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맥주 산업과 관련한 대부분의 기사에는 내 이름과 함께 다음 문장이 인용되고 있다. “남한 맥주가 북한 맥주보다 맛이 없다.”
이건 내가 5년 전 에 쓴 짧은 글 때문이다. 비록 그 글이 내가 쓰려던 정치 아이템을 편집장이 ‘킬’한 뒤 충동적으로 떠올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과 무관하게 그 문장은 고유의 생명력을 갖게 됐다. 아마 내가 지금 당장 교통사고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문장만은 내 묘비명에 남을 것이다.
셀럽 셰프 고든 램지가 얼마 전 서울에 와서 한 발언으로(내가 비판해 마지않던 바로 그) ‘카스’가 새 국면을 맞았다. 램지는 기자회견에서 카스가 “죽이게 신선하다”며 만약 나를 만난다면 “내 엉덩이를 걷어차주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언제든 램지가 원한다면 그와 함께 맥주 대결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이런 상황들을 나는 대체로 즐긴다. 그러나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최근의 맥주 논쟁 보도도 핵심을 비켜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카스가 맛있냐, 하이트가 맛있냐가 아니다. 한국의 맥주 시장이 몇몇 대기업에 독점되다보니 다양성이 없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카스나 하이트는 있다. 이 맥주들도 자기 역할이 있다. 정말 더운 여름날 오후에 나는 행복하게 카스를 마신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많은 나라에 굉장히 다양한 맥주가 있고, 그 맥주를 제조하는 여러 회사가 있다는 점이다. 막걸리나 커피를 생각해보자. 단 한 종류의 막걸리, 단 한 종류의 커피는 없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두루 만들고 그에 따라 맛과 가격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런데 왜 유독 맥주만 그렇지 않을까?
이에 대한 유일한 ‘논리적 대답’은 ‘한국 음식은 맵고 자극적이어서, 그걸 희석할 깔끔하고 단순한 맛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내가 소크라테스는 아니지만, 나는 이 주장에 당장이라도 논리적 허점을 짚을 수 있다.
1) 모든 한국 음식이 자극적이지는 않다 2) 한국 사람이 한식만 먹는 것은 아니다 3) 때때로 주인공은 맥주이고 안주는 보조일 뿐이다 4) 심지어 맥주만 먹을 때도 있다 5) 필스너나 앰버 에일 같은 맥주도 자극적인 음식과 잘 어울린다 6) 매운맛을 중화할 용도라면 물을 마시면 된다 7) 북한 역시 한식을 먹지만 다양한 맥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등등등.
나는 고든 램지가 비싸고 풍부한 맛을 지닌 맥주에 대해 ‘허세’라고 말하는 걸 보고 놀랐다. 모든 소비재 시장은 저가, 중저가, 고가의 상품으로 구성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램지 같은 고급 셰프가 최고의 식재료, 잘 훈련된 스태프, 고도의 스킬을 동원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동시에 다운타운에는 맥도널드도 있다. 램지 식당의 3% 가격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둘 중 무엇이든 좋은 선택이다.
10년 뒤엔 지금 같은 맥주 논쟁은 사장됐을 것이다. 미국을 보면 확연해진다. 원래 미국 맥주 시장도 버드와이저나 쿠어스 같은 밋밋한 라거를 만드는 몇몇 대기업에 지배됐다. 미국인들은 점점 지쳤고, 수제맥주 시장은 점점 커져서 전체 맥주 시장의 12.3%를 차지하고 있다. 그다음은 수입맥주 시장이다. 최근 ‘수입맥주 4캔 만원’ 이벤트 덕분에 한국에서도 ‘수입맥주 강세’가 시작됐다. ‘한국 음식이 매워서 평범한 라거가 제격’이라는 논리의 구멍은 보통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페일 맥주잔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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