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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회

우리 모두 같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성공회 실험교회 길찾는교회에서 차마 버릴 수 없는 신앙 구하고 기도하는 성소수자들

제1078호
등록 : 2015-09-09 20:50 수정 : 2015-09-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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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33·활동명)씨는 성소수자 기독교인이다. 그는 최근 “하느님과 싸웠다”고 했다. 자신의 지인들이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전도사 친구가 놀러왔는데 그 사실을 안 교회가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했대요.”

같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서 이래도 되나 싶었단다. 그래서 형태씨는 하느님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나약하세요?”

성소수자와 장애인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이 길찾는교회에 모여 예배를 올리고 있다.

오른손에 ‘근로기준법’ 책을 든 남자

종교를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만큼 나약한 것인지, 자신이 믿는 신에게 형태씨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동안 하느님과 싸우다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신을 아예 등질 수는 없었다.

“제게 하느님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손 내밀 수 있는 존재예요. 지금은 대화를 주구장창 하고 있죠.”

형태씨가 신과 싸운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동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고등학생 무렵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했고, 스무 살 때 몇몇 교회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교회 안에 퍼졌다. 전도사는 나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과 시선이 싫어 교회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교회로 돌아온 것은 10년이 흐른 뒤였다. 2013년 서울 명동의 카페 마리와 북아현 1-3구역 등에서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는 주민·세입자들과 연대하던 중 농성장에서 기도회를 여는 종교인들을 알게 됐다. 그중 한 사람에게 소개받아 찾은 곳이 ‘길찾는교회’다.

서울 혜화동 성공회 대학로교회 3층 성막기도실. 평평한 바닥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십자가 하나와 향초들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테이블 옆 나무상자 위에는 작은 액자가 하나 놓여 있다. 액자 속 남자는 오른손에 ‘근로기준법’이라고 쓰인 책을, 왼손엔 십자가를 들고 있다. 그의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친다. 액자 상단에는 ‘순교자 전태일’이라고 적혀 있다. 테이블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1인용 나무의자 30여 개가 놓여 있다.

예배를 주도해야 할 신부는 테이블 앞이 아닌 오른쪽 구석 의자에 앉아 다리를 까딱인다. 대신 나무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발언을 이어간다. 발언이 끝나자 신부가 기도를 올린다.

“…성소수자들과 다양한 소수자들이 우리의 새로운 식구가 되고, 교회에서 상처받고 쫓겨난 별난 이들이 주님의 입맞춤이 주는 힘으로 사랑의 관계를 되찾게 하소서.”

일요일 오후 길찾는교회 예배 모임의 풍경이다. 성소수자, 장애인, 비정규직 청년, 알바 노동자, 기성 교회를 거부한 교인, 아침에는 기성 교회를 갔다가 오후에는 이 교회를 찾는 교인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이 교회를 찾는다.

“교회는 그냥 저의 일부분이에요”

오른손에 근로기준법을, 왼손에 십자가를 든 ‘순교자 전태일’의 그림이 길찾는교회의 중심에 놓여 있다.

길찾는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로 2013년부터 시작된 대한성공회의 실험교회다. 스스로를 ‘공동기획자’라고 칭한 자캐오(42·세례명) 신부는 “책 속의 성공회를 현실에서 구현해보는 것,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전제로 정직하게 질문하고 정직하게 답하는 것”이 길찾는교회의 방향이라고 했다.

“길을 걷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함께 걷다보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선 기본적인 기획만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저희를 공동기획자라고 부르고 있어요.”

성소수자에게 한국 주류 교회는 ‘적’(敵)처럼 인식된다. 매년 퀴어문화축제 때마다 성소수자들은 기독교인들과 전쟁을 치른다. 올해는 축제가 열리는 서울시청 한편에서 기독교인들이 방해 집회를 열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과 같은 신을 믿는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신앙생활을 내려놓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민수(가명)씨는 “여기가 마지막 교회라는 심정으로” 길찾는교회를 다닌다. 경상도의 보수적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녔다. 동성애를 완강하게 반대하는 교회였다.

“부모님도 서울에 사시면 퀴어문화축제에 반대 팻말을 들고 나오셨을지 몰라요. 목사님은 동성애가 사회적 화두가 될 때마다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설교했고요.”

고등학생 때 성정체성을 깨달은 민수씨는 교회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20년간 교회를 빠진 주일이 열 손가락 안에 들어요. 교회는 그냥 저의 일부분이에요. 제 정체성이랑 무관하게 또 하나의 정체성인 거죠.”

스무 살 때 대학생이 되면서 상경한 민수씨는 서울에서 마땅한 교회를 찾지 못했다. 몸 붙일 만하면 교회 사람들이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말을 사석에서 늘어놓았다.

민수씨는 군대를 다녀온 뒤 우연히 자캐오 신부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고, 지난 3월부터 길찾는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 교회라면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년 동안 다닌 교회와는 다른 교파였지만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이

“교파적 차이 때문에 신앙의 본질적 문제가 달라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 하느님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희은(30)씨는 모태신앙으로 천주교를 믿다가 지난 6월부터 길찾는교회를 다니는 성소수자다. 비교적 늦게 성정체성을 깨달았고 지금은 성전환을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은 지 12개월째다. 스스로 “독실하다”고 할 만큼 어릴 때부터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종교가 (나를) 거부한다”고 생각해 성당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다.

그의 신앙생활도 길찾는교회에서 다시 시작됐다. 성소수자 모임에 나갔다가 “이런 교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게 됐다. “길찾는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오면서 매주 예배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자캐오 신부는 교회가 가장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이는 성소수자다.

“교회가 가장 탄압하는 대상이 성소수자들이잖아요. 대부분 비정규직에 의료서비스도 제대로 못 받고,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가족공동체도 마땅치 않아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 거죠.”

‘가장 가난한’ 성소수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를 짓누르는 이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희은씨는 말했다.

“그들이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대화의 장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좀 바뀌지 않을까요. 요즘은 인터넷만 뒤지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뭐가 문제인지 다 나오는데, 동성애를 알아가려는 노력 없이 눈과 귀를 막은 사람들이 안타까워요.”

글·사진 강남규 교육연수생 slothlove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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