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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회찬이 되자

머리통 크고 마음통 컸던 당신을 닮기로 했다
등록 2018-08-07 07:25 수정 2020-05-02 19:29
김봉규 한겨레 기자

김봉규 한겨레 기자

어떤 슬픔은 날이 가도 줄지가 않는다.

무더위에 창문을 열고 자서 그런지 아이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난다. 매미 소리 들으며 잠깐 먼 산을 보고는 한창 빠져 있는 판타지 시리즈물을 인터넷티브이(IPTV)로 본다. 선풍기를 나눠 쓰느라 아이 옆에서 이어폰을 끼고 생전 그의 연설을 듣는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아이가 리모컨을 쥔 채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내가 아침부터 텔레비전만 봐서… 울어?” 나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노회찬 아저씨 때문에 슬퍼서 그래. 아저씨도 네가 아침마다 맑은 정신으로 텔레비전 보는 거 좋아하셨을 거야.”

아이는 촛불집회 먼발치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실제로는 머리통 별로 안 크다”고 하자 아이는 “저게 어디 안 큰 머리통이냐”고 반박한 일이 있어, 그를 기억한다. 아이는 그를 연예인으로 알고 있었다.

오래전 정치인 노회찬이 ‘뜨기’ 전에 한 후배가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였고 를 발행하는 분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는데, 회비 겸 참가비를 미리 받아서 새로 만든 당에 후원도 하려 한다고 연락해왔다. 돈 내라는 소리였다. 마침 조금 큰 직장으로 옮겨 갑근세나마 내게 된 때라 민망하지 않을 만큼만 보냈던 기억이 난다. 행사 뒤풀이 술값이 거둔 회비보다 훨씬 많이 나와 강사가 뒤집어썼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돈이 모자랐는데 일행 아무도 신용카드가 없었다. 다음날 외상 술값을 갚으러 가자 술집 주인이 깎아주겠다고 했지만 강사는 민중이 민중의 삥을 뜯으면 안 된다며 다 치렀다고 한다. 기분 좋아진 주인이 먹을 복 많게 생겼다고 칭찬했다지. 그 강사가 노회찬이다.

시간이 흘러 이른바 ‘중앙’에서 이름값 얻은 진보정당 사람들이 “지방으로 교육 다닌다, 강연 다닌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때, 그는 한결같이 “사람들 만나러 다닌다, 동지들 만나러 다닌다”고 했다. 나는 그게 늘 듣기 좋았다.

그는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대신 말해주었다. 촌철살인에 많은 이가 열광했으나, 그 재치와 언변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고뇌와 사색이 있었을 것이다. 망설임과 떨림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궂은일에 앞장서고 낯낼 일에는 발을 빼는 사람이었다. 잠깐이라도 만나본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날 선 진보의 언어를 대중화한 명민한 문화인이자 진보정치의 꿈을 현실로 만든 탁월한 실천가였다. 누구보다 고됐고 그만큼 간절했다. 10년 내 진보정당 대통령이 반드시 나온다는 말도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말대로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사랑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니까.

그는 좋은 아들이자 지아비, 형이었다. 수배되고 구속되느라 아이 낳을 때를 놓치고 그 뒤 입양을 시도했으나 벌이가 일정치 않아 그마저 할 수 없었다는데…. 아이가 있었다면 참 좋은 아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게 못내 아쉬워 내 몸이, 팔다리가 다, 저릿저릿, 아프다.

나는 아이를 노회찬처럼 키우고 싶다. 머리통 크고 마음통은 더 크게. 정의롭고 평화롭게, 품위 있고 아름답게. 아이들만 그렇게 키우지 말고 나도 당신도 조금씩 노회찬이 되자고 말하고 싶다.

아이는 나를 잠깐 토닥여주고 학교에 갔다. 방학식을 한다며 신나했다. 나는 이불을 털고 부엌을 정리한 뒤 동네 문화센터 요가 수업에 늦지 않게 갔다. 자주 빠지고 지각했는데 안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평범한 사람, 노동하는 사람, 여성, 유권자, 국민이니까. 나를 더 아껴야겠다. 너그럽고 단단하고 유머러스해져야겠다. 부지런해져야겠다. 우리 모두가 어찌어찌 그렇게,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따라 하다보면,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면, 그가 바란 세상에 어느 정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해요, 노회찬. 넘치는 사랑 고마웠어요.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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