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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청춘’은 한·일 동색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한국 청년들도 머지않아 ‘마음의 병’ 앓게 될 것”
등록 2015-11-26 07:38 수정 2020-05-02 19:28

“일본은 나이 많은 형, 한국은 그 뒤를 쫓아가는 동생이란 느낌이 든다.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한·일 젊은이들의 상황은 상당히 닮아 있다.”
청년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 등을 연구해온 야마모토 고헤이 리쓰메이칸대학 교수(산업사회학)는 5년 뒤쯤엔 한국에서도 청년들이 앓는 ‘마음의 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 문제는 무엇이 비슷하고, 또 무엇이 다를까?

여러 객관적 지표에서 보이는 상황은 한국이 더 좋지 않다. 2014년 공식 실업률을 보면, 25~29살 남성(10.1%), 여성(6.3%) 모두 한국이 일본 남성(5.6%), 여성(4.6%)의 2배 가까이 높다. 청년 빈곤율은 한·일 모두 심각하다. 한국 만 18~24살 청년의 빈곤율(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사람의 비율)이 19.7%로 60대에 이어 가장 높았는데(제1075호 표지이야기 ‘청년, 빈곤의 미로에 갇히다’ 참조), 일본에서도 20대 청년 빈곤율이 22.3%로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가장 높다. 취업을 못하거나 포기한 실업자와 니트족, 취업했다 하더라도 ‘워킹푸어’(근로빈곤층)를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이나 프리터(‘프리랜서+아르바이터’의 약자) 청년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은 대학진학률이 한국보다 낮은 50%대라서 ‘일자리 미스매치’와 같은 문제가 심각하진 않다. 경기가 호조되면서 최근 대졸 취업률은 90%를 웃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취업 빙하기’가 다소 녹아내렸다고는 해도, 비정규직 비율이 38%에 이르는 등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용 전망이 밝진 않다.

‘청년 빈곤’은 일본에서는 10년 이상 된 고민거리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유행한 프리터, 파라사이트 싱글(부모에게 의존해서 사는 청년), 넷·카페 난민(인터넷 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자), 걸스푸어(빈곤한 젊은 여성) 등은 모두 청년 빈곤과 연결돼 있는 신조어다. 히키코모리나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을 설명하는 ‘하류지향’ 등의 용어 역시 청년의 심리 상태와 맞닿아 있다. 한국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N포세대’ 20대는 일본의 30대와 비슷하게 포개어진다. 일본의 30대는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에 태어났지만, 장기 불황에 진입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윗세대와 달리 취업난을 겪으며 ‘사다리를 걷어차인’ 세대라는 뜻으로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으로 불린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한국 N포세대와 비슷한 우울증과 고립감, 분노 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클·2014)을 쓴 구마시로 도루(정신과 의사)는 “기성세대한테 풍요로운 삶을 빼앗겼다는 분노, 사회적 관계가 허물어져 고립된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괴로움 등 일본에서 1990년대 고민했던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청년들의 정치적 각성은 한국이 한 발짝 앞서 있다. 한·일 청년 담론을 교차 연구해온 후쿠시마 미노리 도코하대학 교수는 (교육공동체 벗·2015)에서 “데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대해 발언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국 청년 세대를 보면서 항상 일본 청년들에 대해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2008년 한국에서 우연히 대규모 촛불집회를 봤다. 청년들이 손잡고 거리에서 무언가를 호소하는 모습에 놀랐다. 거리에 나서기보다 혼자 자기만의 일에 몰두하는 일본 청년과 비교됐다. 최근 활발하게 거리시위를 벌인 ‘실즈’(SEALDs) 젊은이들은 꼭 한국 청년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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