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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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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이라는 혁신 실험실

사회적 기업 ‘○○○간’과 프로젝트팀 ‘동대문 옥상낙원’, 동대문·창신동에서 공동체 재활과 사회적 경제 새싹 틔워
등록 2016-04-28 06:08 수정 2020-05-02 19:28
기획  연재


마을에서  길을  찾는  청년


같이 살아요 우리
동대문이라는 혁신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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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 ‘○○○간’(공공공간)은 인근 봉제공장과의 협업을 통해 소외된 지역을 재생하려는 사회적 기업이다(위쪽). 동대문 신발종합상가 B동 옥상에서 버려진 냉장고, 신발, 비닐하우스에 식물을 키우는 등 ‘즐거운 실험’을 벌이는 ‘동대문 옥상낙원’(DRP)팀(아래쪽). 위쪽부터 박승화 기자, 김진수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 ‘○○○간’(공공공간)은 인근 봉제공장과의 협업을 통해 소외된 지역을 재생하려는 사회적 기업이다(위쪽). 동대문 신발종합상가 B동 옥상에서 버려진 냉장고, 신발, 비닐하우스에 식물을 키우는 등 ‘즐거운 실험’을 벌이는 ‘동대문 옥상낙원’(DRP)팀(아래쪽). 위쪽부터 박승화 기자, 김진수 기자

출발지는 같았다.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북쪽 방향으로 15분여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랐다. 드르륵 드르륵.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마다 뿌연 미닫이 문틈 사이로 ‘미싱’ 소리가 시끄럽다. 원단을 나르는 오토바이들의 질주를 피해 가파른 고개 꼭대기에 다다를 때쯤이면, 창신동 봉제마을에서 단연 눈에 띄는 ‘감각적인’ 공간에 당도한다. 사회적 기업 ‘○○○간’ 사무실이다.

동대문에도 이런 곳이 숨어 있었나 싶은,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이번엔 7번 출구로 나와 남동쪽 방향으로 가야 한다. 청계천 바로 앞에 위치한 동대문 신발도매상가 B동 옥상이 최종 목적지다. 이곳 역시 가는 길이 만만찮다. 50년 넘은 낡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신발상자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는 계단은 가파르다. 6층 옥탑방이 ‘동대문 옥상낙원’(DRP·Dongdaemun Rooftop Paradise)이라는 프로젝트팀의 아지트다. 옥상에는 버려진 냉장고와 신발을 화분 삼아 푸른 싹이 자라고 꿀벌이 길러지고 가끔씩 파티를 하러 사람들이 모인다.

비운 곳에 채운 공유·공감·공생

출발점은 같았다. ○○○간과 DRP는 ‘한때’ 봉제산업의 중심이던 동대문 또는 창신동이라는 동네를 새롭게 디자인해보려는 청년들이 모여 있다. 예술가집단이라는 점도 닮았다. 2011년 ○○○간을 처음 만든 홍성재(33)·신윤예(30) 대표, 2014년 옥상낙원을 일군 이지연(26)·김현승(36)씨는 모두 미술 전공자다. 이들이 처음 마주한 도전 과제도 같았다. ‘쓰레기’.

홍성재 대표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하며 처음 창신동과 인연을 쌓았다. 저임금, 고령화, 쇠락하는 봉제산업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러면서 “예술가가 아니라 문제해결가가 되고 싶어졌다”. 주민들에게 ‘창신동 하면 무슨 생각이 나냐’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쓰레기’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창신동은 2~3명의 봉제노동자가 일하는 작은 하청공장이 어림잡아 900곳에 이른다. 많이 일할수록 버려지는 자투리 천이 많이 나온다. 비닐이 터질 듯 빵빵하게 배가 부른 쓰레기봉투가 동네에 넘쳐났다. 홍 대표는 쓰레기에 불과한 자투리 천을 넣어 쿠션을 만들고, 자투리 천이 나오지 않도록 디자인한 ‘제로 웨이스트’ 셔츠 등을 기획했다. 생산은 ○○○간의 ‘이웃’인 봉제공장들이 맡았다. ‘메이드 인 창신동’이란 지역 브랜드 꼬리표를 단 제품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간은 창신동에 파릇파릇한 기운도 불어넣었다. ○○○간이란 이름의 ○은 ‘비움’을 뜻한다. ‘공공공간’이라고 읽는데, 공유·공감·공생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도매시장에서 알음알음 소개받아 일하는 다단계 하청 구조 탓에 변변한 회사 이름도, 문패도 없던 이웃 봉제공장들한테 간판을 선물하게 된 것도 비움을 채우는 일환이다. ○○○간은 지역 청소년들과 3박4일간 머리를 맞대어 공장마다 특화된 간판을 만들어주는 지역재생사업을 벌였다. 홍 대표는 창신동 마을공동체 모임인 ‘마을넷’과 작은 마을 도서관(‘뭐든지 도서관’)에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DRP 이지연씨도 ‘쓰레기’ 처리엔 일가견이 있다. 2014년 2월 동대문 신발도매상가 옥탑방에 처음 입주했을 때, 작은 산을 이룰 만큼 많은 쓰레기가 옥상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세 35만원짜리 옥탑방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나서 석 달 내내 청소만 했다. 건물 4~5층에 사는 주민들이 그동안 옥상에 버려두고 간 살림살이였다. 무려 18t의 쓰레기를 치웠다.

