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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피시방 사건이 던진 질문

“심신미약 처벌 강화” 100만 청원… 전문가들 “답 아니다”
등록 2018-10-27 04:33 수정 2020-05-02 19:29
서울 강서구의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29)씨가 10월22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의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29)씨가 10월22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

10월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신아무개(21)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29)씨의 가족이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게시글의 제목이다.

“(피해자가) 모델을 준비하며 고등학교 때도 자기가 돈을 벌어야 한다며 아르바이트 여러 개 하고, 매일 모델 수업 받으러 다닌 성실한 형이라고 한다.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나. 나쁜 마음을 먹으면 우울증 처방받고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될 수 있으니까.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 될까.” 청원글의 내용이다.

피해자인 신씨가 모델을 꿈꾸며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게시글에는 10월25일 현재까지 107만여 명이 동의했다. 역대 청와대 국민 청원글 중 가장 많은 동의 수를 기록했다.

피의자 김씨는 2015년부터 해당 피시방을 드나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신씨에게 컴퓨터 자리에 있는 담배꽁초를 치워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리해주지 않자, 이용요금 1천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신씨가 요금을 돌려주는 것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다툼이 벌어졌다. 김씨 동생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말다툼을 진정시킨 뒤 철수했으나, 김씨는 300m 떨어진 자기 집으로 가서 흉기를 가져왔고 기어이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이유는 사소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피해자 신씨의 치료를 담당했던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남궁인 응급의학과 임상 조교수가 10월19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날 치료 과정에서 봤던 신씨의 상태를 상세히 설명하며 “우울증에 걸렸던 것은 그(김씨)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여주지 않았다. 되레 심신미약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울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잠재적 살인마로 만드는 꼴”이라고 글을 남겼다.

일각에선 의사인 남궁 교수가 환자의 상태를 유가족의 동의 없이 공개한 것에 도덕적 책임을 묻기도 했지만 그의 글은 페이스북에서만 7만여 명이 공유했다. 남궁 교수의 글은 기사에도 인용됐고, 범죄 피의자의 ‘심신장애’(심신상실과 심신미약) 인정에 대한 강한 반대 여론을 형성했다.

담당 의사 페북 글이 여론 불 지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정신질환 진료기록을 근거로 심신장애를 주장한다. 심신장애를 이유로 죗값을 낮추면 안 된다.” 평범하고 성실했던 한 청년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것에 분노한 여론의 외침이었다.

상당수 전문가는 이런 분노가 퍼지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처음 제동을 걸고 나선 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었다. 청와대 청원글에 동의가 80만 명을 넘어선 10월20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강서구에서 일어난 강력범죄에 대한 봉직의협회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다. 심신미약이란 형법상의 개념으로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 개념이다. 심신미약 결정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린다. 현재 가해자(김씨)는 정신감정을 통한 정확한 진단조차 내려지지 않았다. 가해자의 범죄행위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하여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추어지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신질환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도 아니다. 정신질환자들이 잘못된 편견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중하고 사실관계에 입각한 보도를 당부한다.” 범죄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앓았더라도 정신감정과 재판부의 판단을 거쳐 일부만 심신장애를 인정받기 때문에 김씨를 심신장애로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르다는 것이다.

김지민 봉직의협회장은 과 한 통화에서 “일부 중증질환자들이 심신장애를 인정받은 사례들이 보도되면서 마치 정신질환이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처럼 잘못 알려졌다. 정신질환 낙인이 강화되면 잘 치료받고 회복될 수 있는 환자도 병원에 가는 걸 꺼리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사회가 점점 더 불안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10조 1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형법 제10조 2항)

조두순 감경이 사회적 불신 극대화
아르바이트생이 흉기에 찔려 숨진 서울 강서구의 한 피시방 앞에 추모글들과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아르바이트생이 흉기에 찔려 숨진 서울 강서구의 한 피시방 앞에 추모글들과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심신장애에 대한 법적 책임 감경은 형법에 명시돼 있다. 제10조 1항은 ‘심신상실’로 죄의 책임을 묻지 않으며, 제10조 2항은 ‘심신미약’으로 죄의 책임을 감경하는 근거가 된다.

