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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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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피해자’ 여성에게 법적 책임까지 들씌우나

변정희 ‘살림’ 상담소장의 ‘HIV 감염 여성’ 면회 기록…

“파렴치한 한국 사회야말로 유죄”
등록 2017-12-13 17:55 수정 2020-05-02 19:28
가 10월19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여성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과 HIV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돈을 받고 성관계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한국 사회엔 한바탕 ‘에이즈 광풍’이 불었다. 당사자인 여성과 가족은 사회적 낙인과 혐오에 시달렸고, 기사에 노출된 대중은 왜곡·과장된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부산 지역의 여성·장애인 인권단체들은 보도 행태를 비판하며 당사자 여성을 지원했다. 이 여성에 대한 법률 지원 등을 하고 있는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담소장이 지난 8주 동안 ○○구치소에서 여성을 면회한 내용을 보내왔다. _편집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첫 만남_ “남자친구한테 전화 좀…”

10월21일 오전 11시. ○○구치소 안 여성접견실. 투명한 플라스틱 벽을 사이에 두고 그와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HIV 감염인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성매매를 해 에이즈를 매개, 전파하려고 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직후였다. 온라인, 오프라인, 방송 등 모든 뉴스 매체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에이즈 공포’를 퍼뜨리며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 지적장애 여성이고 배후에 남자친구 등 비장애 남성이 관여돼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부각되지 않았고, 성구매자들은 에이즈 매개의 피해자로 둔갑한 상황이었다.

성매매 여성의 인권침해 등에 대응하고 지원하는 단체 ‘살림’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 전국연대, 그 밖의 여러 단체와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의 보도 태도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또한 사건의 진상 파악과 사건 지원을 위해 ○○씨와 부모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구치소에서 처음 만난 그는 자신에게 닥친 일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는 듯 무덤덤하게 보였다. 작은 목소리로, 질문에 내뱉듯이 짤막하게 답했다.

“지금 지내기는 어때요?” “괜찮아요.”

“기분은 어때요? ” “아무 생각 없는데요.”

그에게 살림이 어떤 곳인지 소개했다. 그는 계속 무표정했고,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지금 변호사는 국선변호사인데, 혹시 필요하면 관련 경험이 있고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변호사를 지원해줄 수 있어요.” 말을 건넸다. “여자 변호사로 바꿀 수 있으면 바꿔주세요.” 그가 답했다.

“혹시 또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 묻자 다시 답이 돌아왔다. “남자친구한테 전화 좀 해주면 안 돼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가 많아졌다. “남자친구가 기다린다고 했어요.”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치소에 갇힌 것보다는 남자친구와의 단절인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 만남_ 길들임을 통한 폭력

“남자친구에게 연락해봤어요?” 며칠 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를 보자마자 ○○씨가 물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서 연락을 못했다고 얼버무렸다. 남자친구가 명백히 성매매 알선 행위를 했음에도 충분히 수사하지 않았고, 남자친구가 ○○씨를 면회하면서 ○○씨가 남자친구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도록 조종할 가능성에 대해 담당 수사기관에 항의한 이후였다. 그가 남자친구에게 심리적으로 많이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서 걱정스러웠다.

청소년과 지적장애 여성들이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이유는 명백하고 물리적인 폭력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길들임이라 해석할 수 있는 ‘그루밍’ 방식에 의해서이다. 길들임을 통해 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하고 성폭력이나 성착취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성적 통제에 익숙해진 이들은 무엇이 폭력이고 착취인지 구분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의사와 자신의 의사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를 만나기 전 그의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10대 시절, 감금과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19살, HIV 감염 이후 집을 나가 생활하다 온라인 채팅 사이트로 성매매를 했다가 체포됐다. 26살, 7년 뒤 그는 다시 성매매를 하다가 체포됐다. 그에게 7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성매매는 어떤 의미였을까.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아주 짧은 7분이 흘러갔다.

세 번째 만남_ “원해서 한 적은 없어요”

“하고 싶어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구치소 투명한 벽 너머로 그의 음성이 들렸다. 그 한마디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맨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여성이자 장애인으로서 사회적 보호를 받기보다 성적 대상으로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것을 먼저 경험한 그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처음에 성매매를 어떻게 하게 됐어요?”

“친구가 알려줬어요. 노래방 도우미 하면서 한번 해보라고, 괜찮다고….”

“그러면 이번에는 어떻게 (성매매를) 하게 됐어요?”

그의 이야기가 토막토막 이어졌다. “같이 사는 □□가, 자꾸 돈을 벌어오라고 했어요.”

그는 2017년 5월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살았다. 그때 지금의 남자친구도 만났다. 집을 나간 지 한 달 뒤에 남자친구가 아는 (남)동생이라고 소개한 △△의 집에 놀러갔다. 그리고 그 집에서 살게 됐다. 그는 “△△가 성매매를 해서라도 생활비를 내라고 자꾸 말했어요”라고 말했다.

