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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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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과 논문

인권·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대학원생…

원스트라이크아웃제, 표준근로계약서 필요
등록 2017-07-04 09:09 수정 2020-05-02 19:28
이번호부터 서보미 기자의 ‘국회는 대나무숲’을 시작한다.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청년, 중장년, 노동자, 자영업자 등의 절박한 외침을 담는다. 이들의 목소리는 결국 입법기관인 국회를 향한다. 정부, 시장, 상사, 소비자의 일시적 선의나 시혜가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시민의 삶이 지속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뜻에서다. 첫 번째로 학생·연구자·노동자라는 중첩적 지위에 놓여 있지만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_편집자
지난 6월27일 고려대 대학원생 이미혜(가명)씨가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지도교수가 성추행과 부당해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지난 6월27일 고려대 대학원생 이미혜(가명)씨가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지도교수가 성추행과 부당해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오늘도 쨍하다. 챙 넓은 모자에 의지해 한낮 햇볕 아래 섰다. 1m 종이 피켓 두 개를 잡고 서 있으니 팔이 저리다. 꼿꼿한 몸에 개미들이 기어오르는지 자꾸 가렵다. 점심을 걸러 속도 쓰리다. 그래도 괜찮은 척 담담한 표정을 짓는다. 저만치 떨어진 나무 아래 서 있는 엄마 때문이다. 딸에게 미안해 벤치에 앉지도 못하는 엄마가 더 안쓰럽다.

“결혼 안 한 총각이니 가끔 만져줘라”

내 몸보다 엄마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시선’이다. ‘별일 아닌 것을 크게 벌인다’고 말하는 듯한 동료 대학원생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더 아프다. 지난 6월27일,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대학원생 이미혜(30·가명)씨가 8일째 ‘1인시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시위는 건물 6층을 향한다. 체육교육학과 정아무개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곳이다. 한때 이미혜씨가 자주 드나들던 일터였다. 연구조교인 그는 석사과정 2학기부터 1년간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정 교수의 연구 활동을 도왔다.

하필,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석사 학위 마지막 관문인 논문을 작성하는 4학기만 남겨두고 있었다. 지난해 11월24일 오후 6시께, 정 교수가 이미혜씨를 학교 근처 주점으로 불렀다. “내 가방을 들고 와라” “논문 지도를 해줄 테니 (논문) 연구계획서도 가져오라”는 지시였다. 정 교수는 술 마실 때면 종종 이씨를 술자리로 불러냈고, 이후 자신의 집으로 운전까지 시켰다.

술잔이 돌고 있었다. 정 교수, 정 교수의 또 다른 제자 고동식(가명)씨, 고려대에서 강의하던 단국대 조아무개 교수가 함께 있었다. 처음부터 정 교수의 말이 거칠었다. “이미혜는 남자였어야 해. (중략) 전 조교는 총각 교수(나)한테 오는 애가 밤에 일 시키려고 부르면 옷을 이상하게 입고 향수도 뿌리고 왔다. 걘 너무 여자로 어필해서 문제였는데 얘(이씨)는 함부로 건드렸다간 검찰에 끌려갈 것 같아.” 정 교수의 이야기를 듣던 조 교수가 갑자기 욕을 했다. “개쌍년, 개씨팔년.” 쌍욕이 열댓 번 이어졌다. 이씨의 항의에도 조 교수는 희롱을 멈추지 않았다. “예쁘니 술을 받아라.” “술 못하면 교수가 못 된다.” 정 교수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 교수의 성희롱에 동조했다. “너희 교수(정 교수)가 결혼도 안 한 총각이니 가끔 만져주고 그래.” 조 교수의 말에 갑자기 정 교수가 이씨의 왼쪽 팔목을 덥석 잡더니 자기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딜 만져달라 그럴까, 여기 만질까? 여기?” 이씨는 팔목에 힘을 줘 정 교수의 몸을 건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술집 여자가 된 것처럼” 강한 수치심이 치밀었다.

