거예요. 수시로 몸에 멍이 들어 오기도 하고요. 아이들도 아들이 쉬운 애라는 걸 아는 거죠. 그래도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잘한다” “잘 지낸다”고만 해요. 학교가 안전한 곳인지, 사지인지 너무 혼란스러워요.

해인 지난해 아이 서넛이 쉬는 시간 20분 내내 우리 아이를 복도 계단에서 둘러싸고 오도 가도 못하게 했대요. 그중 한 명이 바닥에 떨어진 밥풀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아이 식판에 올려놓기도 했고요. 담임 선생님한테 이런 사실을 알리고 (가해 아이들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선생님은 “저도 중간에 있어 어쩔 수가 없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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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못 보듬는 ‘느린학습자법’

미정 아예 친구들이 (느린학습자는) 교실에 못 들어오게 막거나, 화장실에 갔을 때 문을 잠그거나, 자기 물건을 일부러 (느린학습자의) 물건 사이에 갖다두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도 힘든 점이 있어요. 왠지 우리 아이만 보호하고 두둔하기도 어려운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아이는 도움반도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 아이는 (어려운 상황을 잘 이해하고 풀어나갈 만한)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면 1년을 편하게 지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험난하게 보내기도 해요.

2016년부터 이른바 ‘느린학습자법’이라는 개정 초중등교육법이 시행되고는 있다. 학습장애가 있는 특수교육대상자는 아니지만 지적 기능 저하 등으로 학습에 제약을 받는 ‘학습부진아’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를 담은 법안이다. 이후 학교 내에서 학생 맞춤별로 기초학력을 향상시키는 프로그램 ‘두드림 학교’가 확대되고, 수준별 분반 수업이 실시되고 있다. 학습권은 느린학습자가 보장받아야 하는 중요 권리이기 때문이다. 실제 느린학습자가 언어와 수학 등을 배우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일반 학생들과의 학업성취도 격차가 커진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있다. 해외 연구에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학습 격차와 또래의 괴롭힘으로 자존감이 무너지고 무기력에 빠진 느린학습자의 ‘학교 중도 탈락’ 비율이 일반 학생보다 10배 높다는 보고서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읽기, 쓰기, 셈하기 같은 기초학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느린학습자법이 느린학습자를 위한 법이라 불리기에는 부족하다고 엄마들은 말한다.

미정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영어·수학 과목에 상·중·하반이 있어요. 우리 아이는 다 하반에 들어갔어요.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아이에게도 “선생님이 너한테 맞게 가르쳐줄 거야” 말하고요. 그런데 여기까지예요. 우리 아이들은 학습만 느린 게 아니라 사회성도, 또래 관계도, 인지도, 신체도, 정서적 발달도 느리거든요.

보라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 지금도 학습이 어려워지면 침울해져서 교실 구석으로 가거나, 수업 중에 돌아다녀요. 그래서 저는 진학보다 진로에 관심이 많아요. 특수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해인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만 안 당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들은 느린학습자에 대한 법·행정적 용어를 정리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발달장애인이 생애주기별 특성과 욕구에 따라 지원받을 권리를 명문화한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제정된 것처럼, 느린학습자를 위한 법안도 만들어 누구나 영유아·학령기·청년기·성인기·노년기에 필요한 교육·고용·복지 서비스를 받기를 바란다. 현재 ‘기초학력보장법’ 제정안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육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가 있지만, 이 법안 역시 학교에서 ‘학습지원대상’의 기초학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보라 주변에선 말해요. “왜 아이를 장애인 못 만들어서 안달이냐” “돈도 없다면서 매일 치료를 다니냐”고. 겉으로 잠깐 봐서는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니까요. 제가 악착같이 (치료와 교육을) 시켜서 아이가 발전하면 “거 봐라, 가만히 둬도 알아서 크는데, 극성 부려서 돈만 버렸다”고 비난해요. 잘돼도 저에게, 못돼도 저에게 화살이 돌아오죠.

아이의 순탄한 일상을 위해

해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아이가 이런 도움이 필요하다”고 선생님에게 자꾸 말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선생님은 “아이가 멀쩡하고, 잘하는데 왜 그러시냐”는 식으로 답해요. 우리 아이가 조용하게 멍때리기를 좋아하고, 남한테 피해를 안 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 그런데 아이가 (또래와) 다른 점은 엄마들이 가장 잘 알아요. 그래서 좀더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미정 엄마들이 가족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멀쩡한 애를 두고 엄마가 극성을 떤다”는 거예요. “조금 늦을 뿐”이라는 거죠. 하지만 엄마들이 아이가 어릴 때 개입하는 것은 굉장히 잘한 일이에요.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개입하지 않다가 나중에 (경계선지능 특성이) 확연히 나타나버리면 부모들이 더 인정하지 못하거든요. (적절한 치료와 교육을 바라는) 엄마들은 전혀 극성 엄마가 아니에요. 아이가 꼭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요.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1년간 아이가 순탄하게 보내고, 청년이 돼서는 자기 밥벌이 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에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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