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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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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물 파는 블록체인 혁명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

‘논스’ 일군 문영훈·하시은
등록 2018-12-01 08:28 수정 2020-05-02 19:29
논스의 문영훈(왼쪽)·하시은 공동 창업자를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자리잡은 논스 1호점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논스의 문영훈(왼쪽)·하시은 공동 창업자를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자리잡은 논스 1호점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사람들, 아주 당돌하다. 생각도 행동도, 거침이 없다. 캐치프레이즈는 더 거창하다. 미래 혁명가들을 위한 베이스캠프!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그저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도전하고 싶고, 그런데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꿈이 있는데 나누고 싶은 사람들한테, 우리 ‘논스’는 최적의 공간이에요. 논스에서 함께 세상을 바꿔요.”

커뮤니티 힘으로 빌딩을 채웠다
서울 강남역 근처 골목길에 있는 3층 건물을 임대한 논스 1호점.

서울 강남역 근처 골목길에 있는 3층 건물을 임대한 논스 1호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을 일군 공동 창업자 문영훈(28·대표)·하시은(30)씨를 11월19일과 28일 두 차례 만났다. 2017년 3월 블록체인 유튜브 방송을 시작해 블록체인 무리의 커뮤니티를 만들더니, 불과 1년 6개월 만에 주목받는 사업체를 창업했다. 회사 이름도 블록체인에서 임의의 숫자를 뜻하는 단어인 ‘논스’(Nonce)에서 따왔다.

9월에 3층 건물의 논스 1호점을 열었고, 12월 초에 2층 건물의 논스 2호점을 연다. 문씨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하씨는 고전 100권으로 세미나 수업을 하는 미국의 세인트존스대학을 졸업했다. 블록체인은 중앙집중기관 없이 이용자들이 공동으로 거래정보를 관리하고 검증하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각광받는다.

논스가 기존 공유 오피스 사업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위워크’와 ‘패스트파이브’로 대표되는 공유 오피스 사업체들은 모두 하드웨어 중심이다. 역세권의 접근성, 세련된 인테리어가 경쟁력이다. 위워크 사무실에서 옆자리의 낯선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시너지를 얻는가? 편리해서 이용할 뿐이지, 거기에선 커뮤니티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거꾸로 간다. 커뮤니티를 먼저 만들어놓고 그에 맞는 공간을 마련한다. 우리가 위워크보다 접근성이 낫지 않고(강남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골목 안), 임대료도 싸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이 온다. 내가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로 꽉 찬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총합이 위워크보다 10배 이상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커뮤니티를 어떻게 만들었나.

지난해 3월 블록체인을 공부하는 유튜브 방송을 처음 시작했다. 5월부터 경기도 수원 광교의 5평 오피스텔에서 블록체인에 빠진 4명이 같이 살기 시작했다. 몇 달 뒤 강남의 방 3개짜리 40평 아파트로 넓혔다. 그때 많게는 25명이 함께 자기도 했다. 말하자면 ‘블록체인 또라이들의 집합소’였다. 논스 빌딩에 입주한 70여 명 중 절반가량은 당시 커뮤니티 멤버들이다.

입주자에게 한 공통 질문 “꿈이 뭐냐”논스에 입주하려면 인터뷰를 거쳐야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논스만의 인터뷰 포맷도 만들었다. “꿈이 뭐냐”는 게 첫 질문이다. 그때 눈이 반짝반짝하면 논스 멤버다. 단순하지만 굉장히 효과적이다. 논스에선 단기적으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은 사절이다. 입주한 뒤에는 수시로 일대일 티타임을 가진다. 사업이나 삶에서 힘든 일은 없는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 과정을 기록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있다.

논스 입주자는 모두 블록체인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그렇다. 그게 우리의 최대 강점이다. 블록체인 분야의 좋은 분들을 모아놓았다. 그것만으로도 큰 시너지가 생기더라. 서로 지식과 네트워크를 공유하게 된다. 외국 친구들도 서로 잘 도와준다. 1천~2천 명까지는 충실한 블록체인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논스는 블록체인 기업인가.

그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블록체인의 철학과 기술에 영감을 받은 부동산 기업이다. 우리 두 사람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핵심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커뮤니티라는 본질을 유지하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커뮤니티가 지속될 수 없지 않나. 우리 커뮤니티에 어울리는 사업모델을 찾게 됐다. 재미있게도 그 답이 부동산 모델이었다.

왜 부동산 사업인가. 더 설명해달라.

커뮤니티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결국 커뮤니티 운영자와 커뮤니티 멤버들 간의 제로섬게임이 되기 십상이다. 제로섬이 되지 않는 사업모델이 뭘까. 부동산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다. 사람(멤버)들이 재미있게 놀수록, 운영자가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가 커진다.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즐겁게 놀라”고 입주자들한테 이야기한다. 그럴수록 논스의 가치도 올라간다. 다만 부동산 사업이 커뮤니티라는 본질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언제라도 부동산 사업을 포기한다는 생각이다.

