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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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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띄어쓰기 서로 함께 십시일반

대전과 지리산에서 이뤄지는 기본소득 실험 현장들…

매달 50만원이 일궈낼 정부 정책, 생각의 변화 주목
등록 2017-02-10 19:00 수정 2020-05-03 04:28
*스토리펀딩 바로가기▶ '기본소득 월 135만원 받으실래요?'
대전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원 김재섭씨(왼쪽)와 팀장 서한나씨가 매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지급되는 기본소득 실험을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진수 기자

대전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원 김재섭씨(왼쪽)와 팀장 서한나씨가 매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지급되는 기본소득 실험을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진수 기자

“당신의 삶에도 띄어쓰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시인 김승희는 시 ‘반투명한 불투명’에서 “띄어쓰기도 없이 범람하며 밀려오는 나날”이라고 썼다. 대전에 사는 청년 8명은 지난해 10월 이 시구에 착안해 기본소득 실험인 ‘띄어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허덕이는 삶,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들은 거리에 나가 “띄어쓰기도 없이 밀려오는 삶에 띄어쓰기를 찍어봅시다”고 제안한다.

띄어쓰기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모은 후원금 900만원으로 3명에게 6개월 동안 매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하려고 한다. 첫 번째 대상자는 2월11일에 뽑힌다. 일주일 뒤 두 번째 대상자가, 그 일주일 뒤에 세 번째 대상자가 뽑힌다. 지난 1월17일 대전 유성구 지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프로젝트 팀장 서한나(25)씨는 기본소득 받는 이들을 대상으로 매달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삶에 띄어쓰기 찍어봅시다”

“6개월 뒤에는 원래 삶으로 돌아가거나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매달 50만원을 받는 6개월 동안의 삶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이라면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만큼 자유 시간이 생기는 거죠. 이것이 어떻게 삶을 바꾸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기본소득을 체험한 이들이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사회 전반에 대해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는지도 알아보고 싶고요.”

띄어쓰기 프로젝트는 2016년 12월부터 카카오톡을 이용해 후원자와 지원자를 모집했다. ‘@대전기본소득띄어쓰기프로젝트’와 친구를 맺은 뒤 최저시급인 6470원 이상 후원하고 지원서를 작성하면 추첨 대상자가 된다. 2017년 2월2일 현재까지 모두 132명이 지원했다. 추첨 자격 조건은 따로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모인 후원액은 120만원이다. 나머지 후원액은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자 모집은 2월8일까지다.

이들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데는 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프로젝트 팀원 김재섭(27)씨가 말했다. “지난해 7월 한국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에서 독일의 기본소득 실험이 소개된 것을 듣고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후 이 카카오 스토리펀딩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하는 걸 보고 ‘와, 진짜로 하네’라고 생각했다. 독일에서 아이템을 얻고 에서 용기를 얻었다.”

띄어쓰기 프로젝트팀의 최종 목표는 자신들이 직접 정부로부터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다. 팀은 20~30대 청년 8명으로 구성돼 있다. 대학생, 대학원생, 시민단체 활동가, 인디밴드 드러머, 잡지 편집장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다만,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정규직 직장인은 없다.

서한나씨는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하고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대전을 주제로 만드는 잡지 (‘보세요’의 충청도 사투리)의 편집장이지만 이 일로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에게 기본소득이란 ‘생계’다.

“예전부터 생계에 대한 막연한 부담이 있었어요. 많은 돈을 물려받을 환경도 아니고 특출난 재주가 있지도 않거든요.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참 막막했어요. 그렇다고 직장인이 되어 싫은 일을 하며 살고 싶진 않았어요. 그러다 2년 전 기본소득을 알게 됐죠. 그 순간 ‘아, 이거다. 난 이거 하나면 살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온몸으로 기본소득 개념에 동의한 거죠.”

아이템은 독일, 용기는
‘띄어쓰기 프로젝트’팀이 마련한 대전 은행동 으능정이 길거리 캠페인에서 시민들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티커와 포스트잇으로 표시했다. 김진수 기자

‘띄어쓰기 프로젝트’팀이 마련한 대전 은행동 으능정이 길거리 캠페인에서 시민들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티커와 포스트잇으로 표시했다. 김진수 기자

서씨는 그 뒤부터 기본소득에 푹 빠져들었다. 기본소득네트워크 홈페이지에 들어가 응원글을 남기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 개념을 설파하고 다녔다. 그러다 띄어쓰기 프로젝트 팀장까지 맡게 됐다. “저는 기본소득을 받는 게 목표예요. ‘당사자 운동’을 하는 거죠. 기본소득을 받으면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아, 쑥스럽네요.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수줍게 간직한 꿈이었거든요.”

