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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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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군경회는 꼬리 자르기, 보훈처는 방조”

불법 명의대여 사업 피해자들의 호소… “그 자체가 불법,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어”
등록 2019-05-20 04:51 수정 2020-05-02 19:29
5월8일 한겨레신문사 앞에 선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불법 명의대여 사업의 피해자 김원일씨. 그의 뒤로 상이군경회원들이 <한겨레21> 보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박승화 기자

5월8일 한겨레신문사 앞에 선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불법 명의대여 사업의 피해자 김원일씨. 그의 뒤로 상이군경회원들이 <한겨레21> 보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억장이 무너진다. 상이군경회의 ‘상’ 자만 들어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5월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만난 김원일(66)씨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회원들의 집회 현장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이는 통증이 올라왔다. 상이군경회원들은 이날 의 ‘보훈재벌의 탄생’(제1260호) 보도에 항의해 신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김씨는 상이군경회의 불법 명의대여 사업에 말려들어, 2015년 불과 몇 달 사이에 16억원을 날렸다.

보도가 나간 뒤, 상이군경회 불법 명의대여 사업의 피해자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제보 접수는 koala5@hani.co.kr). 김씨는 “상이군경회의 명의대여 사업은 그 자체가 불법일뿐더러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이런 사고가 터지면, 상이군경회 본부에서는 ‘사기꾼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꼬리 자르기에 나서고, 국가보훈처는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구제하는 조처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그는 “나같이 어리석은 피해자가 더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직접 제보에 나선 심경을 말했다.

“돈 계속 보냈는데 1원도 못 돌려받아”

그의 이야기와 고소장을 바탕으로, 피해 사건을 돌아본다. 김씨는 2014년 강원도 정선으로 귀촌했다가, ㅅ사의 박아무개 대표를 알게 된다. 박 대표는 자신이 “13년 전 상이군경회에서 한국전력 폐기물(폐전선 등)을 수의계약으로 납품받아 고철과 구리로 분리해 재판매하는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그 구조를 설계한 장본인”이라며 “상이군경회의 폐기물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동업을 제안했다.

김씨는 2015년 2월 ㅅ사 대표 박씨와 동업한다는 계약을 한다. 김씨가 물품 구입비를 부담하되, ㅅ사는 최소 10% 이상 순이익률을 달성해 두 사람이 같은 비율로 이익금을 나눠가진다는 내용이었다. 3월에는 ㅅ사 대표 박씨와 홍아무개 상이군경회 폐기물사업소장이 상이군경회 폐기물사업소로부터 한전 폐알루미늄을 공급받는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쓴다. 이때 약정서에는 “김덕남 상이군경회장이 폐기물사업소 대표”로 명시된 사업자등록증 등이 첨부돼 있었다. 김씨는 “곧바로 1억7천만원을 ㅅ사 계좌로 보냈다”면서 “김덕남 상이군경회장이 폐기물사업소 대표임을 믿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전 물품이 어느 정도 공급되고 있었다.

사업자등록증 김덕남 회장 이름 확인했는데

2015년 4월, 박씨는 김씨를 광주광역시의 한전 폐기물류센터로 데려가 폐전선을 보여주고 상이군경회 폐기물사업소의 황아무개 본부장을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아산공장에도 한전 폐전선이 있는데 2억원어치를 사면 1억원을 남길 수 있는 좋은 물건”이라고 유혹했다. 김씨는 아산공장을 방문해 물건을 확인하고, 어머니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2억원을 ㅅ사 계좌로 보냈다. 하지만 약속했던 한전 폐전선은 이때 이후 “단 1g도 들어오지 않았고” 보낸 돈은 “단 1원도 돌려받지 못했다”.

박씨는 5월에 미군부대 고철을 단독으로 납품받을 수 있다고 속여, 김씨로부터 4억원을 더 받아갔다. 이 중 1억원은 김씨가 현금으로 직접 전달했다. 앞서 약속한 아산공장의 2억원어치 물량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항의하자, 박씨는 “아산공장에서 작업 중”이라고 했다가 “도난당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박씨는 이후 “미군부대 물건만 나오면 한 방에 복구할 수 있으니 4억원을 빨리 마련해줄 것”을 김씨에게 재촉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김씨는 또 속아 넘어갔다. 6월에는 상이군경회 폐기물사업소의 황아무개 본부장이 “홍아무개 폐기물사업소장 명의로 된 전북 남원의 공장 부지를 인수해 폐기물 처리 공장을 세워 운영해보라”고 제안했다. 이 땅에 토지대금 2억원과 공장·야적장 공사비 4억5800만원 등 모두 6억5800만원을 투입했다. 이 땅과 공장은 지금 제3자 명의로 넘어가 있다. 김씨는 공장을 한 번도 돌려보지 못했다. “두 눈 멀쩡히 뜬 채 토지 매입 대금과 공장 건축비를 몽땅 날린 셈이다.”

김씨는 “2017년 홍아무개 폐기물사업소장이 ‘상이군경회 정관이 바뀌어 토지와 공장을 모두 상이군경회 명의로 해두어야 한전 폐기 물품 계약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명의변경을 종용해, 홍 소장이 일러준 다른 사람 명의로 넘겼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홍 소장이 대신 부담하겠다던 양도소득세도 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내가 세금 체납자가 돼 주식까지 압류당했다.” 회계 업무를 도와주던 김씨 여동생도 이 과정에서 1억7천만원을 날렸다. 김씨 남매가 상이군경회 폐기물사업소를 통해 ‘사기’당한 돈만 모두 16억원에 이른다.

