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계사까지 뻗친 뉴라이트 교과서

중학교 역사 국정교과서와 기존 검정교과서 9종 비교 분석
등록 2016-12-09 06:03 수정 2020-05-02 19:28

11월28일 국정 역사 교과서가 공개된 뒤 ‘교과서 사유화’ ‘역사 사유화’ 논란이 거세다. 교과서 전체 분량이 기존 검정교과서에 견줘 5분의 1가량 줄었는데도 박정희 정권에 할애된 분량은 오히려 늘어 기존의 두 배에 달한다. 공교육의 역사 교과서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바치는 ‘효도 교과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정한 국정 역사 교과서 적용 시점인 2017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신 100주년’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마저 국익이 아닌 사익을 앞세운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알린 교육부 보도자료 제목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대한민국 교과서’였다. 하지만 효도의 결과는 한국사에 대한 우편향적 해석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사 서술에서도 박정희 미화에 앞장서온 뉴라이트 학자들의 사관이 확인되는 등 ‘우편향’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우편향’ 사례를 분석했다. 이번에 공개된 역사 교과서는 △중학교 역사1 △중학교 역사2 △고등학교 한국사 등 모두 3권인데, 이 가운데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해 다뤘다. 그렇다면 세계사에 대한 국정 역사 교과서의 편향은 없을까. 현재 중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검정교과서 9종과 비교 분석했다.
국정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나폴레옹을 다룬 방식은 여러모로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방식과 유사하다. 기존 검정교과서 9종에 견줘 국정교과서의 나폴레옹 서술 분량이 두 배가량 늘었고, 나폴레옹 전쟁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서술이 사라졌다.
박정희가 사랑한 나폴레옹을 미화한 교과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라는 같은 제목을 가졌지만 전혀 상반된 모습을 그린 두 작품으로 나폴레옹을 보는 두 시각을 균형 있게 서술한 신사고 출판사의 검정교과서(왼쪽)에 견줘,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전쟁의 성과를 강조한 국정교과서의 내용 구성이 대조적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육부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라는 같은 제목을 가졌지만 전혀 상반된 모습을 그린 두 작품으로 나폴레옹을 보는 두 시각을 균형 있게 서술한 신사고 출판사의 검정교과서(왼쪽)에 견줘,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전쟁의 성과를 강조한 국정교과서의 내용 구성이 대조적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육부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과 함께 다뤄지는데, 기존 검정교과서는 전체 4쪽 가운데 프랑스혁명에 3쪽, 나폴레옹 전쟁에 1쪽을 할애한다. 하지만 국정교과서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단 2쪽에 걸쳐 다루면서 1쪽 넘는 분량을 나폴레옹 내용으로 채웠다. 국정교과서의 세계사 분량이 350쪽 가운데 94쪽(27%)으로, 504쪽 가운데 202쪽(40%)을 차지하던 기존 검정교과서에 견줘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폴레옹 관련 분량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특히 나폴레옹의 초상화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자크 루이 다비드의 과 함께 나폴레옹이 전쟁을 통해 유럽 각국을 정복한 결과를 보여주는 대형 지도가 ‘나폴레옹의 유럽 제패’라는 제목으로 제시돼 있다. 분량이 비교적 넉넉했던 기존 검정교과서 9종의 경우 나폴레옹 유럽 정복 지도가 없거나 있어도 크기가 작다.

나폴레옹에 대한 ‘균형 잡힌’ 서술도 보이지 않는다. 검정교과서는 대체로 나폴레옹이 으로 근대적 법률제도를 마련하고, 학교를 세워 국민을 교육하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측면과 함께 나폴레옹 정복 전쟁 과정에서의 점령지 국민 학살 등을 함께 다룬다. 등 당시 나폴레옹을 우상시했던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작품과 함께 당시 에스파냐 화가 고야의 작품 을 제시하는 식이다.

