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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온 편지

유품은 알고 있다

11월4~21일 한베평화재단 ‘미안해요 베트남’ 20주년 기념 기록전 ‘확인 중…’

제1282호
등록 : 2019-10-08 12:46 수정 : 2019-10-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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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희생 유가족이 보관해온 유품과 기록.
“이 신분증은 우리 어머니의 유일한 유품이야.”

쩐민(79)은 한참이나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흡사한 종이로 된 어머니의 신분증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수십 년을 버텨준 종이였지만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색이 누렇게 바랬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가족이 간직한 유품을 ‘잠시 넘겨받으러 온’ 구수정 한베(한국·베트남)평화재단 상임이사에게 쩐민은 이 말만 되풀이했다. 신분증은 그에게 남은 어머니의 흔적 전부였다.

한국군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을 수색한다는 명목으로 거의 1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무참히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쩐민의 어머니 역시 이때 한국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쩐민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집은 잿더미가 돼 있었다. 그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을 뒤져 어머니의 신분증을 찾았다. 어머니가 침상 머리맡에 신분증을 놓아두던 습관을 몰랐다면 화마가 삼켰을 물건이다.

겉을 싼 코팅 비닐이 불에 녹아 우그러진 신분증을 사이에 두고 아들과 구 상임이사는 두 손을 맞잡았다. 두 손 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속절없이 흘러간 스무 해의 세월이 주름져 있었다. 한베평화재단은 2018년부터 희생자 유가족이 보관해온 유품과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저마다 간직해온 유품에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전쟁의 비극이 깃들어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일기장에, 마을 위령비에 그날의 한과 증오를 기록했다. 그것은 베트남전쟁의 역사가 됐다.

전쟁범죄는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2000년부터 시작된 <한겨레21>과 한베평화재단 등 시민사회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 이후 지난 9월9일 20년 만에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국방부는 “국방부에서 보유한 한국군 전투 사료 등에서는 주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베트남 꽝남성과 꽝응아이성의 17개 마을에 사는 학살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 103명의 청원서에 담긴 민간인 피해 인정, 사과, 피해 회복 조처는 또다시 아득해졌다.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전쟁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 수많은 기억과 기록의 편린을 모아 새로이 기록 중이다. 한국과 베트남의 서로 다른 기억을 마주하고 진실을 확인해가는 첫걸음이 될 ‘미안해요 베트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 기록전 ‘확인 중…’은 11월4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성동구 성동문화회관 1층 소월아트홀에서 열린다. <한겨레21>은 세 차례 걸쳐 아카이브 기록전에 전시될 희생자의 유품과 참전 군인, 종군기자의 물건 등을 미리 공개한다. 이번호에서는 아카이브 기록전을 기획한 서해성 감독이 편지 형식으로 전시물들을 소개한다.

여덟 번째 베트남 하노이행이었다. 1997년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개입’이라는 주제로 호찌민시 국립대학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한 구수정 한베(한국·베트남)평화재단 상임이사가 관련 자료를 모으러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와 호찌민을 여덟 차례 오갔을 때다. 외무부(한국 외교부)의 한 직원이 구 이사에게 문건 사본 하나를 건넸다. 출처가 뜯긴 채 얇은 종이에 흐릿하게 인쇄된 상태였다.


그런데 사본을 그대로 옮겨 써주기로 한 베트남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이후 그가 아무 말 없이 구 이사의 집 앞에 두고 간 전쟁범죄 조사 보고서 ‘남베트남에서의 남조선 군대의 죄악’이라는 제목의 사본 필사본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세상에 알리는 출발선이 됐다. 뒷날 <한겨레21>과 한베평화재단 등 시민사회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시작점이었고, 한베평화재단이 주최하는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기록전 ‘확인 중…’의 첫 기록이기도 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첫 보도 20주년

보고서의 사본 필사본을 본 구 이사는 2년 뒤인 1999년 <한겨레21> 제256호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기사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처음 폭로했다. 이후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친구는 “나도 꽝응아이성 출신이야”라는 말을 남긴 채 인연을 끊었다. 한국과 베트남 친구 사이를 갈라놓을 만큼 몸서리쳐지는 기록이었지만 이 필사본이 없었다면 잊혔을지 모를 비극이었다. 구 이사는 첫 폭로 이후 1965년부터 한국군이 주둔한 5개 성(꽝남성·꽝응아이성·빈딘성·푸옌성·카인호아성)을 중심으로 수십 개 마을을 돌며 기록되지 않은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모았다.

하지만 베트남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기록한 공문서를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2000년대 공문서 한 장을 복사하는 데도 한국돈으로 5천원에 이르는 4달러가 들었다.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보관하는 베트남전쟁의 흔적도 드물었다. 희생자 유가족은 희생자의 유품은커녕 영정으로 모실 사진도 없었다. 학살 뒤 한국군이 지른 불에 모조리 타 한 줌의 재가 됐다. 한베평화재단이 희생자 유가족 수백 명에게서 모은 신분증은 8개가 전부였다. 희생자 무덤을 수습하다가 발견한 총알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베트남 공항 보안검색대에 걸리자 압수를 피해 줄행랑치기도 했다.