그런데도 이씨는 얼어붙어버렸다. 논문이 떠올랐다. 정 교수가 논문 지도를 해주지 않으면 학위를 딸 수도 졸업을 할 수도 없었다. 이씨는 “재미있는 공부를 계속해 박사과정도 밟을 생각”을 할 만큼 공부에 욕심이 많았다. 21살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9년간 헬스트레이너로 일한 돈을 모아 뒤늦게 시작한 학업이었다. ‘술자리에서 무슨 말이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한 자신’을 지금도 자책한다.

이튿날 공동연구조교를 통해 병가를 내고 일주일을 앓았다. 학교를 그만둘 생각만 했다. “이렇게까지 논문을 써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논문 지도를 받으며 또다시 무슨 일이 생길지” 두려웠다.

자퇴를 길게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아팠던 일주일 사이, 학과 사무실로부터 ‘조교가 교체됐으니 장학금을 반납하라’는 통보를 전자우편으로 받았다. 이유를 따져 물으려 했지만 정 교수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실 출입만 정지당했다. 이후 공동연구조교에게서 “(업무 불성실로) 내가 해임되면서 너(이씨)도 공동 책임으로 해임됐다”는 등의 석연치 않은 사유만 전해들었다. 성추행 사건과 연관된 부당해고가 분명했다.

사건 발생 열흘 만에 학교 양성평등센터를 찾아가 신고했다. 한 달여 뒤엔 검찰에 고발했다. 강제로 팔을 잡아당긴 지도교수 정 교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욕설을 한 조 교수는 ‘모욕’ 혐의였다. 조 교수의 발언에도 성적 수치심을 느꼈지만 “특별한 고용관계가 없는 외부 교수라 처벌 근거가 없다”고 변호사가 말했다.

학교는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학교는 이미혜씨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양성평등센터는 물론 학과 교수들은 정 교수와 그를 분리시켜주지 않았다. 이씨를 제자로 삼겠다는 다른 교수도 있었지만 “교수 사이 화합이 깨진다” “형사사건이 끝나고 결정하자”며 학과 차원에서 ‘지도교수 변경’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지난 2월, 이씨는 도저히 정 교수의 지도를 받을 수 없어 휴학을 신청했다. 그마저도 정 교수가 승인을 해주지 않아 자동 제적 처리됐다. “학교를 못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 한 달 뒤 교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학습권 침해’로 민원을 넣었더니 제적 처리는 취소됐다. 그러나 지도교수 변경은 3개월이 더 지난 6월 말에야 결정됐다. 1인사위를 시작한 직후다. “한 학기 동안 싸워서 얻은” 결과는 고작 ‘학교를 계속 다닐 권리’였다.

이미혜씨는 지독하게 운 나쁜 대학원생이 아니다. 33만 명 넘는 석·박사 대학원생 가운데 교수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례는 헤아리기도 어렵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지난해 11월 대학원생 1222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상당수가 교수·강사로부터 개인 시간 침해(31.4%), 폭언과 욕설(22%), 술따르기·노래·춤 강요(7.9%), 성희롱과 음담패설(4.7%), 원치 않는 신체 접촉(3.4%) 등을 경험했다.

특히 지도교수와 제자의 갈등은 극단적 범죄로도 이어진다. 학위 취득과 취업 여부 등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지도교수가 제자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연세대에서 발생한 ‘텀블러 폭탄’ 사건의 피의자 대학원생 김아무개(25)씨도 평소 논문 연구 과정에서 지도교수에게 “질책을 받고 반감을 가져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앞서 2015년 ‘인분 교수’ 사건도 지도교수와 조교 사이에 벌어진 충격적 사건이었다.

학생도 연구자도 노동자도 아닌 대학원생을 보호할 마땅한 제도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대학원생의 인격권, 학습·연구권, 부당한 일에 대한 거부권 등을 담은 ‘대학원생 인권장전’을 마련하고 인권침해 예방·해결 전담 기구를 설치하라고 전국 182개 대학교(대학원 설치 대학)에 권고했다. 이를 수용한 대학원을 교육부는 현재 파악 중이다. 이씨가 다니는 고려대에선 지난해 인권센터가 설치됐지만 학교와 대학원생의 의견 차이로 인권장전 제정은 3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인권장전과 인권센터의 한계도 많다. 학생의 ‘기본권’은 늘 대학의 ‘자치권’에 밀린다. 교육부 개입 없이 대학 자율로 만드는 인권장전은 강제성이 없다. 인권센터 역시 교수 징계를 권고할 수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 권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 조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서울대 인권센터는 이른바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의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에게 ‘인권교육 이수’ 결정을 내렸다.