2014년 12월 부산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발달장애 1급 장애인 이아무개(23)씨가 2살 아기를 건물 3층 난간에서 던져 숨지게 했지만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피의자 김아무개(36)씨는 심신미약을 인정받았다.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낮은 30년형을 선고했다.

이 사례에서 사법부는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건 재판에서 심신장애를 근거로 형량을 낮췄다는 비난에 맞닥뜨렸다. ‘죄의 책임을 묻는다’는 형사 사법제도의 목적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이유다.

출소가 2년 앞으로 다가온 조두순 사건은 사회적 비난과 불신을 극대화한 사례였다. 그는 2008년 여아를 유인해 성폭행 등으로 큰 상처를 남겼지만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에 한참 못 미치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알코올의존증 환자이고,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조씨 쪽 변호인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조두순의 출소일이 다가오자 지난해 12월 청와대 누리집에는 ‘조두순 출소 반대’ 게시글이 올라왔다. 청원 참여자가 20만 명이 넘자 조국 민정수석은 답변에 나섰다. 조 수석은 “재심은 유죄 선고를 받은 범죄자가, 알고 보니 무죄이거나 죄가 가볍다는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경우, 즉 처벌받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만 청구할 수 있다”며 조씨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조두순 사건 이후 성폭력 특례법이 강화돼 음주 성범죄에는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고, 따라서 성범죄의 경우 술을 먹고 범행을 한다고 해서 봐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주취 감경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공청회 등을 통해 활발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코올 관련 심신장애의 범죄에 대한 형법 개정을 국회에서 논의해달라고 당부하면서 공을 국회로 넘겼다.

심신장애 감형 비율 미국 15분의 1

‘한국에서는 정신질환자가 일반인보다 범죄를 적게 저지르며, 심신장애로 인정받는 경우는 희박하다.’

관련 연구 자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다. 정신장애인의 범죄는 범행 동기를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극적인 요소가 있어 언론이 더욱 중요하게 다룬다. 심신장애로 인정받는 사례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연구 자료를 보면 실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범죄율에 한참 못 미치고, 심신장애 감형 비율도 낮다.

경찰대학 최이문 교수의 2017년 논문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2014-2016)’를 보면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유병률과 법무부의 정신질환자 범죄 건수로 계산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을 10만 명 중 33.7명으로 추산한다. 일반인 범죄율인 10만 명 중 68.2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최 교수가 살펴본 심신장애 인정률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훨씬 낮았다. 한국에서 2014~2016년 접수된 형사사건 160만 건 중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논의된 판례는 1597건(전체 사건의 약 0.1%)이었다. 이 중 305건에서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인정됐다. 심신상실이 4건, 심신미약이 301건이었다. 전체 사건의 0.019% 수준이다. 2013년 발표된 논문을 보면 미국의 경우 전체 형사사건의 0.3%에서 피고가 정신장애 주장에 성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15배가 넘는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씨는 10월22일 입소한 충남 공주시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는다. 여기서 심신장애를 인정받더라도, 법원에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법원은 범인의 진단명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의 판단력을 중요하게 보고 더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김씨의 경우 우울증 병력이 있다 하더라도 심신장애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평소 흉기를 지니고 다닌 게 아니라, 말다툼 이후 흉기를 가지러 간 사실 등은 심신장애를 인정받는 데 불리한 요소다.

문제는 김씨의 사건에서 촉발된 심신장애인 범죄자 처벌 강화 논란이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10월24일 정례 브리핑에서 “그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가 대단히 높다는 점을 저희들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청원에 대한 답변이 공식적으로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107만 명이 동의한 심신장애 범죄자 처벌 강화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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