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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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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꾸라지, 정권과 함께 몰락하다

가장 ‘콧대 높은’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

자기 위기 관리 급급해 ‘최순실 게이트’ 못 막아
등록 2018-06-26 07:37 수정 2020-05-02 19:28
지난 6월20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20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죄를 밝혀야 하는데, 내가 왜 도주를 하겠습니까.”

지난 6월12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보석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겁하게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으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풀어달라는 말이었다. 그는 국가정보원에 민간인·공무원 불법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막 추가 기소된 상태였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이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떳떳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만, 재판부는 그의 보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재판장 김연학)는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서 도주 가능성이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의 보석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국정 농단 방조(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2017년 4월 기소된 우 전 수석은 재판 기간 내내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검찰 수사를 “표적 수사이자,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민정수석을 마지막 공직이라 여기고 사심 없이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죄를 밝혀야 한다는데…

하지만 법원은 지난 2월22일 우 전 수석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그의 당당함은 재판부 눈에는 ‘몰염치’로 비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영훈)는 “피고인은 최순실과 안종범의 미르, 케이(K)스포츠 재단 관련 비위 의혹을 감지했음에도 민정수석의 직무를 포기해 국정 농단의 혼란이 가중된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일말의 책임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와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꾸짖었다.

우 전 수석의 당당함은 한때 그의 능력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였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에는 그를 염치없는 공직자로 만들었다. 그가 박근혜 정권의 몰락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이 재판으로 확인되면서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비난이 쏟아졌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 중에는 ‘그가 민정수석 구실을 제대로 했더라면 최소한 대통령의 탄핵과 감옥행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이가 많다. ‘특수통’(권력형 비리 등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으로 일 처리 능력만큼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였기에 ‘친박’ 인사들이 느끼는 분노는 더욱 컸다.

실제 우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몰락을 ‘예방’하는 데 전력을 다할 수 없었다. ‘제 코가 석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질 무렵인 2016년 여름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비위 의혹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신을 방어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주군’의 위기를 관리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위기는 사상 초유의 현직 검사장 구속 사태가 발단이 됐다. 당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이던 진경준씨는 2016년 3월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156억원을 신고해 법조계 공직자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줄곧 검사 생활을 해온 그가 검사장 승진에 따른 첫 재산 공개에서 단숨에 고액 자산가로 등장했기에 그의 재산 형성 과정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재산 중 80%에 이르는 126억원이 게임회사 넥슨의 주식을 매각한 돈인데다, 그와 김정주 넥슨 창업주가 대학 동창으로 절친한 사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그의 주식 매입 경위와 자금 출처에 의문이 증폭됐다. 하지만 진씨는 ‘프라이버시’를 내세워 입을 다물었고, 감찰 권한이 있는 법무부도 “사적인 문제”라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특혜, 특혜, 특혜… 봇물 터진 의혹들
2016년 9월13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 행사장으로 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9월13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 행사장으로 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를 시작으로 언론의 의혹 제기가 이어지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진씨의 거짓말이 하나씩 드러났다. 그는 애초 자기 돈으로 주식을 샀다고 해명했으나 공직자윤리위에서는 넥슨 쪽에서 빌린 돈으로 샀다고 말을 바꿨다. 이마저도 검찰 수사에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돈을 빌려서 주식을 산 게 아니라 아예 공짜로 받은 것이었다. 그는 그해 7월 뇌물 수수 혐의로 현직 검사장으로는 처음 구속되는 수모를 당했다.

사태의 불똥은 곧바로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에게 튀었다. 가 넥슨과 우 전 수석 처가의 서울 강남역 인근 땅 거래를 진씨가 주선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는 진씨의 검사장 승진 때 민정수석실이 그의 재산 검증을 소홀히 한 것과 맞물려 매우 그럴듯하게 보이는 기사였다. 진씨가 ‘봐주기 검증’의 대가로 우 전 수석 처가의 골칫거리였던 강남역 땅을 넥슨에 매각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진씨가 거간꾼 노릇을 했다는 의혹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보도를 계기로 우 전 수석과 그의 처가 쪽 재산을 둘러싼 각종 비위 의혹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처가 쪽의 경우 장인인 고 이상달씨의 재산 형성 과정이 타깃이 됐다. 이씨는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의 친형인 전기환씨와 경우회(경찰동우회) 인맥을 바탕으로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탈세와 횡령 등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졌고, 급기야 1993년 전직 경찰 고위 간부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돼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불과 54살임에도 건강상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검찰 안에서는 그의 둘째 사위인 우 전 수석이 법률 자문을 해줬다는 말이 돌았다.

