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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장관 조건은 ‘국정화 추진’

교육계 정통한 교수 “청와대는 후보가 조건 수락 안 하면 계속 다른 후보를 찾았다”

박근혜 정부가 공들인 국정화도 국정 농단 게이트로 백지화될까
등록 2016-11-29 10:24 수정 2020-05-02 19:28
지난해 11월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7차 청소년 거리행동’에 참석한 학생이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해 11월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7차 청소년 거리행동’에 참석한 학생이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박근혜 정부가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인선할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라는 두 가지 조건을 걸고 수락 여부에 따라 내정자를 결정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수백만 교육 주체의 명운이 걸린 교육정책의 주무 장관을 발탁하는 잣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정권 입맛에 맞는 정책 추진 여부였던 것이다. 새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된 국정 역사 교과서는 다른 새 교과서가 2018년부터 적용되는 것과 달리 2017년부터 적용된다. 2017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 출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2014년부터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교육부의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이 연구되고, 국정 찬성 결론이 나올 때까지 비슷한 연구가 중복 수행된 정황도 확인됐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관료들이 “우리는 힘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하는 등 청와대가 국정화를 주도하면서 역사교육 전문가와 교육부 관료들의 반대 의견을 묵살한 일도 새롭게 드러났다.

교육부 연구·공청회는 눈속임

교육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ㄱ교수는 과의 통화에서 “교육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김명수 한국교원대 교수가 청문회에 대비하면서 자문해달라고 해 만난 적이 있다. 어떻게 장관 후보가 됐느냐고 물으니 ‘위에서 계속 사람들에게 물어보다 자기한테 순서가 와서 갑자기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ㄱ교수는 “당시 청와대가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고 했다. 조건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겠느냐, 전교조 불법화를 하겠느냐’라고 했다. ‘두 가지를 추진한다고 할 때만 후보로 내정하고, 아니면 계속 (다른 후보로) 내려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명수 교수는 2014년 6월13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됐지만 논문 표절 등이 문제가 돼 내정 한 달 만인 7월15일 대통령이 지명 철회했다. 2014년 6월은 그해 2월 교육부 업무보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이번 기회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라”)에 따라 교육부의 정책연구가 수행되던 시점이었다. ㄱ 교수의 증언대로라면, 당시 정부는 이미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전교조 불법화를 추진하기로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이를 추진할 장관 후보자를 물색했고, 교육부 연구나 공청회 등 법률이 정한 행정 절차는 요식행위로 간주했던 것이다.

은 이에 대한 김명수 교수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회신이 없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및 전교조 불법화를 조건으로 내건 교육부 장관 물색 작업은 이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명수 교수를 지명 철회하면서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의원을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새로 내정했다. 당시 황 장관도 이같은 조건을 수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황 전 장관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인 2013년 10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역사 교과서에 대한 책임은 정권이 아닌 국가가 직접 떠맡아 올바른 내용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국정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었다. 그는 2014년 8월7일 교육부 장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론 분열을 막으려면 국가가 책임지고 한 가지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2014년 8월부터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사실상 새 교육부 장관의 취임은 국정화를 위한 포석이었던 셈이다.

국정화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2015년 7월31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방미 중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동포 환영회에 참석해 “진보좌파 세력이 준동하면서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현재 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김무성 대표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불과 일주일 뒤인 2015년 8월5일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교실에서부터 역사에 의해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며 “필요하면 국정화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는 등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시동을 걸었다.

국정화에도 아른거리는 김기춘 전 실장

박근혜 정부의 교육 분야 요직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인물들이 차지했다. 정치인들의 교육 분야 정책 자문을 여러 차례 한 ㄴ교수는 “박근혜 정부 교육 인사는 이른바 ‘곽병선 라인’에서 했다. 김명수 교수,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도 곽병선 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추천했다”고 말했다. 곽 전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교육과학분과 간사를 맡은 바 있다.

곽 이사장은 2015년 10월22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102인에 이름을 올리는 등 국정교과서 찬성론자다.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 역시 국정화 지지 102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사범대 출신이다.

곽 이사장 뒤에 서울대 사범대 동문인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있으며, 정 전 총리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인연으로 곽 이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교육 분야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원식 전 총리는 노태우 정부에서 지금의 교육부 장관 격인 문화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그가 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1989년, 장관 자문기구로 설치한 중앙교육심의회 교육이념분과 좌장이 곽 이사장(당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과정연구본부장)이다. 그리고 1991년 5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시 정원식 장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할 때, 김기춘은 법무부 장관이 됐다. 정원식-김기춘-곽병선의 삼각 고리가 노태우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셈이다.

청와대가 교육부를 동원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물밑 작업을 벌인 정황도 확인됐다.

