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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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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과 ‘천리마민방위’

신북풍
등록 2017-03-14 09:16 수정 2020-05-02 19:28

2010년 3월 천안함이 피격돼 침몰했다. 우리 장병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사건에 대해 언론은 ‘북풍’을 우려했다. 안보 위기를 고조할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그해 6월에 예정된 지방선거는 보수 정당에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뻔한 계산이었다. 물론 이 계산은 틀렸다. 이 사건 이후 언론은 ‘북풍’을 단정짓지 못하게 되었다. 여론은 그런 단순한 계산으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북풍’의 2017년 버전은 과거와 사뭇 형태가 다르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의 일부 장비를 별안간에 들여온 사건이다. 야당은 이걸 안보 문제를 이슈화해서 조기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로 보았다. 새롭게 들어설 정부가 사드 배치를 번복할 수 있으니 ‘알박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미국과 중국이 일전을 벼르고 동아시아 정세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취한 이 조치는 “원래 배치하기로 했던 거니까 그냥 들여왔다”는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정무적 판단을 ‘실질적으로’ 했을 것이다. 그게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인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인지, 아니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인지 우리는 모른다.

중요한 건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이 ‘북한붕괴론’에 기반했다는 점을 소급적으로 인준하게 되는 것이 사드 배치라는 점이다. 대북정책의 ‘다른 선택지’를 없애버리는 것인데, 이 점은 보수언론도 시사하고 있다. 등은 “이미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뭉개면서 “차기 정권에 부담이 될 일을 현 정권이 해준 것이니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면 될 일”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기가 막힌 일이다.

최근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별안간 나타난 일에도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북한은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된 사람을 ‘김철’이란 이름의 ‘공민’으로 주장한다. 김한솔은 김정남의 신원을 밝혀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므로 북한은 김한솔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상황을 뻔히 알면서 김한솔이 동영상에 등장하는 위험을 감수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동영상에는 ‘천리마민방위’란 단체의 로고가 찍혀 있다. 이 단체의 실체는 규명된 바 없다. 통일부와 기존 탈북민 단체들도 모른다고 한다. 그들의 홈페이지를 뜯어보면 김정남 암살 이후 급조된 정황이 감지된다. 여기에 올라온 탈북 수기(?)에는 비행기와 고급차도 등장한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언론의 태도다. 언론은 아무도 실체를 모르는 이 조직이 어떻게 김정남 유가족을 피신시켰는지 ‘추측된다’ ‘중론이다’ ‘알려졌다’ ‘관측이 지배적이다’ ‘것으로 보인다’로 끝나는 문장으로만 기사를 써댔다. 출처가 없는 것치고 지나치게 디테일한 정황이다. 국가정보원은 김한솔 동영상이 공개되자마자 “동영상의 김한솔은 본인이 맞다. (동영상은) 본인이 올린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을 신속하게 내놨다.

김한솔이 등장하고 나서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김정은 체제에 맞서 싸울 것을 결심한 김한솔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일부 언론은 ‘북한 망명정부 추진 단체’를 언급한다. 이들이 김정남과 접촉했다는 보도도 이미 나온 바 있다. 김한솔은 ‘북한 망명정부’ 처지에선 ‘정부 수반’으로 삼기에 더없이 좋은 카드다.

통일부는 북한 망명정부 수립 시도에 대해 “일부 탈북민들의 일탈”이라고 한 바 있다. 일부 인사들은 우리 헌법이 북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데 망명정부라니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해왔다. 그러나 이 주장은 갈 곳을 잃게 될지 모른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북한 붕괴의 그날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붕괴하는 건 좋은데, 붕괴 전까지 쏴대는 포탄과 미사일은 어찌할지 알 수 없다. 사드를 배치한다지만 장사정포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북한이 포탄에 VX(신경성 독가스)를 실어서 날리면 우린 다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보수언론이 증명했다. “나중에 안 될 것 같으면 지금 되게 하라”는 게 2017년판 ‘북풍’의 정체인가.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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