우 전 수석의 가족이 가족회사인 ㈜정강을 통해 탈세한 정황과, 그의 큰아들이 의무경찰 근무 때 보직 특혜를 받은 사실이 보도로 드러나는 등 그와 가족을 겨냥한 기사도 쏟아졌다. 우 전 수석은 언론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와 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가 하면, 보도 내용(우 전 수석의 자녀가 회사 업무용 차량인 고급 외제 차 마세라티를 사적으로 이용한 사실)도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통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주군의 위기를 관리하지 못한 이유

이런 상황에서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실의 감찰 착수는 우 전 수석을 ‘멘붕’에 빠뜨렸다. 이 특별감찰관은 그해 7월 말 우 전 수석의 비위 의혹에 감찰을 시작했다. 우 전 수석은 감찰을 무마하려고 사력을 다했다. 그는 검찰 선배인 이 특별감찰관에게 “나에 대한 감찰은 감찰권 남용”이라며 감찰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자신의 집 주변에서 특별감찰관실 파견 경찰관들이 현장조사를 벌이자 이를 중단시키는가 하면,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을 움직여 이들의 감찰권 남용 여부를 조사하도록 하는 등 압력을 가했다. 우 전 수석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특별감찰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우 전 수석이 ‘자기방어’에 ‘올인’하는 동안 민정수석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는 당시 미르재단, 케이스포츠재단 임직원 등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세평 수집 내용을 보고받고 있었다. 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한테서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들을 독대해 재단 출연금을 요구했고, 청와대가 재단 임원 선임에 직접 관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막강한 조사 권한을 가진 민정수석실을 움직이지 않았다.

우 전 수석에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그의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우 전 수석이) 적어도 2016년 7월경에는 최순실의 비위 행위를 충분히 인식하거나 이를 의심할 만한 명백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정수석으로서 진상조사나 안종범 등에 대한 감찰 등의 적절한 조치를 당연히 취해야 했다.” 재판부는 “민정수석 업무를 사심 없이 수행했다”며 무죄를 주장한 그의 당당한 태도를, “무책임과 변명으로 일관해 양형 요인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실형을 선고한 주된 이유로 들었다.

우 전 수석의 당당함은 ‘소년급제’(대학 재학 중에 고시에 합격하는 것)를 할 정도로 뛰어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데서 비롯됐지만, 처가의 든든한 재력도 한몫했다. 그는 장인 이상달씨의 총애를 받았다. 딸만 넷이었던 이씨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법조인 사위를 간절히 원했다. 야심만만한 ‘청년 우병우’는 그런 이씨의 마음에 딱 들었다. 이씨는 기흥컨트리클럽(골프장)을 비롯한 사업체 경영을 둘째 사위에게 많이 의존했고, 2008년 세상을 뜨면서 거액의 재산을 물려줬다.

“나는 우병우 라인이 아니다”

우 전 수석은 기흥 골프장을 맘껏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이 골프장을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선후배와 동료를 ‘접대’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는 “잘나갔던 검사 중에 기흥 골프장을 안 가본 이는 거의 없다. 우 전 수석은 골프장에 갈 때마다 ‘이 골프장은 내 것과 다름없으니 이용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기흥 골프장은 그가 ‘우병우 라인’이라는 두터운 인맥을 검찰 안에 쌓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사심으로 만든 인맥은 위기의 순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가 검찰 수사를 받자 그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검찰 인사들은 하나같이 “나는 우병우 라인이 아니다”라고 발뺌하기 바빴다. 그는 박영수 특검과 ‘국정 농단’ 검찰 특수본의 구속영장을 모두 피했지만, 과거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하는 ‘적폐 청산 수사팀’에 의해 지난해 12월 결국 구속됐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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