국회에 묶인 대학원생 보호법안

급기야 대학원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왔다.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해 7월부터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나 인권 대책을 요구했다. 국회의원들도 반응했다. 바른정당 김세연 의원실은 각종 대학 평가에 ‘인권 지표’를 반영하라고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후 교육부는 BK21(우수 고등인력 양성 교육정책) 사업 등 대학재정지원사업 평가에 인권 지표를 담는 안을 마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에선 지난 3월 비위 교수의 징계 시효를 늘리는 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8월에는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법안도 제출할 예정이다. 법안이 국회를 언제 통과할지 기약하기는 어렵다.

조교의 ‘노동권’도 대학원생 기본권 보장의 핵심이다. 교수와 교직원들은 연구·수업·행정조교 등 다양한 형태로 대학원생을 값싸게 부린다. 그러면서도 주요 대학의 90% 이상이 조교에게 ‘임금’이 아닌 ‘장학금’으로 대가를 지불한다. 당연히 근로계약서도 없다.

이미혜씨도 구두 약속만으로 지도교수의 공적·사적 일을 거들었고, 아무 설명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장학금 배분 역시 교수 마음대로였다. 정 교수 지시에 따라 이씨와 또 다른 공동연구조교는 1명의 장학금(591만4천원)을 7 대 3 비율로 나눠가졌다. 조교들이 교수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대 인권센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업무량 과다·초과 근무(43.2%), 적절한 보수 미지급(40.6%), 부적절한 개인 업무 지시(14.7%) 등을 호소했다.

대학원생들의 요구는 간결하다. 조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업무 범위, 근무시간, 임금 액수와 지급 방법 등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라는 것이다. 또 인건비 횡령, 성폭력, 논문 대필을 저지른 교수를 바로 파면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 도입을 촉구한다. 이런 요구에 교육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그런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다.

6월28일, 이미혜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정 교수 사퇴와 학교의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그의 곁에는 두 명의 피해자가 더 있었다. 이씨의 설득으로 정 교수의 비위를 추가 폭로하러 나온 과거 제자들이었다. 한 명은 폭력과 폭언을, 다른 한 명은 이에 더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말과 행동을 고발했다. 이들은 “(정 교수가 있는) 6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상황이 좋지는 않다. 검찰은 정 교수에 대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를 조사하고 있지만, 앞서 3월 경찰은 정 교수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건이 벌어진 주점의 폐회로텔레비전(CCTV)의 저장 기간(15일)은 이미 끝났고, 술자리에 함께한 다른 제자도 이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상태다. 정 교수는 과 전화 통화에서 “내 스스로 거짓말 탐지기(조사)까지 받았다. (이씨의) 거짓 성희롱 주장에 대해 이미 경찰이 무혐의라고 판단했다”며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조교 해촉과 관련해선, 술자리가 있기 전인 11월14일 이미 (업무 불성실을 이유로 이씨에게) ‘해촉될 수도 있다’고 강하게 경고한 적 있다”고 말했다. 다만 모욕 혐의로 고발당한 조 교수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학생도 괴롭히면 꿈틀댄다

“법의 잣대가 그 사람의 죄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죄는 죄잖아요. ‘내가 누르면 학생들은 다 가라앉는구나’ 했던 교수들이 ‘이렇게 꿈틀대는 학생도 있구나’ 하고 죄책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미혜씨가 외침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성추행과 논문’ 보도 관련 추후 보도문


은 2017년 7월10일치(제1169호) ‘국회는 대나무숲-성추행과 논문’ 제하의 기사에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정아무개 교수가 대학원생 이미혜(가명)씨를 성추행했고, 그 후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이씨를 조교에서 부당하게 해임했으며, 이씨는 지도교수 변경 승인이 되지 않아 제적 처리됐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최근 정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등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 이씨는 재정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검찰은 또 이씨가 정 교수를 강요죄 및 권리행사방해죄로 고소한 별도 사건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정을 내려 확정됐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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