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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 푼 없이 200억 건물 사는 법

100% 은행 대출로 건물 사 재건축 내세워 상인 내쫓는 서울대입구역
‘건물사냥꾼’의 신기한 투기법… 제도적 허점에 희생양 된 영세상인들

제1169호
등록 : 2017-07-03 18:05 수정 : 2017-07-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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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 오후, 서울대입구역 1번과 2번 출구가 맞닿은 초역세권 건물인 대성빌딩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건물주 이아무개씨는 100% 은행 대출을 받아 지난해 이 건물을 190여억원에 매입했다.

돈 한 푼 없이 200여억원 건물 사는 법.

우선 시중은행에서 건물 가액의 60%까지 대출을 받는다. 나머지 20%는 저축은행에서 빌린다. 남은 20%는 본인이 소유한 옛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는다. 재건축을 이유로 건물에 세든 상인들을 권리금 없이 내쫓고 적당히 리모델링을 한 다음, 새 세입자에게 월세를 두 배 가까이 올려 받아 이자를 갚는다. 이처럼 적당한 배포와 자기 소유 건물이 있다면 남의 돈으로 또 다른 건물을 매입할 수 있다. 전형적 투기 수법으로, 조물주 위 건물주들이 빌딩을 늘려가는 방법이다. 그사이 피해를 보는 건 고스란히 상가를 임대한 소상공인들이다. 한 건물주의 신박한(?) 투기법 때문에 상인들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보상 안 해도 되는 뿅망치 ‘재건축’

6월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2호선) 1번 출구 앞 대성빌딩. 상인들이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소상공인 길거리로 내모는 악덕 투기꾼 건물주는 각성하라. 대책 없는 재건축에 상인들은 갈 곳 없어 제2의 용산 사태 발생한다. 문재인 대통령님 제발 살려주세요.”

서울대입구역 1번과 2번 출구가 맞닿은 초역세권 건물인 대성빌딩(대지 204평 건평 430평, 지하1층 지상3층)은 지난해 7월 주인이 바뀌었다. 7월19일 1호와 2호로 나뉜 건물을 190억260만원에 매입한 이아무개(63)씨는 같은 달 25일, 변호사를 통해 상인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대성빌딩은 145억원의 대출금과 그 이자에 대한 근저당권설정등기(채권최고액 180억원)가 돼 있다 △건물이 노후돼 안전사고 우려가 있으므로 대수선 또는 재건축을 하려 한다 △특히 많은 대출금으로 인해 경제적 곤란에 처할 수 있어 위 절차를 빨리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두 달 이내에 가게를 비워달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요구에 응하지 않고 민사상의 조치를 취할 경우 건물 인도 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물론 그에 대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의 연 15% 이상의 이자 및 변호사 선임 비용 등 소송비용 등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유념”하라는 말도 빠지지 않았다. 새 건물주 이씨가 소유권 이전등기를 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느닷없는 새 건물주의 명도(明渡·건물, 토지, 선박 따위를 남에게 넘겨줌) 요구에 상인들은 아연실색했다. “영업 중인 점포는 세입자의 전 재산이다. 대출받아서 운영하는 점포도 다수다.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길거리로 쫓겨나면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퇴거를 요구하면서 적게는 몇천만원부터 많게는 수억원까지 권리금을 내고 입주한 상인들은 권리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쫓겨날 운명에 처했다. 2015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상가법)에는 건물주가 세입자의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보호하도록 규정하지만 “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하여 건물의 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새 건물주 쪽 관리인과 변호사가 처음에는 ‘건물주가 재건축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만 ‘보상도 해줄 수 없으니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다. 반발한 상인들이 상가법상의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조항을 들고나오자 태도를 바꿔 재건축을 이유로 내쫓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상 없이 상인들을 내쫓기 위해 재건축을 들고나왔다는 주장에 대해 건물주 이씨는 반박보다 자신의 금전적 손해를 강조했다. 6월29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그는 “5년에서 10년 이상 된 상인들이 건물주가 바뀌면 다 나갈 거라고 전 건물주가 그랬는데 이렇게 저항할 줄 몰랐다. 이자 비용 등으로 한 달에 4천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소송에 진 상인들이 가게를 비우고 있어 다행이다. 다 정리되는 대로 5억~6억원을 들여 재건축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애당초 재건축보다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신규 세입자에게 월세를 올려 받을 심산이었다는 의구심을 낳는 대목이다. 상인들은 “재건축 비용으로 5억~6억원을 얘기한 점도 재건축 아닌 리모델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한다.

