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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없는 선거를 위하여

국회 의석 표심대로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체 의석 확대·예산 동결·밀실 공천 방지가 관건
등록 2017-09-13 17:47 수정 2020-05-02 19:28
2016년 12월29일 국회 본회의장에 의원들이 새롭게 바뀐 좌석 배치에 따라 앉아 있다. 정당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정받는 제도로 바꾸려면 의석수를 현재 300석에서 360석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2016년 12월29일 국회 본회의장에 의원들이 새롭게 바뀐 좌석 배치에 따라 앉아 있다. 정당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정받는 제도로 바꾸려면 의석수를 현재 300석에서 360석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돌아가신 언론인 박권상 선생은 1993년 10월 에 ‘선거제도, 혁명적 개혁 기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금권정치에서 벗어나려면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선진 민주주의 25개국 중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택한 국가는 미국·영국·뉴질랜드·캐나다뿐이고 나머지는 비례대표제라는 것을 지적했다.

문 대통령 공약한 독일식 비례대표제

지금 읽어봐도 의미 있는 얘기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당선된다. 승자독식이다. 문제는 승자독식 선거제도로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00여 년 전부터 유럽에서는 비례대표제가 대세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는 비례대표제 국가다. 핀란드는 헌법에서 선거의 기본 원칙으로 ‘비례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박권상 선생이 칼럼을 썼을 때보다 줄어들었다. 뉴질랜드는 국민투표를 거쳐 1996년부터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바꿨다. 남은 국가 중에서도 변화 조짐은 있다. 캐나다는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자는 초정파적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세계 흐름이다. 비례대표제가 표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다양한 정당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국회의원 300명 중 253명을 지역구에서 1등 하면 당선되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로 선출한다. 비례대표 47명이 있지만 장식품에 불과하다. 어차피 선거 승패는 지역구에서 1등 하는 수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방식은 표심을 왜곡하고 ‘적폐’를 만들어왔다.

국회의원선거는 진짜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 진짜 비례대표제는 300명 국회의원 전체를 각 정당이 얻은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표의 등가성(비례성)’을 보장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지역구 선거를 아예 하지 않고 정당투표만 하는 방식이다. 유권자는 정당만 찍고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한다. 각 정당은 자기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로 의석을 채운다. 네덜란드가 이렇게 선거를 한다.

두 번째는 지역구 선거를 하면서도 전체 의석을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독일과 뉴질랜드가 이 방식으로 비례대표제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하는 방식이고 문재인 대통령 등도 공약한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이 더 이상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개혁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385개 노동·시민사회 단체가 모인 ‘정치개혁 공동행동’은 독일, 뉴질랜드 등이 택한 방식을 제안한다. 요즘에는 이것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른다.

이 방식은 대한민국 유권자가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 1표를 던지는 1인2표 방식으로 투표하면 된다. 다만 유권자가 알아야 할 점은 앞으로 정당투표에 따라 전체 국회의석이 우선 배분된다는 것이다. 지역구 후보에게 던진 1표는 우리 지역 국회의원을 뽑는 의미밖에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ABC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지금처럼 국회의석이 300석이라 가정하고 A당이 정당투표에서 20%를 얻었다면, A당에는 300석의 20%에 해당하는 60석이 배분된다. 아래 세 경우가 발생하면 다음과 같이 처리한다.

1) A당이 낸 지역구 후보자 중 50명이 1등을 했다면? 50명의 지역구 당선자는 인정해주고 모자라는 10명을 비례대표로 채운다.

2) A당이 지역구에서 1명도 당선이 안 되면? A당은 60석 전체를 비례대표로 채운다.

3) A당이 지역구에서 60명이 당선되면? A당은 이미 배분받은 의석을 채웠기 때문에 비례대표는 없다.

이러면 지역구 선거를 하면서도 전체 국회의석을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할 수 있다. 표의 등가성(비례성)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A당이 60석을 배분받았는데 지역구에서 61명이 당선되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이 경우를 ‘초과의석’이라 한다. 지역구 당선자를 무효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인정해준다. A당이 61석을 갖는 것이다. 이러면 표의 등가성(비례성)이 약간 깨진다.

그래서 독일식 비례대표제에서는 ‘초과의석’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전국 단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역으로 쪼개면 영남이나 호남에서 특정 정당이 지역구를 싹쓸이해 초과의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비례대표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독일식 제도에서는 결국 비례대표 의석으로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맞춘다. 그래서 지역구 의석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최소 2 대 1 정도는 돼야 한다. 독일은 국회의석수 598석을 지역구 299석, 비례대표 299석으로 나눈다. 뉴질랜드는 120명 국회의원을 지역구 71명, 비례대표 49명으로 나눈다.

현재 대한민국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 가장 큰 난관은 이 점이다. 지금은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253개 지역구를 대폭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 전체 의석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고, 늘어나는 정수대로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정치개혁 공동행동’도 인구 14만 명당 1명의 국회의원을 뽑자고 제안했다. 이러면 국회의석이 360석 정도 된다. 최소 100석 이상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다만 국회 예산은 늘어나지 않아도 된다. 현재 1년 5744억원에 이르는 국회 예산으로 국회의원 360명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국회의원의 과도한 연봉, 개인 보좌진 수를 조정하고 영수증 없이 쓰는 특수활동비 같은 예산을 폐지하면 된다. 이것이 주권자에게 이득이다.

민주적 공천 법제화해야

문제는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다. 그동안 거대 정당들이 ‘돈 공천’ ‘밀실 공천’으로 물의를 빚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도 해법은 있다. 독일의 경우 연방선거법에서 민주적 공천을 강제한다. 당원들의 비밀투표로 선출된 후보자가 아니면 아예 후보 등록을 받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우리 여건에 맞는 민주적 공천을 법제화하면 된다. 한 가지 방식이 아니라 몇 가지 방식 가운데 각 정당이 선택하도록 한다. 어쨌든 밀실 공천만 확실하게 금지하면 된다. 이것이 국회다운 국회를 만드는 길이다. 정권 교체를 넘어 정치 교체를 하고, 촛불시민혁명을 완성하는 길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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