베트남전쟁을 겪은 이들이 보관하는 유품과 기록은 공식 문서가 기록하지 않은 진실의 틈새를 메울 편린이 됐다. 이들의 기억과 기록을 모아 새로이 기록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아카이브 기록전은 ‘베트남전쟁 기록관’(가칭)을 만들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4·3기념관과 5·18기록관이 희생자의 죽음을 넘어, 제주4·3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을 역사로 기록해 후대에 전하고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한 것처럼.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44년이 됐다. 한국과 베트남 과거사의 정의로운 해결과 평화 구현을 위해 시민사회 단체들이 힘을 모았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도 20주년을 맞았다. 수많은 역사 흔적이 사라지기 전, 한베평화재단이 2018년부터 서둘러 그것들을 찾아나선 까닭이다. 구 이사는 10월1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시 제목인 ‘확인 중…’처럼 우리는 베트남과 한국에 흩어진 전쟁의 기억들을 모아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개인들의 기억이 하나의 증거가 되고 역사가 되는 첫걸음이죠.”

(왼쪽부터) 잡기장 첫 장(잡다한 것을 적는 공책), 다섯 개의 총알, 잡기장 안쪽, 쩌우 잎과 까우 열매를 찧던 절구통.

미공개 문서와 개인 기록·유품 전시

베트남전쟁 시기에도 베트남은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기록했다. 제한적이었지만 한베평화재단은 지금까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당시 베트남 언론 보도와 공식 문서를 모았다. 북베트남 언론이었던 <인민군대신문>은 1968년 4월 ‘미 적국과 박정희 용병 무리들의 극히 야만스러운 새로운 죄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들은 꽝응아이와 꽝남에서 1200명 이상의 우리 동포들을 살해했다”며 베트남 중부지방에서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뤘다.

베트남은 시·군 단위로 희생자 피해 규모를 조사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은 당위원회에서 만드는 역사책에 기록됐다. 수많은 사람이 무참히 죽은 학살 자리에는 희생자 이름을 새긴 위령비가 올라갔다. 한베평화재단이 2019년 베트남 꽝남성의 퐁니·퐁넛 마을에서 위령비의 하루를 담은 영상 속에는 빗자루로 위령비 앞마당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는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과 이른 아침 위령비에 향불을 올리는 주민의 모습이 각각 생생하게 담겼다.

한국에서도 역사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개인들의 증언과 기록이 있었다. 제305호 표지 ‘해병 중대장의 고백’으로 한 참전 군인의 용기 있는 증언이 나가자, 자신의 과거를 밝힌 참전 군인들이 <한겨레21> 앞으로 손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때 한 참전 군인이 한국에 홀로 있을 아내를 그리워하며 5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부친 편지 356통은 현재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다.

영화관에서 애국가가 나온 뒤 상영된 국정 홍보 ‘대한늬우스’에 출연했던 참전 군인 아버지가 눈감을 때까지 집 안 창고에 쌓여 있던 맹호부대 참전 기념 앨범과 표창장은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44년 만에 아들의 의지로 세상 밖에 나왔다. 당시 ‘대한늬우스’에 출연한 아버지의 영상은 참전 군인이던 아버지를 통해 베트남전쟁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더듬는 아들의 한베평화재단 인터뷰 영상과 겹쳐진다.

아카이브 기록전은 베트남과 한국에 흩어진 기억과 기록을 비교하며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의 전투 사료에 그려진 작전 위치는 희생자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자리와 절묘하게 포개진다. 수많은 공식 기록과 그 사이사이 개인들의 작은 기억과 기록이 합쳐지자 그날의 비극이 재현된다. 전시 공간의 한계로 펼쳐 보이지 못한 숱한 기록과 사진은 전시 공간 한쪽에 마련된 서고 안에서 실시간 분류되고 목록화돼 새로이 기록된다.

전시품에 담긴 서사는 편지로 소개

아카이브 기록전을 기획한 작가이자 문화 총괄 기획자인 서해성 감독은 평화우체국에 부치는 편지 형식으로 베트남전쟁을 겪은 이들이 보관하던 유품과 기록 등에 담긴 서사를 풀었다. 평화우체국(우체국장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은 평화를 전하고 수신하는 우체국을 뜻한다. 편지를 읽는 독자들이 혼자 읽고, 또 함께 읽어달라는 의미를 담았다. 아카이브 기록전은 11월4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성동문화회관 1층 소월아트홀에서 열린다. 폐회 전날인 11월20일 오후 3시에는 한국·베트남·미국 참전 군인 세 명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한베평화재단 후원 계좌 우리은행 1005-603-308131

문의 02-2295-2016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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