어느 검정교과서는 아예 ‘나폴레옹을 보는 두 가지 시각’이라는 별도 항목에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과 함께 들라로슈가 그린 동명의 나폴레옹 초상화를 대비해 “동일한 인물이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고 적었다.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안내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는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점령지 내부의 저항이나 반발 등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나폴레옹 정복 전쟁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누락되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에 전파된 민족주의와 관련해 “나폴레옹의 유럽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확산되었다”는 구체적 서술도 사라졌다. 국정교과서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나폴레옹에 대한 애착은 유명하다. 조갑제씨가 쓴 를 보면 “박정희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나폴레옹 전기였다” “박정희는 여러 사람들이 쓴 나폴레옹 전기를 죄다 읽으려고 했다”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생들은 박정희가 들고 있던 책은 한두 번인가 히틀러의 인가 인가를 빼고는 번번이 였다”는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폴레옹을 우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여럿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초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 시절 하숙집과 학교 숙직실에까지 걸었다고 한다.

박정희 독재 미화하듯 전체주의 정당화
미래엔 출판사의 검정교과서(왼쪽)가 파시즘의 출현 배경을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을 틈타 파시즘이 출현하였다”고 기술한 데 비해, “사람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줄 강력한 정권의 출현을 희망하였다”는 국정교과서 기술은 파시즘 출현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육부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래엔 출판사의 검정교과서(왼쪽)가 파시즘의 출현 배경을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을 틈타 파시즘이 출현하였다”고 기술한 데 비해, “사람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줄 강력한 정권의 출현을 희망하였다”는 국정교과서 기술은 파시즘 출현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육부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 산업혁명이 초래한 노동 착취, 빈부 격차 등의 문제나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갈등 문제도 빠졌다. 특히 노동 착취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보여주는 ‘아동노동’은 당시 영국 의회가 별도 위원회까지 설치해 해결에 나설 정도로 중요하게 다뤘던 부분이지만, 국정교과서에는 언급조차 없다. 기존 검정교과서는 아동노동 문제와 관련해 ‘영국 의회 아동노동 실태조사 위원회 면담 자료’ 등을 제시하며 이들이 “호황기에 새벽 3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19시간 동안 일했다” “감독이 허리띠로 때렸다” 등의 증언을 싣고 있다.

프랑스사를 전공한 홍용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는 “프랑스 2월 혁명 배경에 대해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등 인권이나 자유 확대가 아니라 산업 발전이 곧 역사의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서술한 대목이 많다. 한국 역사의 발전은 1970년대 산업화 덕이고, 박정희가 한국 역사의 발전을 이뤘다는 뉴라이트 시각이 엿보이는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2011년 교육과정 개발 연구진이 민주주의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데 항의해 사퇴하는 등 역사학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이번 국정교과서의 세계사 서술에까지 등장했다.

국정교과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확산되었다”고 적었다. 기존 검정교과서 9종은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동유럽과 북유럽의 여러 나라가 독립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고 적는 등 당시 왕이 통치하던 체제 대신 도입된 공화제를 ‘민주주의’로 설명했다.

이에 대해 두산동아의 검정교과서 세계사 부분을 집필한 남한호 경북 의흥중 교사는 “난센스다. 그 시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확대를 한국의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등치해버렸다. 세계의 어느 역사학자가 그 시기를 자유민주주의로 설명하느냐”라고 말했다.

국정교과서 세계사 부분 집필자 가운데 서양사 전공자는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허승일 서울대 명예교수, 정경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3명이다.

이주영 명예교수는 한국사 좌편향 논란의 본산인 대표적 뉴라이트 단체 한국현대사학회 회원이다. 서양사 전공이지만 등 한국 현대사 분야의 책도 펴낸 바 있다. 정경희 교수 역시 서양사 전공이지만 검정교과서 좌편향 시비를 다룬 책 를 쓰는 등 한국 현대사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보인다. 허승일 명예교수는 서양사 가운데서도 로마사 권위자로 우편향된 활동이나 발언은 찾기 어렵다.

