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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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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에는 왜 새벽배송이 없을까

66만 조합원의 신임대표 조완석 인터뷰… “배달노동자 노동권 존중”

“아이돌봄 등 한 차원 높은 ‘사회의 큰 밥상’으로 한살림 키우겠다”
등록 2019-05-10 13:52 수정 2020-05-03 04:29

29년 전 경기도 과천의 한 ‘마을모임’을 찾았던 아이엄마가 66만 조합원을 끌어가는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한살림)의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그사이 한살림은 연매출 4천억원대의 대형 협동조합 사업체로 발전했다.

마을모임의 아이엄마에서 한살림 대표로 변신한 조완석(57) ‘초보’ 대표(사진)를 만났다. 3월6일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새 대표로 뽑혔다. 앞서 3년 동안은 경기도 성남·용인 지역의 한살림을 끌어가는 이사장을 맡았다. 조 대표는 “기자를 만나 인터뷰하는 게 처음”이라고 수줍어하면서도 “‘사회의 큰 밥상’을 차려내는 한살림을 만들고 싶다”는 굵은 포부를 밝혔다. 4월22일은 서울 광화문 한살림 매장에서, 30일은 한살림 ‘본부’가 있는 양재역 근처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30일 오후 두 번째 만나러 찾아간 자리에는 조 대표가 없었다. 회의 중이었다.

1990년 과천 놀이터에서 한살림을 만났다

많이 바빠 보인다. 무슨 회의인가.
인터뷰 때문에 잠시 빠져나왔다. 본부장 이상이 모두 참석하는 중견실무회의다. 비상대책회의다. 그동안 한살림은 빠르게 성장했다. 2000년대까지 연 20~30%씩 사업 규모가 급증했다. 그러다 한 자릿수 성장세로 둔화됐고 지난해 정체 상태가 됐다. 서울과 일부 지역은 마이너스(뒷걸음)다. 위기의식이 크다.

위기 상황에서 대표를 맡아, 고민이 많겠다.
성남·용인 지역 이사장을 맡으면서 (조합원) 활동과 (매장) 사업을 총괄해본 경험은 있다. 연합 대표를 맡으니까 나라 정책까지 생각해야 하더라. 한살림은 지역마다 특성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걸 살리고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사업을 끌어나가는 것이 연합의 역할이다. 올해 한살림은 사업을 전담하는 연합법인을 새로 출범시켰다. 다행이다. 내가 사업연합 공동대표도 맡지만, 경영에 밝은 공동대표가 따로 있어 큰 힘이 된다.

한살림에서 첫 경선이 이뤄질 뻔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는 여러 후보자가 등록하면 전형위원회에서 한 명의 후보로 좁혀 정기대의원총회에 올렸다. 대의원 110여 명이 모인 총회에서는 사실상 추대 절차를 밟았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사전 심의에서 후보 2명을 올렸다. 다른 한 분이 총회 전에 물러나면서 경선을 피할 수 있었다. 나도 고민이 많았다.

마을모임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마을모임이 뭔가.
1990년 과천의 한 놀이터에서 동갑내기 아이엄마를 만났다. 그의 시어머니가 한살림 마을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그분의 권유로 한살림에 가입했는데, 5가구 이상 조합원이 모이면 공동배달로 물품을 받을 수 있었다. 달걀, 쌀, 포도, 배, 고기 등등. 그중 가장 사랑한 물품이 매실청이었다. 매실청 음료를 담은 젖병을 물리면, 아이 변비가 사라졌다. 매주 그 시어머니 댁에 모여, 배달된 물품을 나누면서 이야기했다. 그게 마을모임이었다.

물품 공동구매 말고 다른 활동도 했나.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아이 다섯을 서로 돌봤다. ‘공동육아’란 말조차 없을 때였다. 참 친하게 지냈다. 시어머니 이름이 김금숙님이었는데, 고마움을 늘 잊지 못한다. 서른두 살 된 우리 큰아이는 과일 사이에 들어 있던 손편지를 아직도 기억한다. “못생기고 맛없는 유기농 사과지만, 자꾸 먹어주시면 맛있는 유기농 사과를 만들겠다”는 풋풋한 내용이었다.

배송일 하루 줄이는 목표 추진 중

한살림은 1986년 강원도 횡성 농부들의 유기농 쌀을 파는 서울 제기동의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 1988년엔 소비자 68명이 출자해 참기름, 유정란 등 10가지 물품을 공급하는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은 그로부터 10여 년 지나 1998년에 제정됐다. 한살림이 있었기에 생협법이 뒤따라 생길 수 있었다. 한살림과 아이쿱, 두레, 행복중심을 4대 생협이라 한다. 4대 생협의 총매출은 1조원대를 넘어섰다. 하지만 최근 매출이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공통의 위기를 맞고 있다.

