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루(緣累). 인연으로 묶는 것. 지금 정치에 연루된, 아니 스스로 연루한 작가가 있다. 김영하(48) 이야기다. 그는 20년 가까이 투표소에 가지 않았다. 1997년 대통령선거가 아마도 마지막 투표였을 거라고 했다. 그는 말했다. “올해 총선에는 꼭 투표할 거다.” 정치와 문학이 ‘한 인연’으로 묶인 연유는 무엇일까. 2월22일 서울 연희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인연은 이렇다. 김영하는 1월27일 국회의원 장하나(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의 후원회장이 됐다. 그는 2월18일 ‘나는 어떻게 장하나 의원의 후원회장이 되었나’라는 제목의 글을 썼고, 이튿날 장 의원 누리집에 글이 공개됐다. 스스로 ‘정치 냉담자’로 일컫던 작가가, 물 위에 뜬 소금쟁이만큼일지언정, 현실 정치인의 ‘뒷배’가 아니라 공개적인 후원회장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담았다. 글의 마지막 대목은 그 자신의 체험이자, 그가 안타까워하는 청년 세대에게 던지는 전언으로도 겹쳐 읽힌다. “그렇다. 때로는 정말 작은 결정 하나가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가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길냥이’ 두 마리가 보낸 인연
결정은 이랬다. 그는 서울 연희동 개나리언덕 주민이다. 지난해 7월 부산에서 이사를 한 그에게 ‘한 사건’이 들이닥쳤다. 개발업자와 행정기관이 엮인 ‘난개발 비리’였다. 그는 외국(이탈리아·캐나다·미국)에서 4년, 부산에서 3년을 살면서 사람을 너무 안 만나고 산다는 말을 부인에게 들었다. 사회적 관계를 조금 넓혀보자는 생각으로 서울에 왔다고 한다.
“이렇게 폭력적으로 사회적 관계가 넓어질지 몰랐다. 갑자기 싸움의 한복판에 던져진 거다. 포클레인이 밀고 들어와 우리 집 살구나무를 부수는 걸 보고 생각했다. ‘내가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온 건 운이 좋았던 거구나.’ 그동안 쿨하게 살아왔던 거다. 그런데 자기 인생의 존엄, 삶의 터전이 위협받았기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싸움’에 말려들었던 거구나 생각하게 됐다. 지난해 반성 많이 했다.”
더 소상한 사연은 이렇다. 그는 2004년 ‘길냥이’ 두 마리를 집에 들였다. 까만 털을 지닌 깐돌이, 누런 털에 방울을 달고 있던 쪽은 방울이라고 불렀다. 방울이는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 외국에 나가면서 잠시 장모에게 맡겼던 깐돌이는 잘 지낸다. 김영하 부부보다 장모를 더 따른다. 고양이 두 마리는 학대당하는 동물원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동물원법으로 눈길을 주게 했고, 그 법안을 대표발의한 의원을 응시하게 했다. 그 의원이 장하나다.
“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약자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결혼 전 배우자와 식당에 가서 그 배우자가 종업원한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확인하라는 말이 있다. 동물보호는 한가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약자에 대한 존중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거다.”
20년 가까이 투표 한 번도 안 해
그는 왜 20년 가까이 투표를 안 했을까.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 이야기가 나왔다. 정치 효능감은 둘로 나뉜다. 첫째, 정치적 행동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내적 효능감). 둘째, 시민들의 요구에 정치인·관료와 같은 정치 주체가 반응할 것이라는 신념(외적 효능감).
“지난해 개나리언덕 싸움을 하면서 나는 내가 후원하는 국회의원한테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은 정치 효능감이 떨어진다. 그러니 결국 정치 혐오로 간다. 인기 투표로 가고.” 그가 20년 가까운 정치 무관심 또는 혐오를 더는 발효시키지 않고, 정치 효능감을 키우는 쪽으로 선회한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청년층 투표율이 여전히 낮은 점 또한 정치 효능감이 낮은 데서 먼저 이유를 찾았다. 청년들 피부에 밀착한 정책은 물론 청년의 의사를 들어주고 반영하는 시스템이 어디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탓이라는 설명이다. 김영하는 취업·주거·군대 문제를 핵심으로 꼽았다.
“지역구 중심의 투표 시스템은 특정 유권자만을 과다 대표한다. 일정한 주거가 없고 비정규직이 많은 젊은 층은 과소 대표되는 것 같다. 최소한 중·대선거구제로 가야 하지 않을까. 이십 대는 ‘개××’여서 투표 안 한다는 건 너무 단견이다. 제도의 문제다. 청년들에게 적절한 정책을 개발할 수 없는 정당 구조도 문제다. 청년을 대표할 정치인이 너무 적다.”
특히 그는 주거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청년들의 ‘정치적 응집’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구조가 은밀히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프랑스는 질이 낮은 주택들이 모인 슬럼이 일정하게 형성돼 있다. 어떤 면에서 폭발력이 있다. 폐타이어 불태우면서 시위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 흩어져 있다. 불법 증축한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 ‘정거장’이라고 생각하니까 서로 연대하려고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2014년 1월 방송된 EBS 프로그램 얘기다. “진짜 좁은 다가구주택에 사는 어느 학생이 있다. 이 친구의 좁은 책상 위에 책이 딱 한 권 있었다. 그게 뭔지 아나? 이었다. 자기를 속여야만 거기서 생존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소설에 썼으면 사람들이 작위적이라고 했을 거다. 현실이다. 너무나 열악한 ‘큐브’(고시원·반지하·옥탑방·원룸 등 집이 아닌 좁은 ‘방’)에 모여 살면서 ‘응답하라…’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판타지를.”
