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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거제도에선 ‘제2의 홍준표 도지사’ 나온다

2014년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경남에서 50%대 득표로 90% 의석 얻어,

호남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이 90% 의석 차지… ‘표심 왜곡’ 지방의회 선거제도 새로고침을
등록 2017-10-17 11:21 수정 2020-05-02 19:28




이제는 국회를 바꿀 때다

① 표심 왜곡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바꾸자
② 문 대통령,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대 열까
③ 지방선거도 이대론 안 된다


2013년 5월29일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경남 창원시 청사 회의실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13년 5월29일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경남 창원시 청사 회의실에서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현 자유한국당 대표)는 도지사 재임 시절 진주의료원 폐쇄, 무상급식 중단 등의 정책을 밀어붙여 지역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켰다. 도지사가 이렇게 독단적 정책을 밀어붙일 때 견제·감시 역할을 해야 할 도의회는 무엇을 했을까? 몇몇 의원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2014년 경상남도의회 선거에서 경남도의회 의석 55석 가운데 50석을 새누리당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도지사와 같은 정당 소속 도의원이 90% 넘는 상황이었으니, 견제·감시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야당 의원은 비례대표로 당선된 2명과 지역구 당선자 1명뿐이었다.

표의 등가성 훼손은 세계 최악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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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상남도 유권자가 새누리당에 90% 이상 표를 몰아줘서 이런 결과가 생겼을까? 아니다. 2014년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이 경상남도에서 얻은 정당득표율은 59.19%였다. 59.19% 득표로 90% 이상 의석을 차지할 수 있게 한 원인은 ‘잘못된’ 선거제도였다.

한국의 시·도의회(광역의회) 선거제도는 의원 정수의 90%를 지역구에서 1등을 한 후보로 뽑고(소선거구제·상대다수대표제), 10%의 비례대표 의석을 덧붙이는 방식이다. 지역구에선 50%대 득표율로도 1등을 싹쓸이할 수 있다. 실제 2014년 경상남도의회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지역구 49석 중 3석을 제외한 나머지 46석을 싹쓸이했다. 그로 인해 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심각하게 불일치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선거 결과는 ‘표의 등가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1표의 가치는 동등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대한민국의 지방의회 선거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의 가치는 1.5배로 뛰어올랐다. 59% 득표로 90%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한 경상남도 유권자는 28.87%였지만, 이들이 차지한 의석은 3.63%에 불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이 던진 표의 가치는 8분의 1로 줄어들었다.

2014년 지방선거 때 경상남도에서만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등 거의 모든 영남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90% 이상 의석을 가져갔다. 50∼60% 득표율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호남에선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광주, 전남, 전북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이 90% 이상 의석을 차지했다. 전북의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득표율은 64.24%였지만, 89.47%의 의석을 차지했다. 전북에서 새누리당은 17.46% 득표했지만, 의석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새누리당이 전북에선 손해를 본 것이다.

이처럼 영호남 1당 지배 현상은 잘못된 선거제도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수도권은 괜찮을까? 과거 선거 결과를 보면 수도권에서도 특정 정당이 90% 이상 의석을 차지한 경우가 발생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이 경기도의회 의석의 96.7%(119석 중 115석)를 차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득표율은 58.9%에 불과했다. 2006년 지방선거 때엔 서울시의회, 인천시의회에서도 한나라당이 90% 이상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2010년과 2014년 서울시의회, 경기도의회 선거에선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이 득표율에 비해 과다한 의석을 가져갔다. 어느 정당이 이익을 보느냐는 선거 때마다 바뀌지만, 대한민국 시·도의회 선거의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의 불일치(불비례성)는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제도뿐 아니라 지방의회 선거제도 역시 표심을 의석수에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광역의회 선거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결과, ‘표의 등가성’이 지켜지고 다양한 정당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만들어지고 있다. 영국은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진 못했지만, 런던광역의회에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런던광역의회의 의미 있는 변화

런던광역의원의 총수는 25명이다. 그중 14명은 지역구 선거로 뽑고, 11명은 비례대표이다. 우리와 다른 점은, 비례대표 의석 11석만 정당득표율대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의석 25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배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정당은 자기가 배분받은 의석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인정하고,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2016년 런던광역시의회 결과를 보면 이 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노동당은 40.3% 정당득표율로 25석 중 12석을 배분받았다. 그런데 노동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9명이었으므로, 모자라는 3명을 비례대표로 채웠다. 영국독립당과 녹색당은 8.0%를 얻어 2석을 배분받았는데, 지역구 당선자가 없어 비례대표로만 2석을 채웠다.