기자도 여럿 한살림 조합원이다. 한살림을 아끼지만, 서비스 불만이 적지 않더라.
배송 불만이 클 것이다. ‘로켓배송’ ‘새벽배송’ 시대라고들 하지 않나. 우리도 조합원의 편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 한다. 하지만 한살림에서 새벽배송은 불가능하다. 배달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존중해야 한다. 당장은 배송일을 하루 줄이자는 목표를 세워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용인의 일부 매장에서는 전화통화로 당일 배송을 받을 수 있다. 구매 물품이 5만원 이상이면 배송비가 무료다.

하루 배송 업무를 줄인다고 배송 불만이 줄어들까.
거꾸로, 새벽배송의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물품 하나에 아이스박스 하나씩, 쓰레기가 너무 많다. 몇 번 이용하다가 죄책감을 느껴 그만뒀다는 생협 조합원들도 있다. 무리하게 대응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일본 생협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름다운 결품’이라는 말을 한다. 왜 특정 품목이 빠졌는지, 왜 빠르게 배송 못하는지, 조합원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는데, 조합원들과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할지 다시 생각해보자고 직원들과 이야기한다.

매장에서 친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더라.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과 용인·성남 지역에선 ‘자주 관리 매장’을 운영한다. 매장에서 각자 서비스 목표를 정해 스스로 실천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매장을 찾는 조합원들도 매장에서 일하는 분들한테 모시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살림에서는 ‘모심’이 정말 중요하지 않나. 서로 섬기는 마음.

한살림 매장에서 촬영한 조완석 대표.

한살림 매장에서 촬영한 조완석 대표.

‘결과보다 과정 중심’ 한살림 인증제 도입

5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는 ‘친환경농산물 공공급식 확대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유기농이 많이 비싼데 진짜 유기농인지 알 수 없다는 불신이 깊어졌고, 반면 일반 농산물의 품질이 개선됐다는 소비자 인식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유기농 불신을 낳는 대표적인 암초가 인증제도 불신이었다. 소비자는 이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생산의 유기농을 넘어, 종자부터 생산·유통까지 가치사슬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진정한 유기농을 요구한다. ‘위기의 유기농 타개책’으로 우리 사회의 공공재인 생협의 더 빠른 배송을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모아졌다.

한살림에서 새로운 참여인증제를 도입한다고 들었다.
한살림만의 인증제를 갖자는 오래된 생각을 올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인증제도는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 유기농법으로 농사지으면서 얼마나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그 과정을 전혀 보지 않는다. 농약 잔류량이 얼마인지, 그 결과만을 따진다. 진정한 유기농 평가가 되지 않을뿐더러, 잘못이 없는데도 농가가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심으로 인증제를 꾸려가자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자주인증심의위원회에서 인증 심의를 한다. 여러 선진국에서 민간 인증제가 잘 갖춰져 있다.

4대 생협은 우리나라 전체 협동조합 생태계에서 핵심 인프라다. 그런데 생협 간 협동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생협들이 협동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그동안 왜 안 됐는지 먼저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협들이 서로 잘 협동한다면 그 자체가 큰 결단일 것이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을 내는 협동과 연대를 해보고 싶다.

공공재로서 한살림 가치 되살리겠다
갓 두 달을 맞은 신임 대표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두 개의 열쇳말이 뚜렷이 자리잡고 있었다. ‘활동’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한살림 첫 마음을 회복하는 ‘활동’을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소신을 분명히 했다. “한살림 선언 다시 쓰기 행사를 하고 있는데, 한살림 가치를 잘 살리는 활동이 결국 한살림 사업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슬로건을 ‘다시 밥 운동!’으로 잡았더라.
한살림의 공동체성을 다시 살려내자는 뜻이다. 한살림이 만들어온 ‘집의 밥상’을 ‘사회의 큰 밥상’으로 한 차원 끌어올리려고 한다. 건강한 먹거리 공급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고 환경과 미래를 지키는 공공재로서 한살림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한살림 사업을 살려내는 것도 궁극적으론 ‘사회의 큰 밥상’이 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게 바로, 30년 전 세상에 던졌던 ‘한살림 선언’의 본뜻이다.

조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아이돌봄’ 운동을 강조했다. “생활돌봄도 있고 먹거리돌봄도 있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돌봄이란 결론을 내렸다. 한살림은 서울에 이어 성남·용인에서 아이돌봄을 시작했다. 아이돌봄 교사를 양성해 필요한 곳에 파견하고, 한살림의 바른 먹거리 교육을 병행한다. 앞으로 마을돌봄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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