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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영입하고 백혈병은 외면하고

이주의 키워드/ 인재 영입
등록 2016-01-19 11:12 수정 2020-05-02 19: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인재 영입은 무릇 ‘탁’ 치는 맛이다. 어떤 이름들을 발탁해 이미지를 쇄신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건 간에 그 정명론으로 혁신의 기운을 선뵌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정치의 익숙한 전략이다. 선거를 앞두고, 난데없이 분화된 야권이 아우성 중이다. 포커판 레이스처럼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람이 저쪽으로 몰려간다’는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도 허겁지겁이다. 안철수 의원은 ‘중원’을 먹겠다며 덤비고, 당명을 바꾼 더불어민주당은 조롱의 대상이 된 ‘더불어’를 사람으로 보여주려 한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의 영입은 그나마 당에 활력을 불어넣었단 평가를 받았다. 새누리당은 특별한 전략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정체성 전략을 이제야 선보이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종합편성채널에서 ‘막말’과 ‘수준 이하’의 발화를 선보였던 이들을 싹쓸이했다.

그들 가운데 이번주 가장 주목을 받았던 영입 인사는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사업부의 상무를 지낸 양향자씨였다. 여러 가지 상징성들이 주목받았다. 치열하기론 세계 일류라는 삼성전자에서, 도무지 뚫을 수 없다는 유리벽을 깨버린 여성이다. 게다가 유수의 글로벌 명문 대학에서 MBA 같은 걸 이수한 이력이 아닌 고졸 노동자 출신이다. 전남 화순 출생이고, 광주여상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들을 향해 ‘훈계’가 아닌 ‘공감’을 표한 입당 메시지 역시 감동적이었다. 문재인 대표는 “가장 자랑스런 영입”이라 했고, 대다수의 언론들 역시 ‘신화’의 주인공을 감격스럽게 ‘예우’했다.

‘탁’ 치는 맛으로만 보면 잘한, 그럴싸한 영입이다. 하지만 그 호명의 정치에서 몇 가지 삐딱한 생각이 든다. 그의 훌륭한 이력을 두고 유독 ‘고졸’이란 점을 강조하는 맥락은 어떤 감수성의 반작용일까. ‘SKY-인서울-지잡대’로 짜인 한국 사회의 강고한 학벌 카스트를 모르는 바 아니다. 개개인들은 그걸 자조할 수 있고, 안줏거리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해가겠다는 입장을 가진 정당이 오히려 그 현실적 강고함에 기대어, 아주 예외적으로 그걸 뚫고 전진해온 이름을 캐스팅하는 방식의 연출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더불어를 꿈꾼다는 정당조차 ‘고졸’은 삼성전자 상무쯤을 해봐야 정치적 인격체로서 대접하는 것일까.

문제는 또 있다. 그의 훌륭한 이력은 정말 훌륭한 것일까. 전남 화순 출생에 광주여상을 나와 삼성전자에 취업한 양향자씨의 이력은 유별난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산학 협력’ 차원에서 그 경로를 밟아, 많은 노동자들을 취업시켰다. 그리고 그 경로를 밟았던 삼성의 어떤 노동자들은 백혈병과 악성림프종으로 죽어갔다. 양씨와 같은 화순 출신의 고 박효순(1984년생)씨는 고3 때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2012년 악성림프종이 발병해서 스물일곱의 나이로 사망했다. 광주여상 3학년 때 삼성전자 반도체에 입사한 이숙영(1976년생)씨 역시 백혈병으로 서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숙영씨와 같은 라인에서 2인1조로 일했던 황유미씨 역시 스물셋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사망한 이들의 수는 76명에 달한다.

이번주, 그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합의를 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합의는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것뿐이었고, ‘보상’과 ‘사과’는 여전히 미합의로 남아 있다. 언론은 그걸 간과한 채, 삼성의 보도자료대로 전했고, 삼성전자 반도체 상무 출신의 양향자씨가 이에 대해 어떤 입장과 책임 의식을 갖고 있는지는 아예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야당과 언론이 삼성을 우대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의 성공이 진정 함께 더불어 민주사회를 꿈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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