숙식을 빌미 삼아 △△는 그에게 성매매를 해서 돈을 벌어올 것을 요구했고, 남자친구는 조건만남을 할 수 있는 성매매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주고 여성으로 위장해 성구매자와 채팅을 했다. 모텔 앞에서 기다리고 돈을 받았는지 확인을 했으며 그가 벌어온 돈으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사고 필요한 생활용품을 샀다. 심지어 이들은 그의 이름으로 휴대전화까지 개통했다. 이렇게 되면 휴대전화 요금이며 기계값도 모두 그의 몫이 된다. 그가 구치소에 갇힌 지금은 그의 부모 몫이 됐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알선했다’고 인정했지만,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남자친구가 성매매를 시켰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구치소에 갇힌 뒤 계속해서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친구는 그가 수감된 직후 면회를 오고 한동안 오지 않다가 최근, 경찰에게 재조사를 받는 시점에 다시 면회하러 왔다.

그를 바라보며, 또다시 많은 성매매 경험 여성들을 만나면서 하게 되었던 똑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피해자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아무런 판단이나 선택의 여지 없이, 상대의 폭력과 윽박지름에 의해 매순간 수동적으로밖에 반응하지 못하는, 그리하여 우리가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약하고 순수하고 깨끗한’(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긴 할까) 이들만이 피해자의 범주에 속하게 되는 것일까? 내가 만난 많은 여성은 물리적 감금과 폭력에 의해서만 성매매를 강요받지 않았다. 사회적 소외와 단절 속에서 절실해지는 친밀함, 위로, 심리적 의지를 대가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HIV 감염인인 그는 사회적 소외, 단절, 청소년 시절 폭력을 당한 경험 때문에 ‘관계 의존도’가 더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 번째 만남_ “집에 가고 싶었지만…”

“□□이 감시하고, 집에서 못 나가게 했어요.”

하루 전 재판이 있었다. 판사가 직접 피고인인 ○○씨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이 대답 과정에서 ○○씨는 처음 듣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가 집에 가지 못하게 감시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그를 만나 한 번 더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랬을까요, △△는?” “내가 가버리면 심심하니까, 그리고 내가 빨래하고 다 해주니까. 빨래하고 청소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 같은데요.”

이 대답은 그가 지난 몇 달 동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어떤 식으로 이용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찰 수사가 조금만 더 섬세하게 진행되었더라면, 그를 둘러싼 남성들이 어떻게 그를 이용하고 착취해왔는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달 동안 다섯 차례 정도 만나면서 신뢰가 조금은 쌓인 것 같다. 하지만 근심스러운 것은 그의 심리적 상태다. 첫 만남 때와 비교하면 말투가 달라졌고, 자주 웃는다. 그러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아무 생각 없는데요.” 그 말을 할 때의 무심한 표정과 어조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또한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이는 지적장애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매매 현장에서 많은 여성이 보여주는 모습과 비슷하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자신을 고통에서 구하는 방어기제, ‘해리’가 나타나는 모습이다.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점점 자신이 처한 상황 자체에 무감각해진다.

그래서 ○○씨를 지원하는 단체들은 재판 과정에서 ○○씨의 정신 상태 감정을 받을 수 있도록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무용한 일’이라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설령 정신 감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는 대통령령이 성매매 피해자로 정한 중대한 장애(아이큐 70 이하의 지적장애)에 해당한다. 경찰은 당연히 성매매 피해자로 인지하고 수사해야 했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을 무조건 피의자로 간주하는 수사 관행은 그가 이중 삼중으로 취약한 상태의 약자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되풀이됐다. 그는 현재 성매매 피의자로 기소돼 있다.

이는 경찰이 취한 ‘함정수사’ 기법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경찰은 ‘조건만남’ 애플리케이션에서 성구매자로 위장해 ○○씨에게 접근했다. 이후 경찰은 모텔에 모습을 드러낸 그를 체포했다. 현장에서 만난 성매매 여성을 무조건 성매매 행위자로 간주하고 그 배후에 어떤 알선자가 있는지, 성매매로 유인되는 과정이 어떠한지 면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설혹 이뤄진다 하더라도 대부분 여성을 피해자로 보기보다는 공모 관계로 파악한다. 지난해 13살 지적장애 소녀가 부모님이 의사소통 훈련 방법으로 휴대전화에 깔아준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성매매를 한 사건에서도 13살 지적장애 소녀는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선 성매매녀’가 됐다. 이 사건을 보고 많은 이들이 공분했지만, 경찰의 수사 관행은 달라지지 않는다.

성매매 피해자는 구속, 알선남은 불구속

한국 사회에선 지적장애 여성 청소년에게도 ‘성매매녀’ 딱지를 붙인다. 그러다보니 지적장애 여성이면서, HIV 감염인이면서 청소년이 아닌 그가 법이 정한 ‘성매매 피해자’ 지위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를 만날수록 그동안 그가 입은 심리적 피해의 상담과 지원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매매 피해자’인 그가 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걸까. 성구매자인 남성은 물론, 알선남들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는데 말이다. 여성은 성매매 현장에서 수많은 위협을 겪는다. 이제 한국 사회는 그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여성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 이처럼 파렴치한 사회야말로 유죄가 아닌가.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부설 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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