기본소득 도입은 아직까지 요원하다. 서씨는 불안했다. “예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취업 준비 같은 건 안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삶이 점점 불안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 뭐랄까,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해야 하나. 스물여섯 살인데 취직이나 남들이 가는 길로 가려면 지금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서른, 마흔 살에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많이 힘들 것 같아요. 그럴 때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요. 기본소득 실현시켜야죠.”

프로젝트 팀원 신승리(30)씨는 유목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서점 겸 카페 ‘도시여행자’의 북디렉터이면서 인디밴드 노마딕플레이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카페 서빙이나 드럼 레슨을 한다. 한때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기초학습 지도를 했고, 장애인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을 만들기 위해 창업 공모전에도 뛰어들었다. 그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겐 게으르거나 나태해 보일 수 있지만 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관과 기준점을 유지하며 살고 싶은 거죠. 지금은 생계를 위해 주당 20~25시간 정도 일해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택지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누구나 필요한 것, 삶의 선택지

신씨는 박성미 영화감독이 쓴 책 를 보고 기본소득 개념을 처음 알게 됐다. “그 책을 보면 한 챕터를 활용해 기본소득을 소개해요. 박 감독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기에 자신이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기본소득 개념을 사회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점, 생계 보장 개념으로 소개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신씨 역시 불안하다. 올해 서른하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저축을 못하는데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제가 생각하는 삶을 사는 데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겠죠. 먼 미래를 바라볼 때 불안함을 느껴요.” 그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아마 이런 불안은 사라질 것이다.

김재섭씨는 대전알바노조 간사이면서 동시에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에서 활동한다. 서한나씨와 신승리씨에게 처음 띄어쓰기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도 바로 그다. 서울에서 알바노조 활동을 하다가 광역시 가운데 유일하게 대전에만 알바노조 지부가 없어 7개월 전에 대전으로 왔다.

“2011년 말쯤 기본소득 개념을 처음 접했어요. 반값 등록금 운동이 대학가에서 활발하던 시기였죠.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의 의제도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 집회 현장에 기본소득 개념이 담긴 유인물을 뿌리고 갔어요. 기본소득은 개별적 형태의 대안이 아니라 전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개념이어서 매력적으로 느꼈죠.”

띄어쓰기 프로젝트팀은 기본소득 실험을 위해 지난해부터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길거리 홍보, 강연 등이다. 첫 번째 강연은 지난해 9월28일 대한성공회 오동균 신부가 ‘기본소득, 청년, 그리고 자유’라는 주제로 열어 기본소득 개념을 알렸다. 그해 10월27일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위원장이 ‘기본소득의 현황과 전망’을, 12월8일에는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가 ‘여성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강연했다. 오는 2월11일에는 첫 기본소득 대상자 추첨과 함께 오준호 작가가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길거리 홍보, 강연 유치 나서
2016년 12월14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협동조합 ‘이음’ 조아신 기획이사(왼쪽)와 오관영 ‘이음’ 대표가 청년활력기금 대상자를 뽑고 있다. 이음 제공

2016년 12월14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협동조합 ‘이음’ 조아신 기획이사(왼쪽)와 오관영 ‘이음’ 대표가 청년활력기금 대상자를 뽑고 있다. 이음 제공

대전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은행동 으능정이에서 기본소득을 알리는 길거리 캠페인도 벌였다. 시민들에게 기본소득 실험에 참여할 것을 홍보하면서 동시에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포스트잇에 적어 붙이게 했다. 가장 많은 내용은 ‘알바를 그만둔다’ ‘새로운 것(드럼, 검도 등)을 배운다’ ‘여행을 간다’ 등이었다. ‘보일러를 많이 튼다’ ‘방세 걱정이 없겠어요. 신난다!’도 있었다.

대전에서도 ‘권선택 대전시장표 청년수당’이 곧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취업준비생만을 대상으로 면접비나 교육비, 식비 등을 제공하는 방식의 청년수당은 띄어쓰기 프로젝트팀이 얘기하는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멀다. 서한나씨는 “특정 대상에게 조건을 내걸어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건 기본소득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재구성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질문하게 만들어야 한다. 구직자를 위한 수당 형태의 정책은 이 취지에 맞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오늘도 거리에 나가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지리산에서도 기본소득과 관련해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사는 하진용(24)씨는 지난 1월20일 첫 기본소득 50만원을 받았다. 그는 앞으로 1년 동안 매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는다. 그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이는 같은 마을 주민 5명이다. 5명이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하씨도 잘 모른다. 한 마을에 사는데 누가 기본소득을 주는지 알게 되면 기본소득을 받는 이가 여러모로 불편해질 수 있다는 점을 배려했다.

