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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청년 객원기자들이 만난 이원재 희망제작소장… “작은 기회들을 만들어 실천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등록 2016-03-10 08:13 수정 2020-05-02 19:28
청년 실업 100만 명 시대, 그중 두 명의 청년 김재희·김가윤 객원기자가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을 만나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정용일 기자

청년 실업 100만 명 시대, 그중 두 명의 청년 김재희·김가윤 객원기자가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을 만나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정용일 기자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 실업이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2003년 MBC 시트콤 에서 고시생 앤디는 철없이 노는 대학생들을 향해 말한다. 13년 후 지금은 청년 실업이 40만 명만 됐으면 좋겠다고 자조한다. 그때를 행복으로 떠올릴 줄이야….

지옥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지옥. 후자를 선택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쯤, 이원재(44) 희망제작소 소장의 신간이 나왔다. (어크로스 펴냄). 각자도생해왔던 아버지 세대와 끝없는 좌절을 느끼는 아들 세대 사이에서 “청년들에게 리더십을 이양하고, 기성세대는 팔로어(follower)로서 청년을 지원해야 하며, 아들 세대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국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경칩을 이틀 앞둔 3월3일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 사무실에서 청년 세대인 객원기자들이 이 소장을 직접 만났다.

필리버스터 때 홍종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케치북을 보이며 “국가 경제가 비상”이라고 말하니 회의장에 앉아 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술렁거렸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치를 다 부인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에 서 있든지 간에 마찬가지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거나, 빚 위에서 성장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상식으로 우리가 느끼는 이야기다. 그 와중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장동력도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위기감에서 비롯한 공감대가 있다. 상식적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끼리는 논쟁을 할 수 있다. 필리버스터 현장에서 홍 의원이 경제 얘기를 했다. 그럼 처방도 있을 텐데, 이 문제를 다루는 토론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부모·자녀 세대 같이 읽었으면

필리버스터가 논의의 장을 넓힐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좋았다.

책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상황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콘텐츠가 없다. 콘텐츠를 가진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도 않고. 수용자가 되어야 할 정책 소비자들, 국민은 접할 기회가 없다.

이런 타이밍에 책이 나왔다. 누구를 이해시키고 싶어서 썼나.

부모와 자식 세대가 서로 다른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해서 썼다. 우리는 ‘세대 갈등’이라는 표현을 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서로 각각 읽어줬으면 한다. 자녀 세대 패러다임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친구들한테 책을 보여줬더니, 인간은 이기적이고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전제를 깔고 가는 경제학의 기본을 완전 뒤집는 말이라는 반응이 오더라.

인간의 이기심과 효율성이라는 건 경제학의 가정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명확하게 가정을 하는 게 이론을 수립하는 데 쉬우니까. 양심 있는 경제학자들은 그 가정을 변형하면서 현실을 설명하려 한다고 알고 있다.

나는 올해 31살이다. 어렸을 때 보면, 31살이면 무척 어른이고 뭔가를 이뤄야 하고 아이 둘셋 낳고 집을 사고 했던 것 같다. 지금 내 주변에는 결혼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집을 샀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논의를 세대론으로 옮긴 이유가 있을 듯하다.

한국 사회가 달라졌으니까 그렇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정말 많이 변했다. 그래프로 설명하자면 X축이 변하면서 Y축이 변하지 않나. X축이 시간이다. 시간이 모든 변화를 가장 명백하게 설명해주는 변수다. 그래서 ‘나이’가 제일 중요하다.

리더십의 세대를 바꿔야 한다세대 문제가 아니라 계층 문제,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청년 내 문제도 많지 않은가. ‘흙수저·금수저’란 말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고.

청년은 불쌍하고 노인은 잘사니까 노인들 것을 빼앗아서 청년을 도와줘야 한다, 이런 식의 세대론이 아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리더십의 세대를 바꾸는 것이다. ‘나이’를 바꾸는 것이 물 흐르듯 당연한 방법이다.

계층 간 문제가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계층 간 문제는 모든 세대에 다 있고 발현되는 시기도 다 다르다. 지금 계층 간에 벌어지는 문제는 이전과 다르다. 정규직과 나머지의 문제, 대기업과 나머지의 문제 이렇게 되어 있다. 20년 전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 문제를 가장 잘 체득한 세대가 리더십을 가지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고 본다.

청년 세대의 다수는 절망하고 있다. ‘사회가 이렇게 어려운데 공부한다고 성공할 수 있느냐’는 친구가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청년 세대로 이전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안타까운 얘기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굉장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게 ‘사회에 대한 연대감’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세대별로 던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간 비교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의 연대감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하지만, 연령별로 보면 10대와 20대의 사회 연대감은 선진국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50대 이상이 아주 떨어진다. 청년들과 얘기해봐도 약간의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이 자신감은 ‘내가 세상을 지배하겠어’ 같은 종류가 아니라 ‘내가 망해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을 거다’ ‘모든 걸 할 수 없게 돼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다.

지금 베이비붐 세대는 빼앗기면 죽는 사회를 경험했다. 지금 10대, 20대는 그런 사회를 경험하지 않았다. 그런 사회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연대감이 높고 불안이 덜하기 때문에 사회를 과감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있다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경제를 “돈과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규정하는 조건”이라고 정의한 부분에 별표를 했다.

‘경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재테크, 자기계발을 떠올린 지 얼마 안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회사도 국가도 나를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나의 모든 자산은 내 통장 안에, 모든 역량은 내 몸 안에’로 사람들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 경제는 철학을 내포한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가 경제를 처음 얘기했을 때도 ‘폴리티컬 이코노미’(Political Economy·정치경제)였다. 케인스도 그렇다. 세계적인 케인스 전문가인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쓴 전기 제목이 (John Maynard Keynes, 1883~1946: Economist, Philosopher, Statesman)다.

