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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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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폭염 태양광 빛을 보다

신재생에너지로 원전 3기 분량 전력 생산, 에너지 전환 이뤄질까
등록 2018-08-21 10:01 수정 2020-05-02 19:29
한 아파트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설비. 한겨레

한 아파트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설비. 한겨레

연일 계속된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소비량이 급증하자 원자력계와 일부 야당,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제고해야 한다는 비판과 우려가 최근 다시 쏟아지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생산을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원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을 확정한 것에 대해서도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를 전체 발전량에서 2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 주요국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목표 아래 오래전부터 신재생에너지의 확대에 집중하고 현재도 강하게 정책을 펴고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태양광·풍력 등 깨끗하고 안전한 신재생에너지의 확대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첫발 뗀 우리, 세계는 에너지 전환 드라이브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월드 에너지 아웃룩(World Energy Outlook) 2017’ 보고서는 “앞으로 전세계 투자의 3분의 2가 재생에너지에 집중될 것이다. 인도와 중국이 이끄는 태양광발전의 급속한 증가로 2040년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4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제 에너지 전환의 첫발을 뗀 한국에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다른 나라의 상황이 아직 먼 이야기일 수도 있다.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전 정부에서 계획된 신규 원전 4기는 2022년까지 예정대로 건설된다. 하지만 뜨거웠던 이번 여름 한국 역시 태양광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가 전력 수급에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이 60여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라고 밝힌다.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석탄 중심의 한국 에너지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아무개(46)씨는 6월 초 아파트 베란다에 소규모 태양광발전 설비(300W)를 설치했다. 생산한 전력은 한국전력(한전)이나 전력거래소에 팔지 않고 가정에서 쓴다. 아직 7월 사용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지 못했지만 “양문형 냉장고의 한 달 소비 전력은 생산되는 것으로 안다”며 전기료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가정에 설치된 소규모 태양광발전의 전력량은 미미하지만 전국에 설치된 발전 설비(2017년 기준 29만 가구)로 확대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울시에는 베란다형 소규모 태양광발전 설비가 올해 1~7월 3만4천여 가구에 보급됐다. 서울시가 ‘원전 1기 줄이기’ 구호 아래 사업을 실시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만2천 가구가 신청해 태양광발전 설비가 설치됐는데 7개월 만에 이를 넘어선 것이다.

소규모 태양광발전 설비뿐만 아니라 대규모 태양광발전·풍력발전 설비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급증하고 있다. 올해 정부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용량 보급 목표는 원전 2기에 해당하는 170만㎾(1.7GW)인데 상반기에 80% 이상을 이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증가는 실제 전력 공급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의 자료를 보면, 역대 최대 전력 수요 기록(9248만㎾)을 갈아치운 7월24일 오후 5시,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은 원전 3기(1기 100만㎾)가 생산하는 전력에 해당하는 284만㎾를 생산했다. 태양광·풍력 발전에서 태양광발전의 설비량 비중이 80%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구름 낀 날씨와 비가 뜸했던 이번 여름의 전력 생산은 태양광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전력 수급은 하루 중 가장 전력 소비가 높은 시간대에 공급할 수 있는 최대 전력량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284만㎾라는 발전량은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된 태양광·풍력 발전량 114만㎾와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은 소규모 태양광발전량 170만㎾(추정치)를 합한 수치다.

전력거래소는 전력 생산(공급)과 전력 소비(수요)의 균형을 관리해 블랙아웃(대정전)을 막는 기관이다. 한전의 자회사와 민간 발전사들은 생산한 전력을 전력거래소에 팔고, 이는 기업과 가정에 공급되는 전력으로 통계에 잡힌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력거래소에서 받은 시간대별 태양광 전력거래량 현황(7월23~27일)을 보면, 태양광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간 원전 1기 분량에 해당하는 100만~130만㎾의 전력을 생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아 통계로 잡히지 않는 태양광발전량은 최대 전력 수요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전체 태양광발전 설비의 60%를 차지하는 소규모 태양광발전 설비는 한국전력과 계약해 전력을 팔거나, 가정이나 건물에서 쓰는 전력을 책임진다. 전력 소비량이 치솟을 때 기존 원전이나 화력발전소에서 전력을 가져오는 대신 태양광발전으로 전력 일부를 ‘자급’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전력량을 170만㎾로 추정하는데,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라 이는 늘어날 수 있다.