그 밖에도 뉴라이트 입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세계사 서술 대목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결과를 서술하면서 국정교과서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 △일본군의 중국인 대량 학살 사건인 난징 대학살과 함께 △소련군이 폴란드군 장교와 사회지도층을 살해한 카틴숲 학살 사건을 함께 언급했다. 카틴숲 학살 사건이 교과서에 등장한 것은 이번 국정교과서가 처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대량학살 사건을 다룬 두산동아 출판사의 검정교과서(왼쪽)가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한국에도 무수한 피해자가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함께 제시한 반면 국정교과서에는 두 사건에다 소련군이 자행한 카틴숲 학살 사건을 언급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육부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대량학살 사건을 다룬 두산동아 출판사의 검정교과서(왼쪽)가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한국에도 무수한 피해자가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함께 제시한 반면 국정교과서에는 두 사건에다 소련군이 자행한 카틴숲 학살 사건을 언급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육부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국정교과서의 기반이 된 국가교육과정 개발연구에 참여했던 한 서양사 전공 교수는 “히틀러의 학살뿐만 아니라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권에서 일어난 학살도 똑같이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아마 집필 과정에서 그런 시각이 반영돼 카틴숲 학살 사건이 새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우파적 시각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경희 영산대 교수는 2015년 인터뷰에서 “검정교과서가 양민 학살 사건으로 기술한 신천 학살은 북한이 미군이 저지른 만행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검정교과서는 북한이 남한 우익 인사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는 결코 ‘학살’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즘을 정당화하는 우파 역사학자들과 유사한 시각이다. 강성호 한국서양사학회장(순천대 교수)은 “한국도 친일 문제로 논란이 있는데, 독일에서도 ‘역사가 논쟁’이란 게 있었다. 이때 독일 우파들이 히틀러를 정당화하면서 당시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등장했고 그러다보니 나치즘의 등장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죽인 것도 나쁘지만 사회주의권에서도 그만큼 학살이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용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전쟁 중에 비무장 포로를 사살한 전쟁범죄인 것은 맞다. 다만 민간인 학살을 다루는 부분에서 폴란드 장교 사살 사건을 집어넣은 게 적절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군인 사살 사건은 이것 말고도 무척 많기 때문에 (검정교과서에서는)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이뤄진 홀로코스트와 난징 대학살을 주로 가르쳐왔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미화하듯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듯한 서술도 있다. 국정교과서는 전체주의 대두와 관련해 “대공황을 전후하여 사회 혼란이 가중되자 사람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줄 강력한 정권의 출현을 희망하였다”며 마치 전체주의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등장한 체제인 것으로 기술했다. 기존 검정교과서들이 전체주의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가능했던 배경에 선동을 통한 여론 조작, 언론 통제, 일당 독재 체제 등의 이면이 있었다고 서술한 것과는 상반된다.

학생들 교과서로 ‘빵점’

우편향 말고도 수많은 사실 오류,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참고자료나 학습활동 제시 부족 등도 문제로 지적된다. 세계사 분량이 기존 검정교과서에 견줘 3분의 1 정도 줄면서 지면의 효율적 사용이 중요했지만, 곳곳에 역사적으로 무의미한 사건이 언급되고 학생들의 흥미를 돋워야 하는 시각자료 역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등 분량 낭비가 심각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양상을 보여준 시각자료는 OHP(투명) 필름까지 동원했지만, 기존 검정교과서의 설명과 비교할 때 참호전이 어떤 측면에서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전술이었는지, 제1차 세계대전의 장기화와 참호전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은 전혀 설명돼 있지 않다.

프랑스혁명과 관련해서도 검정교과서 9종 모두 프랑스혁명의 기본 정신을 담은 ‘인권선언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대한 참고 자료를 실었지만, 국정교과서에선 빠졌다. 대신 프랑스 국가 가 군대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담은 참고 자료가 제시돼 있다.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은 이번 국정교과서로는 정상적인 세계사 교육이 불가능하다며 폐기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강성호 한국서양사학회장(순천대 교수)은 “학회가 이번 국정교과서 분석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내용이 생각보다 대단히 심각하다는 데 학자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는 세계사 교육이 없고 고등학교는 선택과목이라, 사실상 한국 국민이 세계사를 접할 기회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세계사 부분이 전부다. 세계화·지구화 시대에 대비하는 공교육의 세계사 교육으로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수정·보완으로는 안 되고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