건물주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싶다”

건물주 이아무개씨가 소유한 봉천역 앞 3층 상가 건물. 이씨는 은행 대출을 이용해 초역세권 부근의 허름한 건물을 집중 매입해왔다.

상인들이 대책위를 꾸려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퇴거가 늦어지자 다급해진 건물주 쪽은 6월9일 새벽, 공실인 3층 외벽 곳곳에 붉은색 라커로 ‘철거’라는 ‘낙서 테러’와 ‘안전상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관악구청의 행정지도를 받기도 했다. 사실 건물주 이씨가 무리한 방법으로 상인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데는 돈 한 푼 없이 은행 대출만으로 190억원에 달하는 건물을 매입한 정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은행 이자를 매달 갚으려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 세입자에게 두 배 가까이 임대료를 올려 받아야 한다. 이씨는 “돈 한 푼 없이 건물을 샀다. 심지어 취득·등록세도 대출받아서 냈다”며 “일반인들은 벌벌 떨어서 못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기업을 일으키고 싶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건물주의 은행빚 부담을 고스란히 상인들에게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가능한 배경이다.

실제 <한겨레21>이 이씨 소유 빌딩들의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대성빌딩의 잔금을 치른 지난해 7월19일 이씨는 매입대금 190억원 중 60%(채권최고액 124억8천만원)를 해당 건물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대출받았다. 나머지 40%(채권최고액 85억2천만원)는 자기 소유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과 마포구 합정동 상가건물을 담보로 우리은행과 신한저축은행(7월18일)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우리은행은 대성빌딩 계약과 관련해 이씨에게 채권최고액 174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대출했다. 통상 대출액의 120% 정도를 근저당 설정한다고 할 때, 대출금은 대략 145억원으로 추산된다. 7월18일, 테헤란로금융센터 지점에서 대출이 이뤄졌다. 그 자리에서 부동산 거래도 함께 진행됐다고 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본 건물에 대한 대출은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상권, 미래 사업성, 차주의 이자 상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본부의 여신 심사 승인 과정을 거쳐 진행된 대출”이라며 “대출 규모는 건물 감정평가액 및 매매 금액을 고려한 내부 대출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수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물론 각기 다른 부동산 담보로 적법하게 대출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날 같은 지점에서 이뤄진 두 번의 대출을 통해 매매가의 78%에 달하는 금액이 지급됐다는 점에서 시중은행이 부동산 투기에 편법을 권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5년, 10억에서 500억원대 자산가로

또 다른 문제는 이씨가 소유한 상가건물 4채 가운데 3채가 이런 식으로 상호 빚보증으로 물려 있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서대문구 창천동의 단층 건물을 사면서 부동산에 발을 디딘 이씨는 기존 건물을 담보로 새 건물을 매입하는 수법으로 15년여 만에 10억원 건물주에서 500억원대의 자산가가 됐다. 이씨가 빚더미 위에서 자신만의 부동산 소국을 만드는 동안 법과 제도는 그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는 그의 건물은 재벌기업의 상호출자처럼 한 건물에서 대출이자가 막혀버리면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입자들이 덩달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재건축을 빙자해 상인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행태는 건물주들이 자주 써먹는 일종의 트렌드가 된 모양새다. 경기도 안양시 비산2동 상가주택건물에선 재건축조합과 세입자들이 분쟁 중이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 소재 남전빌딩의 건물주도 재건축을 이유로 상인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근 법원은 남전빌딩의 건물주가 진심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며 세입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은 건물주들의 꼼수와 횡포를 막으려면 상가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건축과 관련해 세입자의 재입주 요구권을 명문화하는 내용을 담은 상가법 개정안은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6월29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굳이 내 안이 아니더라도 상가법 개정안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야당은 이 법안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야당의 양보를 받으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한다. 세입자 쪽 변호인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이영기 변호사는 “법원은 기존에 이런 사건이 들어오면 부담스러워하는 게 역력해 보였다. ‘철거하고 다시 짓겠다는데 어쩔 수 없다’는 거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건물주의 탐욕에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경우가 다반사고 나중에 재건축을 안 해도 건물주를 처벌할 수 없는 등 문제가 많다. 법원이 상가법의 약자 보호 취지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인들 “제2의 용산 사태 벌어질 수 있다”

세입자들은 이제라도 건물주가 대화에 나서기를 바라고 있다. 대성빌딩 상인들은 “임대료를 올려주더라도 계속 장사하고 싶다. 근데 임대료 얘기도 없이 나가라는 거다. 몇 번을 만나자고 했는데 전화도 안 받는다. 만일 이대로 거리에 내몰린다면 우리는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제2의 용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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