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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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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무기력과 냉소를 넘어섰다”

젊은이들과 함께 거리에서 안보법 반대 투쟁 벌인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와 한·일 청년을 이야기하다
등록 2015-11-26 07:45 수정 2020-05-02 19:28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사진)는 젊은이들과 아스팔트 거리 위에서 올여름을 보냈다. 예순일곱이라는 나이는 문제되지 않았다. 아베 정부가 집단자위권을 허용하는 안전보장법(안보법)을 강행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모임을 주도했고 “학생이 싸우는데 교수가 침묵할 수 없다”며 청년단체 ‘실즈’(SEALDs) 집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연설했다.

사회학자이자 여성학 연구자로 유명한 그는 2011년 정년퇴임 이후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비영리법인(NPO)인 ‘WAN’을 설립해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국내에도 등 그의 저작이 번역돼 있다. 지난 10월22일 일본 도쿄도 미타카시에 있는 우에노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해 한·일 청년 문제 등에 대해 2시간여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 청년들 ‘사토리 세대’ 아니다”요즘 한국 청년들은 ‘N포세대’ ‘금수저·흙수저’ 등 절망적인 담론에 둘러싸여 있다. 일본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일본의 경제 상황은 한국과 비슷하다. 비정규직이 많고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경기가 호전되어 대졸자보다 기업의 구인 수요가 더 많긴 했지만, 기업이 모셔가는 건 어디까지나 여성이 아닌 남성 대졸자에 한한다. 여성의 취업은 비정규직이 많다. 미래가 안 보이는 젊은이들의 상황이 비슷하다. 만약 올봄에 인터뷰를 했다면 “한국과 일본 똑같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했을 거다. 그런데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5년 여름, 안보법안 반대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보법안 투쟁 이후, 일본 청년들이 삶이나 사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느끼나.

지금까지 일본 청년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다. 분노나 불평은 무기력이나 무관심으로 표현되거나, 인터넷상 우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청년들이 거리에서 시위하는 건 ‘헤이트 스피치’(인종혐오 발언)와 같은 혐한 시위 정도였다. 1970년대 전공투 등 학생운동이 패배한 뒤, 그 이후 세대는 냉소주의에 빠졌다. 민주화 시위를 통해 정권을 바꾼 경험이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40년 동안 실질적인 데모가 없었다. 그런 흐름이 쭉 이어져왔다.

그런데 최근 달라졌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더 이상 냉소하지 않게 된 것이다. 3·11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퍼졌기 때문이다. 지진 이후 4년 동안 매주 금요일 총리 관저 앞에서 조용히 시위를 벌였다. 각 지역에서도 원전 반대 시위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다가 올여름, 분노한 사람들이 국회 앞으로 쏟아져나왔고 60~70대 노인과 20~30대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데모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온 배경에 ‘안보법 반대’라는 표면적 이유 외에 무엇이 있었다고 보는가.

안보법만 해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 ‘안보법에 찬성하지 못한다, 안보법은 헌법 위반이다, 정부가 법안 심리를 이렇게 대충해도 되느냐, 표결 강행 처리는 용서할 수 없다’ 등등 분노의 지점은 각기 다르다. 법안 심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국민이 법을 많이 공부하는 기회가 됐다. 교과서에나 나오던 ‘입헌주의’ 같은 말이 지금은 모든 국민이 아는 말이 되었다. 분노의 크기는 국민의 주권의식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다.

일본 청년들은 체제 순응적이거나 소극적이라고 여겨져왔다. 한국 보수언론은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빗대 한국 청년들도 절망적 현실을 달관해서 살라고 했다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본 청년들은 ‘사토리 세대’가 아니다. 이번 안보법 반대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달관이나 체념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크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모 세대의 경제 여건이 굉장히 나빠졌고, 부모는 물론이고 자신의 노후도 불안한 상태다. 물론 무력감은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무력감은 달관과 다르다. 무력감이 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고, 관심으로 변했다는 게 이번 안보법 투쟁의 중요한 대목이다.

그래도 어쨌든 안보법이 통과됐다. 이후에도 희망이 있나.

안보법 통과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패배감을 느끼진 않는다. 지난 1월, 여성 4만5천여 명이 모여 국회를 세 바퀴 감싸는 ‘인간사슬’ 시위를 벌였다. 각 지역에서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분노하고 싶은 여성들의 모임’도 열리고 있다. 이제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표로 보여줄 차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선거에는 경제 상황, 야당의 구심력 등이 작용한다. 선거에 모든 것을 걸면, 선거에서 패배하면 끝이다.

한국에서는 청년들의 절망감이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거나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 혐오’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에서 ‘아키하바라 사건’(2008년에 일어난 무차별 살인사건) 가해자인 비정규직 청년의 심리를 “사회경제적인 자원을 갖고 있지 않은 남성의 공포”로 해석했다. 한국이나 일본의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이 청년들의 우경화나 과격화에 얼마큼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남성 내부의 패자 그룹은 남성 승자 그룹이 아니라 여성한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왜냐하면 여성은 공격하기 쉬운 표적이고, 남성 그룹을 결속시킬 수도 있으니까. 일본에선 경제 상황이 나빠진 2000년대에 반페미니즘의 흐름이 커졌다. 혐한이나 헤이트 스피치도 그렇다. 개인은 좀더 약한 대상한테 분노를 표출하고, 국가는 국민을 일체화하기 위해 북한이나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만드는 거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약자에 대한 혐오나 우익화도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집단의 폭이 넓진 않다.

한국에서는 청년들이 ‘탈조선’ 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절망적인 사회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국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은 쇠퇴를 향해 달려가는 사회다. 그 배를 이끌고 있는 선장(아베 신조 총리)은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국가와 운명을 같이하지 않고 배에서 탈출하려는 건 훌륭한 생각이다. 일본 사회의 답은 분명하다. 지금과 다른 시나리오를 따르면 된다. 재분배 정책을 펴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져오는 정권이 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연대가 필요하다.

한·일 뒤덮은 절망감은 ‘인재’(人災) 탓

인터뷰가 끝날 즈음, 우에노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에 남아 있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대지진이 일어난) 이 땅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다른 땅으로 떠나버린 젊은이들에게 고향을 버린다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고향에 남아서 재해 현장을 복구하고 희망을 만들려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에노 교수는 3·11 대지진은 자연재해였지만, 정치는 ‘인재’(人災)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 사회를 뒤덮고 있는 절망감도 결국은 사람 탓이다. 하지만 ‘헬’(hell·지옥)이라고 마냥 절망하고 주저앉을 수만도 없다. “절망이나 희망 모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희망은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도쿄(일본)=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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