논스 1호점의 1층엔 스튜디오와 공동부엌, 100명 이상 행사를 벌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2층엔 다양한 크기의 사무공간, 3층엔 1인실부터 9인실까지 주거 공간이 들어서 있다. 1인실은 월 85만원, 3층 침대의 9인실은 월 40만원을 받는다. 하씨와 문씨를 비롯해 공동창업 멤버 8명이 가장 저렴한 9인실에서 지낸다. 사방으로 전망이 트인 옥상은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예쁜 공간이다. 얼마 전 논스 멤버의 결혼식을 여기서 치르기도 했다. 고가의 오디오도 갖춰놓았다.

“통째로 사람 채우겠다” 공동사업 제안논스의 투자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나.

우리의 직접 투자는 거의 없다. ‘커먼타운’이란 여성 전용 공유주거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은 덕이다. 커먼타운에서 빌딩 임대와 인테리어까지 하드웨어를 책임지고, 논스는 입주자를 들이고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소프트웨어를 감당한다. 우리가 커먼타운을 먼저 찾아가서 “통째로 사람을 채울 수 있다”고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우리처럼 단체로 입주자를 모을 수 있는 사업자는 없지 않나.

‘블록체인 친구’들의 커뮤니티 힘으로 강남역 근처에 유망한 공유 오피스 사업체를 꾸린 것이다.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생각난다고 하자, 두 사람도 박장대소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 표현 참 좋네요.”

어떻게 만났나.

문영훈(이하 문) 같은 군대에서 통역장교를 했다. 2014년 내가 먼저 비트코인에 빠졌다. 틈날 때마다 시은 형한테 비트코인 이야기를 했다. 형은 2016년 전역 뒤 혼자 이더리움(비트코인의 일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017년 블록체인 방송을 해보자고 먼저 연락해오더라.

비트코인 투자로 돈은 좀 벌었나.

하시은(이하 하) 영훈이는 비트코인에 학문적으로 끌렸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프로그래밍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만 하더라. 어떻게 거래하는지조차 몰랐고, 2년이 지난 뒤에야 투자에 들어가더라. 나는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생각했는데, 그 돈의 10배 이상은 벌었다.

중국에서 채굴기도 돌려봤다. 돈을 좀 벌긴 했는데, 많이 썼다. 긍정적으로 살았다. 시은 형과 다르게, 나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이 들어오니까, 막 쓰게 되더라. 술 마시고 클럽 가고, 물질주의 비판하는 그라피티나 신진작가들 그림도 좀 샀다.

논스의 디엔에이 ‘중용’두 사람 참 많이 다른 것 같다.

영훈은 논문이 있으면 천천히 여러 차례 읽고 또 생각하고 되씹는다. 나는 논문을 빨리 읽고, 그 사람의 인터뷰나 강연 같은 자료를 죄다 찾아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이해하려 하고, 영훈이는 그 사람의 생각 자체를 이해하려고 한다.

나는 수학자다. 사고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형은 경험을 중요시한다. 형은 행동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너무 달라서, 서로 도움이 많이 된다.

행동이 없으면 가치가 없다는 게 내 소신이었는데, 영훈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고 규칙을 정립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같은 집에서 여럿이 지내다보니, 중용이라는 것을 억지로라도 배우게 됐어요. 어떤 일을 하려면, 중간에서 만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균형을 찾는 노력이 이젠 우리 논스의 디엔에이(DNA)가 됐지요.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이에요.” 논스 1호점의 2층 공유 오피스 공간엔 블록체인 개발업체인 코드박스, 코블릭, 알파논스가 입주했다. “개인 입주자들도 모두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개발하거나 연구하는 친구들”이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은 논스 사람들의 신뢰와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 커뮤니티에 집중하는 방식이 속도가 느려 보이지만, 1~2년 안에 그 힘이 폭발할 것이다. 분야의 확장과 지역의 확장을 생각한다. 블록체인을 넘어, 인공지능과 핀테크 의학까지 여러 분야로 논스 모델이 확장될 수 있다. 지역의 확장은, 캐나다 진출을 생각한다. 우선은 3호점을 여는 데 집중해, 투자를 받으려 한다. 논스를 일종의 주택협동조합으로 봐주면 좋겠다. 대주주가 다 갖고 가는 주식회사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기업에서 생산되는 가치가 멤버들한테 돌아가는 협동조합형 구조를 만드는 데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망하면 다시 시작하죠”

실패의 두려움은 없는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역시 거침없고 당돌했다. “망하면 다시 시작하죠. 작은 집을 빌려, 비슷한 생각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다시 사업을 궁리하면 되죠. 재미있잖아요. 지금의 논스도 4명 살던 집을 40평으로, 다시 2개의 빌딩으로 사람들을 더 채웠던 거거든요.”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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