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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공작’ 국정원,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

문화예술인들 이병기·남재준·원세훈 등 전·현직 국정원장 검찰에 고발
등록 2017-03-14 08:35 수정 2020-05-02 19:28
지난 3월7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공작정치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사태에 개입한 국정원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3월7일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공작정치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사태에 개입한 국정원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작은 정부’를 엄중 처벌하라.” 박근혜 정부가 만들었던 각종 ‘블랙리스트’의 실질적 몸통이란 의혹을 받고도 ‘비밀정보기관’이란 이유로 통제되지 않던 국가정보원이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

'블랙리스트 공작, 국정원이 개입했다'(제1150호 표지이야기)가 나온 직후인 3월7일,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등에 속한 문화예술인들은 이병기, 남재준, 원세훈 등 전·현직 국정원장 4인과 성명 불상의 국정원 직원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정원의 정치 공작이 계속되고 있다”

등이 공개한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국정원은 정권에 비판적인 민간인을 지속적으로 사찰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기사를 통해 국정원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이 사실로 확인됐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과거 정부의 좌파 지원 내역과 산하기관 장악 시나리오’를 조사해 보고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예술위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자금 지원 문제점 지적’이란 보고서를 작성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국정원의 두 보고서는 ‘문화예술계 좌파 산하기관장 축출’과 ‘블랙리스트 작성’의 출발점이 됐다.

국정원이 지속적으로 기관 내 민간인들을 사찰해온 정황도 드러났다.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부 직원들의 성향 조사를 한 직후 국정원은 영진위 직원 3명에 대해 “우리 편이냐, 온건하냐, 과격하냐” 등의 성향 조사를 했다. 2011년에는 에 참여한 연출자와 제작자들의 성향 조사 보고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2015년 권영빈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지원해줄 수 없도록 판단하는 리스트가 있다”는 말을 공식 회의에서 하기도 했다.

국정원 고발에 참여한 문화예술인들은 국정원이 “5천 명이 넘는 인원에 연간 1조원의 예산을 쓰며 국정 전반에 개입해 공작이나 사찰을 해왔다”며 이는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사례”라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또한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실을 조작, 왜곡해온 국정원의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최근까지 비일비재한 일이었음이 확인됐다”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필두로 국정원의 정치 공작이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용인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했지만 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궤변

이들의 요구 사항은 명확한 책임자 처벌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사찰은 응당 할 수 있는 일이고, 국민의 기본권은 정체불명의 ‘정보 수집’ 앞에 마음껏 희생되어도 좋다”는 신호를 국정원에 주는 것이란 지적이다.

문화예술인들이 국정원을 고발한 날,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헌법재판관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보는 수집했지만, 사찰은 안 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늘 ‘했지만 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빠져나갔다. 보수 정권에서 사실상 사문화된 국정원법 제9조(정치 관여 금지)를 검찰이 살려낼 수 있을까. 특검이 끝난 뒤, 검찰이 강적을 맞았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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