원래 경제학은 케인스 경제학이 대표적인데, 현실에 개입해서 변화시키는 데 지대한 관심을 가진 학문이다. 그러려면 현실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학이 발전해왔다. 경제학의 본질은 인간의 삶이 어떻게 하면 경제적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가정에 서 있는 경제학은 부정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도 이윤 극대화만이 아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 책임 기업, 아예 사회적 미션 쪽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 등이 대안이다.

박근혜 정부 임기의 3년이 얼마 전에 지났다. 청년 정책 위주로 큰 틀에서 평가를 해보자면.

‘청년들도 나이 더 먹었겠네’ 하는 생각부터 든다. 청년 정책이 중요하긴 한데, 더 중요한 건 세대를 바꾸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굉장한 고령화 정부다.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고령자 지배사회)라는 말을 책에 썼는데, 정부 고위 관료들이 나이가 상당히 많다. 한때 국회와 내각이 평균연령 최고령이었다. 50대 장관 자체를 찾기 어렵다. 국회도 60대 이상이 주도하고 있다. 이 상황이 사회 전체에 끼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세금 올려 청년 투자 지원해야‘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강렬했다. 세금은 청년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새롭게 사회에 진입하는 세대,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세대는 기회가 아주 적다. 경제성장률은 낮아졌고 사회는 촘촘해졌다. 제도나 사회 시스템이 많이 갖춰져서 뚫고 들어가기 어렵다. 뚫고 들어가게 해주는 일이 투자다. 투자 재원은 세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어디서 걷을 거냐? 다 걷어야 한다. 상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90%의 임금소득자는 줄고 있고, 자영업자도 몰락하고 있다. 그래서 고임금 받는 분들, 자본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세금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도 투자가 도움이 된다. 투자해서 청년들이 성과를 내면 그 과실이 바로 자산가치 상승이나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선순환이고 도움이 된다.

그동안 청년을 위한 복지라고 하면 기본소득과 비슷한, 가령 ‘30만원’ 정도의 돈을 주고 먹고살 수 있는 길을 보장하는 개념이었다.

복지가 가진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불안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약자는 보호해야 하지만, 평균적인 한국인이 시도해볼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한다. 책에서 노후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노후 복지를 강화하면 분명히 청년 세대가 스스로 모험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생긴다.

20~30대뿐 아니라 40대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다니다가 창업하면 잘될 것 같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패하면 노후가 비참해질 것 같아 단념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이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국가적으로도 좋다.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 기조 아래 ‘지원금’ 형태의 정책을 많이 썼다. 하지만 지원금은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안심하고 모험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아쉽다. 세금 더 걷어서 청년에게는 모험할 기회를 주고, 노년에는 평등하게 죽어갈 수 있는 보장을 해야 한다고 책에 썼다.

서울시와 성남시는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지와 청년 정책을 확충하고 있다. 여기에서 느끼는 희망과 한계를 지적한다면.

실질적인 방법론은 연구를 좀더 해봐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실제 어떤 것이 잘되는지 실험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좋은 실험을 한다고 본다. 실험 결과를 토대로 확산시키면 된다. 그걸 중앙정부에서 막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실험이 잘되는 것을 보고 나서 판단하면 된다.

정책 수단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 또한 중요하다. 내가 한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청년들은 실패해도 좋으니 투자할 수 있게 계속 만들고 노년은 보장하겠다. 그래서 세금을 더 걷겠다”고만 얘기해도 명확하다. 국가에서 보장해준다는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개인의 불안이 없어진다. 결정적으로 이번 정부는 대통령 선거 때 내놓은 메시지와 지금 메시지가 너무 다르다. 그래서 불안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청년들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 정책을 지원해줄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가 움직여야 한다. 국가에 말하는 주체가 청년이라는 건데, 어떤 것으로 청년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나.

청년은 주체이기 때문에 누가 만들어서 해야 한다기보다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고 말고는 주체가 결정하는 거고,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보는 거다. 리더십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줘야 하고, 투자가 일정하게 일어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변화 일으키고 책임지는 경험을하지만 요즘 세대들은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져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뭔가 변화를 일으키고 책임지는 작은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책 말미에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에서 경비원 고용을 유지한 사례를 썼다. 주민 중 한 사람의 행동에서 출발했다. 아파트 안의 가로등과 지하 주차장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 등으로 바꿔 전기료를 절감하고, 구청에서 에너지 절약 명목으로 지원받은 돈을 모아 경비원 고용을 유지하는 데 사용했다. 아주 작은 일인 것 같지만 우리 사회로 보면 큰 일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아보는 게 좋다. 작은 기회들을 만들어 실천하는 과정에서 변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부터 시작해 효능감을 느끼며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같은 시즌에 참 안 맞는 말인데, 내가 한평생 못 보거나 텔레비전으로만 어쩌다 보는 사람이 변해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게 옳은 방법이다.

상위 1%가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럴까? 양적으로 보면 99%가 변하는 게 더 크다. 청년 본인들은 세대 내 격차가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어느 세대보다 동질성이 높다. 문화적·경제적·학력 수준이 객관적으로 비슷하다. 그래서 다 같이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투표를 했다고 해서 금방 뭔가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인내가 필요하다.

이 소장이 말하는 ‘세대론’은 청년들이 살기 위해 노인을 ‘고려장’하자는 말이 아니다. 서로가 가진 역량을 인정하고, 활약할 여유를 조금만 주면 충분하다. 아들이 끌고 아버지가 밀어주는, 희망이고 연대의 제안이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

김재희 객원기자 allthatk@gmail.com·김가윤 객원기자 gaga06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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