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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폭탄 피하려 한국 오려 했다?

등록 2015-06-06 09:07 수정 2020-05-02 19:28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이 기획해 매주 2~3차례 에 싣는 ‘더 친절한 기자들’과 ‘뉴스 A/S’ 가운데 가장 깊고 자세하고 풍부한 기사를 골라 에 싣고 있습니다. 화제가 된 이슈를 기존 뉴스보다 더 자세한 사실과 더 풍부한 배경 정보를 담아 더 친절한 문체로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2002년 입국금지를 당했던 가수 유승준이 2003년 6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시 입국하고 있다. 정부는 당시 약혼녀의 부친상에 참석하도록 유씨의 입국 금지 조처를 이때만 풀어줬다. 연합뉴스

2002년 입국금지를 당했던 가수 유승준이 2003년 6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시 입국하고 있다. 정부는 당시 약혼녀의 부친상에 참석하도록 유씨의 입국 금지 조처를 이때만 풀어줬다. 연합뉴스

“병무청이죠?”

“네.”

“유승준씨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보려고요.”

“네? 누구요?”

“유승준씨요, 가수.”

“아, 스티브 유요~.”

이제는 옛 한국 이름으로도 불릴 수 없는 인물. 그가 돌아왔습니다.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유)은 지난 5월19일과 27일 아프리카TV를 통해 방송된 인터뷰에서 병역 기피 의혹을 둘러싼 심경을 고백했습니다. 이제라도 입대해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한때 ‘안티 없는 아이돌’이었던 그는 왜 13년째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에게 내려진 입국금지라는 ‘국민적 처벌’은 합당한 걸까요. 논쟁적 인물 유승준을 둘러싼 쟁점들을 정리했습니다.

1. 어떤 규정에 의해 입국금지됐나

지난해 1월1일 는 ‘유승준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가 이달 해제된다’고 보도했습니다. 병무청은 즉시 해명자료를 내어 “유승준이 국내에 입국해 연예 활동을 하면 군 장병 사기 저하 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출입국관리법 제11조에 따라 입국금지시킨 상태다. 해제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습니다.

병무청은 ‘출입국관리법 제11조’를 근거 규정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11조에는 ‘군 장병 사기 저하’ 등을 이유로 입국금지를 내릴 수 있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단지 제11조 1항 3호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 4호 “경제질서 또는 사회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란 규정만 있습니다. 즉, 유승준은 제11조 1항 3호 또는 4호에 의해 입국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2. 입국금지는 과했나

“군대에 가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유승준은 “기자가 ‘해병대 가도 되겠네’라고 해서 ‘네’라고 대답한 게 전부”라고 주장합니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유승준이 갑자기 미국 시민권을 따 군대에 가지 않게 되자 대중이 느낀 배신감은 컸습니다. 그러나 ‘입국금지가 적절했는가’란 질문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러 답변이 있습니다.

병무청은 2002년 1월29일 ‘병역의무 회피’를 이유로 법무부에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요청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병무청이 이런 요청서를 법무부에 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병무청이 유승준에게 유독 가혹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주류 언론의 반응은 지금과 온도차가 있습니다. ‘괘씸하나 입국금지는 과하다’는 논지의 사설도 실렸고, “유씨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 정서와 법 집행을 혼동한다면 이는 정부가 지나치게 흥분한 것”이라고 주장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승준이 사회에 미친 악영향 등을 고려하면 입국금지가 합당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2005년엔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한 자의 재외동포 체류 자격을 제한하는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3. 그의 행위는 불법이었나

유승준이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도 당했지만, 그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병역법(법률 제6502호)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중략)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제3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병역의 의무를 진다는 뜻입니다. 또 당시 병역법 제86조는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도망하거나 행방을 감춘 사람은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으므로 한국 법률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4. 입국금지, 소송으로 다툴 수 있나

그가 소송을 내는 건 자유이지만,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국경 관리는 국가주권에 관한 사항입니다. 불법·합법을 따질 성질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대한민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이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인권침해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유승준은 미국인입니다. 유승준이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을 때 인권위도 “외국인의 입국 여부는 위원회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며 진정을 기각했습니다.

5. 세금회피 목적이라는데, 맞나

그가 한국 국적을 회복하려는 이유가 미국 과세 당국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른바 증권가 ‘찌라시’에는 유승준의 첫 인터뷰 직후 이런 내용이 떴습니다.

“2014년 7월 미국 세법 바뀜→미국 시민권자는 국외 재산까지 신고해야 함→미신고시 재산 50% 몰수됨→유승준, 중국에서 활동으로 돈 축적. 그는 부친의 뜻에 따라 중국 내 재산을 신고하지 않고 현지에 쌓아놓으면서 미국 국세청에 중국 재산 신고 안 함→이러자 신고 시한 지나 세금으로 50% 추징 예상→재산을 지키는 수단으로 미국 국적 포기하고 한국 국적 따는 게 낫다고 판단→한국 국적을 따기 위해 입국 시도.”

이 의혹은 진실일까요? 미국 세법에 정통한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굉장히 의심스럽다”고 했습니다. 특히 유승준이 “작년 7월 시민권을 포기하고 귀화해서 군대를 가고 싶다고 한국에 연락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대목을 지적했습니다. 미국 세법이 지난해 7월1일부터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미국 세법상 미국인’에 대한 해외계좌 신고제도를 강화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납세자에게 해외계좌를 스스로 신고하도록 하는 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납세자가 돈을 맡긴 해외 금융기관도 ‘미국 납세자의 금융정보를 미국에 보고해야 한다’고 법을 고쳤습니다. 해외금융계좌납세협력법(FATCA·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이 그것입니다.

이 법에 따라 금융기관은 ‘미국 납세자의 금융정보’를 미국 정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은 금융기관은 미국에서 번 소득의 30%를 원천징수당하게 됩니다. 중국도 이 법이 시행되기 며칠 전인 지난해 6월26일 미국과 FATCA 관련 협정을 맺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외 국가에 ‘숨은 계좌’를 갖고 있던 ‘미국 세법상 미국인’들은 시민권을 줄줄이 포기하고 있습니다. 2008년 231명 정도였던 미국 국적 포기자 수는 2013년 2369명, 지난해엔 3415명에 달했습니다. 해외계좌를 갖고 있으면서도 미국 과세 당국에 ‘고의로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 신고하지 않은 은행 계좌에 가장 돈이 많았던 때를 기준으로 잔고의 50%를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유승준은 이 의혹에 대해 “논할 가치가 없다. 중국·미국에 납세를 충실히 다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중국에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은 전혀 중요한 대목이 아니란 점입니다. 중국에 세금을 냈는지와 무관하게 중국 재산을 미국 과세 당국에 ‘보고’했는지가 처벌 판단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세금을 냈든 안 냈든, 미국에 보고하지 않았다면 엄한 처벌을 피하기 힘듭니다.

김원철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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