이 방식을 채택하면, 지역구 선거를 하면서도 각 정당이 얻은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할 수 있다. 독일과 뉴질랜드 등이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채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시·도의회 선거에 도입하면 된다.

시·군·자치구의회(기초의회) 선거제도도 문제다. 기초의회의 경우 특정 정당의 독식을 막기 위해 1개 지역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4명을 뽑는 4인 선거구를 쪼개서 2인 선거구로 만드는 행태가 벌어졌다. 거대 양당이 나눠 먹기 좋은 구조를 만든 것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선 전체 기초의원 지역구 중 59.2%가 2인 선거구로 돼 있었다. 결국 한 정당이 1·2등을 모두 차지해 2석을 가져가거나, 두 정당이 1석씩 나눠 먹는 선거가 된다. 거대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하다보니,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보다 공천권자의 낙점을 받는 것이 중요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지방의회에 청년, 여성, 소수자는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의회에서도 20∼30대 의원은 2∼3%에 불과하다. 여성 의원 비율도 광역의회는 14%, 기초의회는 25% 수준이다.

기초의회까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기초의회에도 비례대표가 있지만 전체 의석의 10%에 불과해 의미가 없다. 기초의회는 최소 규모가 7석이고, 20석이 채 안 되는 의회가 많다. 그래서 한 기초의회에 비례대표 의석은 1∼2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당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정당은 기초의원 비례대표 출마를 아예 포기한다. 정당지지율에서 1등이나 2등을 할 자신이 없으면 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2014년 지방선거 때 기초의회에서 무투표 당선이 이뤄진 곳이 65곳에 달했다. 특히 경북, 전남, 전북 지역에서 무투표 당선이 많았다. 이 지역에선 어차피 특정 정당이 비례대표까지 싹쓸이하기 때문에 다른 정당들이 출마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지역이든 야당 표가 30% 정도 나온다. 정원이 10석인 기초의회라면 최소 3명은 그 지역의 야당 몫이 되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래서 기초의회 선거도 표의 등가성(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로 바꿔야 한다. 전국 48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기초의회까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로 개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기초의회 지역구 선거에서 중선거구제를 유지한다면 지금의 2인 선거구는 없애야 한다. 2인 선거구는 거대 정당의 독과점 구조를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소 3인 이상을 한 선거구에서 뽑아야 다양한 정치세력이 진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들이 정치결사체를 만들어 지방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도록 인정해줘야 한다. 유럽, 미국, 일본 등은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풀뿌리옥천당, 마포파티, 과천풀뿌리 같은 시도가 있었다. 지방선거조차 전국정당만 후보를 낼 수 있도록 할 이유는 없다.

독일에선 유권자단체(선거인단체)라는 이름으로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지역 차원의 정치조직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독일의 생태·환경 도시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 시의회에는 14개나 되는 전국정당·유권자단체가 진출해 있다. ‘살기 좋은 프라이부르크’ ‘청년 프라이부르크’ 같은 이름의 정치조직이 시의회에 들어가서 전국정당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정치를 하기 때문에 오늘의 프라이부르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국에선 지역정당이 인정되지 않아 지역정치 활성화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정치할 자유를 보장하라

이뿐만 아니다. 선거권을 만 18살 이하로 낮추는 것, 피선거권도 만 18살로 낮추는 것, 청소년·교사·공무원의 정치 활동을 보장하는 것, 여성할당제를 강화하는 것,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등 내년 지방선거 전에 고쳐야 할 것이 많다. 이 모든 것이 지금 국회에 구성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돼야 한다.

당연히 이 중요한 문제를 국회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 내 표가 중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의 몫이다.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대중행사를 11월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고, 앞으로도 국회를 압박해나갈 계획이다. 잘못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지역을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꿀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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