태양광 덕분에 등장한 ‘덕 커브’

물론 신재생에너지가 생산한 전력량은 7월24일 오후 5시 실제 최대 전력 수요(9248만㎾+170만㎾)의 3%를 차지한다.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하지만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최대 전력 수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전력 수급을 두고 항상 논란이 됐던 것은 피크(최대 전력 수요)시간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증설해야 하느냐’였다”면서 “태양광이 피크시간대 전력 수요를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태양광발전량 확대로 한국의 전력 수급 형태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외국과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보통 여름철 전력 냉방 수요는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3시에 최대치를 찍는다. 전력거래소의 전력통계정보시스템을 보면, 올해 폭염 이전에 가장 더웠던 2016년 여름, 최대 전력 수요가 8천만㎾를 넘어섰던 기간(7월25~29일, 8월17~19일)에 전력 수요가 최대치를 찍은 시간은 모두 오후 3시였다. 하지만 9천만㎾를 넘어선 올해 7월24~27일 최대 전력 수요 시간대는 모두 오후 5시로 2시간이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캘리포니아 전력계통운영기구인 ‘CAISO’가 이름 붙인 ‘덕 커브’(Duck Curve)와 유사한 형태다. 보통 전력 수요는 ‘낙타 등’(Carmel Curve)처럼 낮 시간에 치솟았다가 저녁에 하강하는 모양을 띤다. 하지만 통계로 잡히지 않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커지면서 해가 진 뒤 전력 수요가 올라가는 모양이 발견됐고, 이게 오리와 비슷하다고 ‘덕 커브’라고 이르게 됐다.

캘리포니아에선 2013년부터 태양광발전 비중이 급격히 커지면서 낮(오전 10시~오후 5시)에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에서 가져오는 전력이 줄고, 일몰 뒤 태양광이 사라지면 전력 수요가 치솟아 기존 발전소들이 생산하는 전력이 필요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태양광발전을 적극 추진 중인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낮 시간대 전력거래소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태양광발전량이 늘어날수록 비슷한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신재생에너지의 특성 때문에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이 곤란하다”고 우려한다.(‘미 캘리포니아주 덕 커브 발생 원인과 국내 현황 분석’, 한전경제경영연구원, 2017) 하지만 이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필연적 현상으로 이를 보완할 대책을 마련할 때라는 의견이 나온다. 전력거래소도 내부적으로 대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영환 교수(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는 “피크시간대가 변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면 덕 커브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태양광이 전력 수요를 줄이는 역할을 한 것이다”라며 “신재생에너지의 특성으로 전력 계통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지만, 현재 문제가 있다고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 교수는 “변동성이 큰 신재생에너지 출력(발전)을 기상정보에 따라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 기술 발전도 계속

신재생에너지는 부지 확보의 어려움, 원전보다 높은 전력 생산 단가, 날씨에 따른 불안전성, 낮은 발전 효율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며 에너지 전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반론도 꾸준히 나온다.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0%로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100조원(공공기관·민간 설비투자 92조원+정부 예산 18조원)이 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를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인도 등은 원자력·석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정부 주도로 에너지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화석연료 발전 단가와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한 국가가 늘어나고, 기존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술 발전도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세계 재생에너지 현황 보고서를 펴내는 ‘21세기 재생가능에너지 정책 네트워크’(REN21)의 아르투로스 제르보스 의장은 2016년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재생에너지 열차는 트랙을 쏜살같이 질주하는 중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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