교과서를 국정 발행할지 검정 발행할지는 대개 교육부 정책연구(교과용도서 구분고시 방안 연구)의 결론에 따른다. 박근혜 정부가 개발한 새 국가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들의 국·검정 여부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은 모두 4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인 최병택 공주교대 교수는 과 인터뷰에서 “당시 정부가 (연구 보고서를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에 필요한 근거를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연구 결과 ‘국정화 찬성’ 결론이 나오지 않자, 기존 연구를 폐기하고 여론조사 형식을 빌린 정책연구가 중복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 “다음엔 찬성론자로 배치하자”
지난해 10월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국정화 대비 비밀 TF’ 운영 논란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 이틀 전 야당 의원들은 서울 대학로 국립국제교육원에서 교육부 공무원들이 ‘비밀 TF’를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해 10월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국정화 대비 비밀 TF’ 운영 논란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 이틀 전 야당 의원들은 서울 대학로 국립국제교육원에서 교육부 공무원들이 ‘비밀 TF’를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우선 교육부는 사전에 정책연구진 선정 단계부터 ‘국정화 찬성론자’를 물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나는 2011년 역사 교육과정 개정 연구 당시 연구진에 참여했다가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 민주주의’로 개정하려는 교육부 쪽의 움직임에 항의하는 뜻으로 연구진에서 사퇴한 적이 있다. 교육부가 이런 나의 이력을 부담스럽게 여긴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연구진에 선정된 것에 대해선 “교육부가 국정화를 언급이라도 할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나는 국정화를 주장하는 쪽을 우선 경청하고, 그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정리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교육부로선 국정화에 찬성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 논리를 들어보자는 입장의 연구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최 교수는 “교육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한 적은 없다. 다만 실무 관료를 통해 우려가 전달된 적은 있다.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전해들은 분위기로는 ‘연구 보고서 내용이 너무 검정제를 긍정하는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국정제에 좋은 점은 혹시 없느냐’ 정도였다. 국정 전환할 때 필요한 근거를 조금이라도 찾으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를 비롯한 정책연구진은 2014년 8월 연구 보고서에서 ‘역사 교과서 검정제 존치’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교육부는 ‘국정화 찬성론자’를 관련 공청회 참석자로 섭외했다. 최 교수는 “구분고시 연구를 2014년 8월께 마치고 해당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8월과 9월 두 차례 공청회를 열었는데, 첫 번째 공청회에선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분이 많았다. 그러자 두 번째는 교육부 쪽에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분들로 배치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역사학이나 역사교육 지식을 갖춘 분들을 모셔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국정화에 찬성하는 분들 가운데 공청회에 모실 정도로 학문적 업적을 남긴 분들을 찾기 어려워서, 결국 교육부가 직접 나서 생소한 단체의 대표들을 패널로 모셨다”는 것이다.

‘검정제 존치’ 결론에 또다시 연구 의뢰

국·검정제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 공식 연구가 검정제 존치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교육부는 정책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라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교과용 도서 구분고시’를 하지 않았다. 최 교수는 “우리가 연구를 마친 게 2015년 8월께인데, 그로부터 1년 동안 구분고시가 되지 않았다. 원래 구분고시 연구 보고서가 나오면 두세 달 사이에 보고서를 인용해서 구분고시가 되는 것이 관례였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구분고시가 있고 나서 교과서 집필기준 연구에 들어가는데, 구분고시가 있기 전에 집필기준 연구가 시작됐다. 이 역시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이었다. 구분고시 연구를 마친 뒤 나는 집필기준안 연구에도 참여했다. 결국 우리가 2015년 9월 집필기준안 연구를 마칠 때까지 구분고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정화’라는 정권 입맛에 맞는 연구 보고서가 나오지 않자 구분고시를 미룬 것이다.

정책연구진이 ‘검정제 존치’라는 결론을 내리자 국정화 명분으로 쓴 또 다른 정책연구를 교육부가 중복 수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교육기관 관계자는 “국정화의 근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던 연구에서 그 근거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자,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비슷한 연구를 다시 의뢰한 것으로 안다. 그 연구에선 국정화 찬성 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지목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는 ‘역사 교과서 관련 여론조사 및 분석’이라는 정책연구다. 2015년 4월 발간된 연구 보고서는 평가원장이 서문에서 밝혔듯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한국사 교과서 발행 방식을 모색”하고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고시를 위한 한국사 교과서의 위치를 탐색”한다는 사실상 국정이냐 검정이냐를 결정하는 구분고시 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연구의 뼈대는 일반인(2천 명), 학부모(1707명), 교사(2911명)를 대상으로 역사 교과서 발행 방식으로 국정이 좋으냐 검정이 좋으냐는 여론조사를 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해당 연구의 착수 배경과 관련해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 관련 여론조사 및 대국민 인식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보면 여론조사가 이뤄진 시점은 2014년 9월24일~10월1일로, 최 교수 등 기존 정책연구진이 2015년 8월 ‘검정제 존치’라는 결론을 내린 연구 보고서가 나온 직후였다. 국정화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역사교육 전문가를 비롯한 교육계의 국정화 반대가 강하자, 국정화 찬반 입장을 일반인·학부모로 확대해 조사한 것이다. 이 여론조사에서 일반인(국정 52.4%, 검정 41.1%)과 학부모(국정 56.2%, 검정 42.5%)의 경우, 국정을 더 많이 선택하는 결과가 나왔다. 교사(국정 41.5%, 검정 56.3%)만 검정이 높게 나왔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평가원에서도 국정화 찬성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 연구자들이 눈물 나게 노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육부 차원의 결정 아니다”

그동안 국정화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의중이 강하게 실린 정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지낸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학자들을 만난 교육부 관료들이 ‘정치적 결정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청와대가 결정하고 교육부는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 역시 “국정화는 교육부 차원에서 결정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정화에 찬성했던 황우여 전 장관도 브리핑을 받아보고서 국정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전해들었다. 연구 과정에서 교육부의 실무 관료들이 (국정화 여부와 관련해) 전혀 책임 있는 말을 못했다. ‘우리도 잘 모르겠다’ ‘우리도 힘이 없다’ 이렇게 얘기했다.”

11월25일 교육부가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를 학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국·검정 혼용 방안’을 검토하며 사실상 ‘국정화 폐기’ 입장으로 선회했다는 보도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도, 교육부 내부 실무 관료들 중심으로 국정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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