김씨는 지난해 박씨와 인천폐기물사업소의 홍 소장과 황아무개 본부장 등 5명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본인과 여동생이 직접 고소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검찰에서 돌아온 답은 “혐의가 불충분하다”는 불기소 처분이었다. 김씨는 “너무 억울해서 올해 초 서울고검에 다시 항고이유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김원일씨 회사와 상이군경회 폐기물사업소의 폐기물재활용업 허가증에 적힌 사업장 주소가 똑같다. 한국전력 폐기물을 공급받을 때는 상이군경회 명의를, 가공한 폐기물을 재판매할 때는 김씨 회사 명의를 이용했다. 김진수 기자

김원일씨 회사와 상이군경회 폐기물사업소의 폐기물재활용업 허가증에 적힌 사업장 주소가 똑같다. 한국전력 폐기물을 공급받을 때는 상이군경회 명의를, 가공한 폐기물을 재판매할 때는 김씨 회사 명의를 이용했다. 김진수 기자

“사기꾼에게 놀아났다고요?”

무역회사를 운영해온 이아무개씨도 “상이군경회 피해자”라고 에 호소해왔다. 이씨는 인천 간석동 인천보훈회관의 상이군경회 인천지부 폐기물사업소장실에서 사업계약을 했고, 그 자리에서 상이군경회 사업이 확실한지 각종 사업자등록과 등기 관련 사항을 꼼꼼히 확인했다면서 자신이 보관한 각종 서류를 제시했다. “회사 사옥의 부서 책임자 방에서 그 회사 사업임을 입증하는 서류를 완비한 상태에서 사업계약을 했는데, 그게 그 회사와 아무 상관 없는 사기였다고 나중에 주장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기업과 계약할 때 대표이사를 직접 만나 서류를 작성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상이군경회장이 ‘사기꾼에게 놀아난 것까지 책임질 순 없다’고 말하는 것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4년 말 홍아무개 인천폐기물사업소장과 처음 만났다. 인천보훈회관 2층 소장실이었다. 그 자리에서 상이군경회의 모든 폐기물 사업(해양폐기물 제외)을 수행하는 총판권 계약을 했다. 총판권 인수액으로 3억5천만원을 수표로 지급했다. 무역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이씨는 “상이군경회 사업이 맞는지 처음부터 꼼꼼하게 서류를 챙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해 9월 상이군경회 인천지부장과 인천폐기물사업소장을 맡은 홍씨가 구속되면서, 총판권 계약은 없던 일이 됐다. 이씨는 홍 소장 부인을 통해 이미 지급했던 돈을 받아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구속 뒤 사달이 벌어졌다. 그들과 함께 ㄷ사를 설립한 김아무개씨가 이씨한테 재차 총판권 인수를 타진해온 것이다. “홍씨 구속과 상관없이 상이군경회의 폐기물 사업은 계속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씨는 5억원을 지급하고 다시 총판권 인수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씨는 “돈을 보내고도 한전 폐기물을 전혀 받지 못했다”면서 김아무개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구속됐지만, 지난해 9월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한전의 폐기물을 공급하지 못했지만, 다른 폐기물을 공급할 능력은 있다”는 ㄷ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기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검사의 항소로 2심 계류 중이다.

피해자 아픔은 나 몰라라

이씨는 “상이군경회 같은 보훈단체들은 ‘이름만 있고 공장은 없는’ 사업소를 꾸려 ‘수수료 수익’을 챙겨왔다”면서 “수의계약을 따낸 뒤 제3의 업체로 넘기는 식으로 불법 명의대여 사업을 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다가 피해자가 생기면 사기꾼의 행각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고 국가보훈처는 피해자 아픔을 나 몰라라 했다”면서 “상이군경회 본부가 사기의 공범이고 국가보훈처가 그 사기판을 방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가 방조한 피해자들 구제하려면


보훈처에 피해접수 창구 만들어야


은 보훈단체들의 불법 명의대여 사업 피해를 탐사보도하면서, 국가보훈처에 그 피해접수 창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훈처에 시급히 피해접수 창구를 만들어, 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효과적인 법률 지원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피해자들은 국가가 방조한 구조적 부조리의 희생자다. 애초 국가에서 보훈단체들의 수익사업을 허용했던 것은 국가유공자인 회원 복지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선의로 시작했던 사업은 불법 명의대여 사업으로 변질됐고, 회원 복지는 뒷전인 채 회장과 간부들과 눈치 빠른 일부 사업자가 막대한 수혜를 독식하는 사업으로 타락했다. 그 과정에서 뒷돈과 불법이 판치고 피해자들이 양산된 것이다. 독버섯이 자라나는 명의대여 사업의 실상을 보훈처가 훤히 알면서도 이를 무책임하게 방조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피해자기 스스로 구제받기가 매우 난감한 사안이다. 보훈단체들은 오랫동안 불법 명의대여 사업을 해왔다. 여러 피해 사례를 다루면서 효과적으로 법적 대응을 하는 능력을 갖췄다. 큰돈을 들여 가장 역량 있는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을 앞세운다. 그에 비해 피해자는 개인이다. 더욱이 피해자들은 서로 만나기도 어려워 정보를 공유할 수조차 없다. 실제 많은 민형사 소송에서 피해자들은 보훈단체의 방어벽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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