주민이 주민에게 기본소득 지급

하씨는 2년 전 서울에서 귀촌했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 “대학 안 나와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가기 위해 내야 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컸고요.” 그는 서울 홍익대 앞 인디레이블에서 공연기획 관련 일을 했다. 홍대앞의 가장 큰 음악축제인 ‘잔다리페스타’에서도 일했다. 그러다 군대에 다녀온 뒤 잠시 쉬러 어머니와 동생이 살고 있는 산내면으로 왔다가 정착하게 됐다.

지금은 이 마을 청년들이 마을에 뿌리내리기 위해 만든 살래청춘식당 ‘마지’(환대하며 맞이한다는 뜻)에서 일한다. 마을 청년 모임 ‘작은 자유’에서 활동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음악회도 연다. 그는 산내면에서의 삶이 행복하다.

문제는 이 마을에 사는 청년들의 경제적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이곳은 약 2천 명의 주민 가운데 귀농·귀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분의 1(400~500명)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귀촌 마을이다. 20년 전 귀농·귀촌한 이들은 이곳에 정착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곳 사정도 많이 변했다.

“산내는 지금 20대 청년이 들어와 살기엔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 땅값도 오르고 살 집도 마땅치 않다. 일거리도 별로 없다. 농촌도 세대 순환이 돼야 마을이 돌아간다. 청년들이 정착해서 사는 것이 마을에 필요하다.” 지리산 마을에 형성된 다양한 커뮤니티의 사회·경제적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이음’ 조아신 기획이사의 말이다.

산내면에 사는 청년들은 12~13명 정도다. 20년 전 귀촌한 이들의 자녀도 있고 새로 온 이도 있다. 이 청년들이 산내면에 잘 정책해 살 수 있도록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을 조성해 지원하자는 제안이 지난해 9월 처음으로 나왔다. 제안자는 박찬은(48)씨다. 그는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12년 전 아내와 귀농했다. 지금은 쌀, 들깨, 채소 등 여러 작물을 키우며 살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가장 축복받은 세대로 불립니다. 살면서 소비도 참 많이 했어요. 그게 사실은 다음 세대의 몫을 빌려쓴 게 아닌가요? 우리가 얻은 것을 다시 젊은 세대에 투자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마을신문에 이 생각을 공개했다. “‘오가작통’ 같은 것은 어떨까? 산내에서 우리 손으로 기본소득을 해보자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말 그대로 5가구가 한 통(팀)이 되어 소득의 10%를 모아, 청년 1명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것. 십시일반. 그 돈으로 산내에서 살며 활동해보라는 것. 약간의 물질적 도움으로 이것저것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시도해보라는 것. 국가나 지자체, 기업이 할 일이 아니냐고? 우리가 하지 않으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할 때쯤이면 우리가 그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제41호)

“우리가 얻은 걸 다시 젊은 세대에게”

이 생각을 협동조합 이음이 이어받아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제안서를 돌렸다. 그리고 주민 5명이 600만원을 모아 하진용씨에게 매월 50만원씩 1년 동안 기본소득을 주기로 했다. 대상자는 기본소득을 받고 싶다고 신청한 청년들 가운데 제비뽑기로 뽑았다. 하씨는 지난해 12월14일 지리산청년활력기금의 첫 주인공으로 뽑혔다. 얼마 전엔 두 번째 주인공이 나왔다. 주민 7명이 기금을 출연해 두 번째 청년활동가를 2월부터 지원한다.

이들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에는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지 않다. 단 하나, 기본소득을 받은 이가 자신이 하는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도록 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커뮤니티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다. 1월21일 하진용씨의 첫 번째 글이 올라왔다.

“나는 언젠가부터 ‘안정적인 임금생활자’가 되긴 글렀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어쩌다 임금생활자가 되더라도 ‘안정적’이라는 수사를 붙이기에 적합한 일자리를 가질 확률이 높진 않을 거 같다. 남들은 다 있는 ‘영혼 없이 묵묵히 버티는 능력’이 없는 탓도 있지만, 이젠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안정적인 임금생활자’를 바랄 수 있는 시대가 더는 아니기도 하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걷는 방향은 정반대이니까. 그래서 조금은 불안정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다행히도 이런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많은 이들, 그들로부터 둘러싸인 호의의 경제가 있기에 되돌아가지 않고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내딛고 있다.”

기본소득은 하씨에게 산내면에 정착할 씨앗자금이다. “기본소득은 국가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마을에서 같이 산다는 이유로 윗세대가 해주는 게 아니라요. 1년 뒤에는 돈이 끊기니까 그 뒤를 준비해야죠. 일단은 이 돈을 생활비로 쓸 계획이에요. 돈을 받는 1년 동안 어떻게 자립 기반을 닦을지 생각해야죠.”

마을 이웃이 아니라 국가가, 1년 동안이 아니라 평생, 이들에게 매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이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제는 국가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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