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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종료를 잠금해제하다

9월 해산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명맥 이어가려 ‘조사관 모임’ 꾸린 26명의 전직 조사관
등록 2016-11-29 13:04 수정 2020-05-02 19:28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세월호 7시간’은 상징이다. 2014년 4월16일, 304명의 생명이 사라지던 그 순간 박근혜 대통령의 부재를 의미하는 말이다. 동시에 세월호 사고 구조와 진상조사 과정에서 국가의 공백을 상징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비어 있는 시간을 밝히려던 시도는 무참히 ‘진압’됐다. 근거지를 잃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희생자다. 정부는 서울 저동 특조위 사무실을 11월11일 폐쇄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거대한 공백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맨몸으로 메꿔보겠다는 이들이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 모임’(조사관 모임)을 만들었다. 특조위에서 활동했던 조사관 26명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이어나가겠다고 모인 것이다.

11월23일 오전 조사관 모임이 새로 둥지를 튼 서울 서교동 ‘한국YMCA전국연맹’(YMCA) 건물 4층을 찾았다. 조사관 모임이 이뤄지는 곳은 원래 이충재 YMCA 사무총장의 방이었다. 특조위가 강제 종료당한 뒤 이 사무총장은 조사관들에게 자신의 방을 사무실로 내줬다. 그곳에서 김성훈·김경민 조사관을 만났다.

5개월째 월급·활동비도 못 받고 있지만조사관 모임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김성훈 가장 큰 이유는 특조위가 강제 종료당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조사가 본격화한 것은 2016년 1월 정도다. 그전까지 내부 정비를 해야 했고 인력도 상당히 부족했다. 그러다 6월 말에 특조위가 강제 종료됐다. 조사 내용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계획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조사관들끼리 논의해서 두 가지를 합의했다. 하나는 특조위 조사 결과를 종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상 규명이 끝나지 않았으니 이후 새로운 조사 기구가 꾸려질 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일단 조사관 모임이 출발했다.

현실적 어려움은 뭔가.

김경민 조사관들이 7월부터 월급은 물론 활동비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5개월 계속 되다보니 개인 생활이 어려워 조사관 모임의 취지에 동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 또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실질적 조사를 수행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특조위 활동이 종료되면서 우리가 가진 자료도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미 공개된 자료와 기억만으로 조사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실질적 조사가 힘든 상황에서 조사관 모임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경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이후에라도 새로운 국가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과거 특조위에서 일한 경험을 전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 만들어지는 국가기구가 특조위와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고 밑바닥에서 시작하게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특조위 해산 원인은 ‘대통령의 7시간’ 조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이던 김경민(왼쪽)씨와 김성훈씨가 11월23일 ‘조사관 모임’ 둥지가 마련된 서울 서교동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은 모임을 꾸린 이유에 대해 망설임 없이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고 했다. 김진수 기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이던 김경민(왼쪽)씨와 김성훈씨가 11월23일 ‘조사관 모임’ 둥지가 마련된 서울 서교동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은 모임을 꾸린 이유에 대해 망설임 없이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고 했다. 김진수 기자

특조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김성훈 강제수사권이 없어서 힘들었다. 해양경찰청 본청이 있던 인천에 TRS(주파수공용통신) 녹취록을 받으러 갔다. 해경이 자료를 못 내놓겠다고 해서 조사관들이 한 달 정도 농성하다시피 버텼다. 내 스스로도 농성자인지 조사관인지 구분이 안 됐다.

해경뿐만 아니라 청와대까지 자료 협조를 전혀 안 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은 여러 부처를 상대로 방대한 조사가 필요한 일이다. 조사관도 충원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비협조적으로 나와 조사 활동이 힘들었다. 특히 강제수사권을 가진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당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의 휴대전화조차 확보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수사권이 없는 특조위의 활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다시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이슈가 되고 있다.

김경민 사실 대통령의 7시간 의혹에 대해 특조위가 조사하겠다고 나선 순간부터 (여당 등의 극심한 반발로 인해) 특조위가 무력화된 것이다. 참사 당일 해경부터 청와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당연히 규명할 필요가 있고 조사관 모임에서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하던 상황이었는데 최순실씨와 연관되면서 갑자기 부각됐다.

김성훈 지금 같은 여론이 있는 상황에서 특조위가 해산되지 않았다면 7시간 의혹을 조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특조위 3차 청문회 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을 증인으로 요청했는데 안 나왔다. 현 국면에선 나오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쉽다.

내년에 세월호 선체 인양 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김성훈 선체를 인양해도 조사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늦어도 내년 봄에는 인양할 텐데 특조위가 없으면 국회가 선체 조사를 할 것 같다. 그런데 내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으니까 국회에서 제대로 조사될지 걱정된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인양 시점에는 특조위가 있어야 한다. 국회가 지금이라도 진상 규명을 위한 새로운 국가기구를 빠르게 꾸리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

수사권은 새로운 특조위에 필수새로운 특조위가 꾸려지면 꼭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김경민 기존 특조위 형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수사권과 특조위 위원장의 권한 등을 확실히 보장해줘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부처의 방해를 이겨낼 수 없다.

김성훈 과거 수준으로 특조위가 구성되면 희망이 별로 없다. 진상 규명 활동에 세금이 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투자 개념으로 봐도 특조위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새 특조위가 내놓는 결과물에 따라 이후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국가운영시스템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의 결과를 내려면 특조위 활동에 전폭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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