청년 주거 현실, 차라리 소설적
김영하는 1987년 민주화운동 공간에 있었다. 그 전해 대학에 들어간 그는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과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이기도 하다. 1987년 대선 당시에도 그는 여느 대학생처럼 ‘공정선거 감시단원’으로 뛰었다. “사건(1987년 6월9일) 전날에도 한열이를 만났다. 한열이는 만화사랑 동아리였고 나는 국악연구회였다. 만화를 잘 그렸던 한열이가 죽은 뒤 만들어진 걸개그림이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작이 됐다. 시대의 아이러니다.”
그는 1995년 단편소설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한 뒤 작가로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 10권이 훌쩍 넘는 소설과 산문집을 냈다. 국내 주요 문학상을 두루 받았고 국제판에 1년가량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교수로 3년 정도 일했다. 1997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인터넷 누리집을 만들었다. 트위터로 소설을 연재하는 시도를 한 적도 있다. 특정 국회의원 후원회장이기에 앞서 그는 여전히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지난해 추문(신경숙 표절 파문)이 있었다. 불행한 사건이다. 행위도 잘못됐고 그 이후 대응도 잘못했다. 여러 가지로 많은 독자를 실망시킨 사건이다. 거칠지만 대중이 한국문학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고 본다. 작가로서 부끄럽고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한국문학이 취약해진 것을 그는 신경숙 표절 파문과 같은 돌발적인 사건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정통 순수문학’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게 오히려 더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이다. 연초에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소설도 일종의 뉴스”라는 취지의 말을 언론 인터뷰에서 했다. 김영하는 그 말을 언급했다.
“조세희의 은 1970년대 철거민이 사는 가난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정래의 은 빨치산에 대해 알려준다. 문장의 아름다움이라든가 작가의 고상한 세계관을 알기 위해서 소설을 읽을 수도 있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의 동물이다. 지적인 즐거움, 인간에 대한 통찰, 사람들이 모르는 현장을 생생히 전달하는 것, 이게 소설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라는 거다.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소설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걸 문학하는 사람들이 잊어버리는 것 같다.”
대한민국, 파시즘으로 가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무엇이 문학인가’를 둘러싼 정의도 새롭게 접근하자고 했다. 종이에 쓰여 책으로 읽고 묵독하는 문학은 구텐베르크 이후 몇백 년의 짧은 시기일 뿐이라는 것. ‘문학적인 것’은 더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밥 딜런을 추천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해엔 논픽션만 쓴 기자한테 문학상이 돌아갔다. 문예지에 실리는 문학은 쇠퇴했지만 힙합, 드라마 대본, 세월호 사건을 다룬 것과 같은 기록들, 이것도 중요한 문학이라고 본다. 대학을 중심으로 계속 굴러가면 ‘문학임직한 것들’만 재생산하는 길로 가는 거다. (문학의 경계를) 넓히기만 하면 위기가 아닐 수도 있다.”
올해 총선은 ‘2014년 4월16일 그날’의 2주기에서 3일 모자란 4월13일 열린다. 그는 파시즘이 가까이 있다고 했다.
“박근혜, 김무성 등 정치인의 막말은 적확하고 정제된 말을 써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의정치를 우회해서 국민을 상대로 ‘직접정치’를 하려고 하면 고급한 말을 쓸 필요가 없다. 히틀러, 괴벨스처럼 굉장히 자극적인 말을 쓰게 된다. 지난 10여 년 사이 대의정치의 불신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직접민주주의라는 환상을 이용해왔다. 말의 타락도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듯하다. 우려스럽다. 파시즘이 대두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한가한 때가 아닌 것 같아서다. 한국 사회가 약자를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포용의 폭을 보여준 게 세월호 사건이다. 총선에서 어느 정당이 이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약자들이 사회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망해가는 문학판일지언정, 김영하는 여전히 영화 의 갑판 위 현악4중주단과 같다고 했다. 지키겠다는 말이다. 그는 올해 안에 새 장편소설을 펴낼 참이다. 그는 여전히 문학에 가까이 있다. 정치인 후원회장이 된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제아무리 삶의 세목을 살뜰히 챙기며 살지라도, 정치가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다면, 개인의 삶은 연소돼 재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혐오를 퍼나를 게 아니라 정치·정치인 가운데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참여하고 투표하고 후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운명과 싸우고, 투표를 해야 한다”
작가이자 ‘돌아온 유권자’ 김영하는 투표의 가치와 의미를 역설했다. “투표를 해야 한다. 이상해 보이는 주장이라도 처음에 하는 게 중요하다. 예전 진보정당이 했던, 말도 안 된다고 본 것도 결국 받아들여졌다. 최저임금, 노동조합… 처음에는 불온하고 이상하게 보였지만 결국 한 사회의 기본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제 정치 냉담자가 아니다. 운명이 싸움을 걸어오면 싸워야 한다. 싸움이 끝나면 자리로 돌아갈 거다.”
영화 에서 기울어 가라앉는 갑판 위 악사들이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찬송가. 본디 시를 가사로 붙인 노래에는 유독 한 낱말이 반복된다. ‘Nearer’(더 가까이). 투표소 가까이, 오빠가 돌아왔다(김영하는 2004년 소설집 를 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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