쓰레기를 치우니 새 세상이 열렸다. 10평 사무실만이 아니라 300평 옥상이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등장했다. 버려진 냉장고 10여 개를 발견하고는 아래층 이웃들 현관문 앞에 메모지를 붙였다. “○월○일, 옥상에서 같이 밥 먹어요.” 냉장고를 비워 흙을 넣고 이웃과 함께 꽃, 상추, 파를 심었다. 2~3층 신발도매상점에서 버려진 신발을 주워다가 씨앗을 심었다. 옥상은 동대문 주민·상인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이지연씨와 김현승씨는 서울시 청년허브가 동대문 지역의 사회경제적 가치와 청년 일자리 사이에 접점을 찾고자 진행한 ‘동대문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동대문이라는 지역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DRP는 그때 함께했던 이들 가운데 3명이 남아서 새롭게 결성한 모임이다.

봉제노동자들의 셀프 제작

왜 하필 동대문, 창신동이었을까? “동대문시장에선 하루라도 게으르게 살면 생존할 수 없어요. 낡은 산업 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한 동네죠. 그런 도시 안에서 ‘낙원’을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하지? 이런 질문을 안고 옥상에 올라왔어요.”(이지연씨) 그래서 DRP는 지난 2년간 여러 실험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동대문’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지역 사람들을 모아 7차례 집담회를 열었다. 도매시장에서 안 팔리는 옷을 한 벌당 1천~2천원씩 100벌을 사서 총을 쏘아 구멍을 만든 다음 봉제노동자들한테 “하루 11만원 일급을 줄 테니 마음대로 구멍을 누벼달라”고 부탁해 예술작품도 만들었다. 30년 넘게 ‘주문생산’에만 익숙하던 노동자들은 난생처음 해보는 ‘셀프 제작’을 즐거워했다.

이씨는 “동대문은 ○○○라는 사회적 제안을,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도 DRP는 동대문 봉제산업 종사자들과 일반 소비자가 직접 만나 함께 옷을 리폼하는 ‘선데이 팩토리’ 등 몇 가지 즐거운 실험을 계획 중이다.

홍성재 대표는 올해 ‘제품’에 좀더 집중하려고 한다. 창신동이라는 지역의 재생을 위해선 ○○○간이 더 많은 일감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은 창신동 봉제공장 11곳과 파트너 관계다. 최근 카카오프렌즈 망토담요를 2천 개 넘게 사전 주문을 받아 봉제공장에 제작을 맡기는 식으로 정보기술(IT) 플랫폼과 3자 협업을 모색했고, 6월엔 새로운 제품이 줄줄이 나온다.

“디자인 교육이나 공공디자인 사업 등은 돈을 많이 벌진 몰라도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없더라. 사회적 가치를 따져보면 제품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올 초 수억원대 프로젝트들을 거절했다. (웃음) 쇠락하는 산업단지에 벽화를 그려놓고 ‘이제부터 예술가 마을’이라고 선언하는 식의 사회 변화를 끌어내고 싶진 않다. 예술가들이 지역 산업에 기반한 디자인 제품을 내놓고 지역에 이익금을 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드는 게 진정한 사회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가치 담긴 제품에 주력해

출발점은 비슷했지만 ○○○간과 DRP가 지금 가는 길, 앞으로 가려는 길은 조금 다르다. 그래도 도착지는 다시 엇비슷해지지 않을까. 동대문과 창신동, 사회 혁신이라는 나침반을 따라서 ‘따로 또 같이’ 걸어가고 있으니.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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